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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카와 아야의 서울 산책] 강제징용 기록에 일생 바친 하야시 선생처럼, 한·일 가교 역할 하라는 운명

나리카와 아야 일본인 저널리스트

나리카와 아야 일본인 저널리스트

조선인 강제 연행 등을 취재하고 기록해 온 일본인 작가 하야시 에이다이 선생이 이달 초 돌아가셨다. 83세. 내가 하야시 선생의 책을 열심히 읽기 시작한 것은 불과 두 달 전이다. “영화 ‘군함도’에 대해 글을 쓸 거면 우선 이 책부터 읽어야 해”라며 선배 기자가 추천해 준 책 『사진기록 지쿠호·군함도』. 부족한 자료를 갖고 관계자들을 찾아내 증언을 기록한 하야시 선생의 열정이 페이지마다 고스란히 전해졌다.
 
지난 8월에 열린 EBS 국제다큐영화제에서 하야시 선생의 다큐멘터리 영화 ‘기록작가 하야시 에이다이의 저항’이 상영됐다. 관객과의 질의응답 시간에 참석한 니시지마 신지 감독은 일본 정부가 과거의 잘못을 숨기려는 자세를 지적하면서 “무엇이 일어났는지 한국과 일본이 공유함으로써 양국 관계도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바로 그 ‘공유해야 하는 기록’을 하야시 선생이 남겨 준 것이다. 계기는 아버지였다고 한다. 전쟁 때 탄광에서 도망 온 조선인들에게 밥을 제공하고 다친 데가 있으면 치료도 해 주던 일 때문에 선생의 아버지는 경찰에 끌려가 고문을 당한 뒤 돌아가셨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 겪은 불합리한 일을 출발점으로 선생은 평생 일본의 가해 책임을 추궁했다.
 
암에 걸려 힘이 안 들어가는 손에 펜을 잡고 테이프로 고정시키면서 끝까지 집필하던 모습이 영화에서 제일 인상에 남는다. 옆에 있던 선배 기자는 “이런 모습을 보면 ‘오늘 좀 피곤한데 내일 써야지’ 하는 말은 쉽게 못하지”라며 웃었다. 하야시 선생처럼 살기는 어렵지만 나도 내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한 영화였다.
 
나는 영화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가교 역할을 하려고 한다. 현재 한국에서 영화를 배우고 있다. 왜 영화냐.
 
외할아버지가 영화관을 운영하셨다. 내가 어렸을 때는 이미 아파트로 변했지만, 그래도 ‘영화관 집 딸’이었던 엄마와 같이 자주 영화를 보러 다녔다. 그때 좋은 영화를 많이 봤던 것 같다. 2002년 한국에 어학연수를 온 다음부터는 한국 영화에 빠졌지만 그땐 좋아하기만 할 뿐 영화 관련 일을 하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2008년 아사히신문에 입사했다. 입사 후 2년간은 사건담당기자로 영화를 볼 시간은커녕 잘 시간도 모자랄 정도로 바빴다. 2010년 문화담당기자가 됐는데 그해 ‘나라국제영화제’가 새로 시작됐다. 취재 겸 한·일 통역 자원봉사를 맡았다.
 
상영작품 중 신수원 감독의 첫 장편 ‘레인보우’라는 영화가 있었다. 학교 선생님을 그만두고 영화계에 뛰어든 한 여성이 시나리오를 못 쓰고 고생하는 내용인데 감독 본인의 이야기다. 영화가 너무 재미있었고 통역을 하면서 신 감독과 개인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내가 영화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오랜만에 다시 깨닫게 됐다. 공항까지 배웅했는데 신 감독이 마지막으로 “아야씨도 언젠가 영화 관련 일을 할 것 같다. 결국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돼 있다”는 말을 해 줬다. 그해 영화제 심사위원장이었던 정수완 선생이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동국대 대학원의 지도교수님이다.
 
올해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일본 담당 스태프로 참가한다. 며칠 전 영화제 기자회견에 가서 개막작이 신수원 감독의 신작 ‘유리정원’이라는 발표에 깜짝 놀랐다. 7년 전 거의 무명이었던 신 감독이 그 후 베를린과 칸에 초청받으면서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건 인연이라고 느껴졌다. 최근 한 한국 학생한테서 들은 말이 있다. “인연이란 결국 기적이다.” 어떤 형태든 영화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가교 역할을 하는 데 인생을 걸고 싶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기적 같은 일이 한국에 온 뒤 7개월 동안 자꾸 일어난다.
 
나리카와 아야 일본인 저널리스트(동국대 대학원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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