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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더 괜찮은 사람 되겠다는 열망 … 천문학적 확률 뚫고 꿈을 이뤘다

인터뷰 │ 자서전 낸 미국 첫 히스패닉 대법관 소토마요르
소토마요르, 희망의 자서전
소니아 소토마요르 지음
조인형·현낙희 옮김
사회평론
 
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 같은 스토리가 사실은 나와 가장 밀접한 이야기가 되어 우리 집, 우리 식구들에게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특히 뭔가 이룩한 사람들의 자서전에 그런 힘이 있다.
 
서구에서 본받을 만한 것 중 하나는 유구한 자서전(自敍傳·autobiography) 전통이다. 서양의 자서전 하면 아우구스티누스(354~430)나 장자크 루소(1712~1778)가 떠오른다. 그들을 비롯해 자서전을 쓴 유럽·미국의 유명인들은 자신들이 이룩한 업적뿐만 아니라 감추고 싶은 치부까지 드러낸다. 노골적인 자기 미화나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 ‘내가 쓴 자서전’의 왜곡은 ‘남이 쓴 나에 대한 전기(傳記·biography)’라는 검증을 통과하다가 들통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소니아 소토마요르 미국 연방대법관의 자서전인 『소토마요르, 희망의 자서전』이 우리말로 출간됐다. 담담하게 슬펐던 일, 기뻤던 일들을 술회했기에 더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자서전이다. 가난한 푸에르토리코 이민자인 아버지 후안 소토마요르와 어머니 셀리나 바에스의 딸로 태어난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마치 복권에 당첨되는 것과 같은 ‘천문학적인 확률’로 미국 최초의 히스패닉계 연방대법관이라는 화려하고 영광스러운 자리에 올랐다. 이를 악물고 공부해 명문 프린스턴대와 예일 로스쿨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검사·판사 생활을 거친 후 2009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연방대법관으로 취임했다. 타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포브스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에 뽑힌 그를 20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가난한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집안 출신의 미국 연방대법관 소니아 소토마요르. 그는 “인생의 무슨 일이든 큰 걸음보다는 작은 걸음으로 걸어가며 해결한다”고 말한다. [사진 사회평론]

가난한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집안 출신의 미국 연방대법관 소니아 소토마요르. 그는 “인생의 무슨 일이든 큰 걸음보다는 작은 걸음으로 걸어가며 해결한다”고 말한다. [사진 사회평론]

『소토마요르, 희망의 자서전』에 대해 어떤 반응이 있었나.
“수많은 편지를 받았다. 책에 나온 것과 똑같거나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사연이 담긴 편지였다. 독자들은 자신의 체험을 나와 공유하고 싶어했다. 내가 정말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지인들도 책을 읽고 나서 지금까지 내게 알려주지 않았던 비밀과 사연들을 털어놨다. 자서전에는 리스크가 따른다. 내 취약점이 노출되는 가운데 오해를 살 수도 있다. 다행히 이 책은 독자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좀더 공개할 필요도 있다는 필요성을 알려준 초대장이 됐다.”
 
이 책을 보면 옛날 일도 상세히 서술돼 있다. 당신은 기억력이 굉장히 좋을 것 같다.
“(웃음) 이 책의 편집자도 그 점에 대해 기분 좋게 놀랐지만, 사실 나는 사람들 이름이나 친구들 생일도 잘 잊어버려서 미안할 때가 많다. 하지만 스토리의 디테일은 잘 기억한다. 검사·판사 재직시 큰 도움이 됐다. 피고·증인·변호인의 발언이 바뀌거나 제출된 서류와 다르면 나는 즉시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감지했다. 내 이야기이건 남의 이야기이건 스토리에 대해서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다.”
 
영문판 제목은 『내가 사랑하는 세상(My Beloved World)』, 한국판 제목은 『소토마요르, 희망의 자서전』이다. 당신에게 희망이란 무엇인가.
“희망은 참 좋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희망은 ‘긍정적인 가능성’이다. 내게는 스스로를 개선해 더 좋은 사람, 더 괜찮은(decent) 사람이 되겠다는 열망이 있다. 남들을 더 보살피고 남들에게 더 많이 주려고 하는 그런 사람 말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 나는 열심히 노력한다.”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 가톨릭 학교에서 공부했다. 지금도 신앙생활을 하는지.
“지금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톨릭 신자들처럼 나도 가톨릭 결혼식·장례식에 간다. 친척이나 지인들 자녀들의 첫영성체 행사, 견진성사에도 간다.”
 
‘자신에 대한 회의감(self-doubt)’이 들 때는 어떻게 하는가. 대법관인 지금도 그런 때가 있는가.
“그렇다. 자기 회의나 분노, 상처를 느낄 때일수록 노력을 많이 한다. 왜냐하면 그런 감정들이 종종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행동을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분노가 우리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다가 부적절한 순간에 터져나올 수도 있다. 나는 부정적인 느낌들과 정면으로 맞선다. 왜 그런 느낌이 드는지 내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이유가 포착되면 개선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에 착수한다. ‘개선(improvement)’은 내게 굉장히 중요한 단어다. 이번 책에도 나오지만 프린스턴대에 입학했을 때 자기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았다. 중퇴도 생각했다. 내가 제대로 된 영어로 글쓰기를 할 수 없다는 게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초·중·고 문법·단어 교과서를 사서 영어를 다시 공부했다. 자기 회의감이 들 때마다 내가 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뭐가 잘못됐는지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찾아낸다.”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에는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이유가 뭘까.
“그런 경우가 있다는 데 동의한다. 나는 심리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내 경험을 바탕으로 대답하겠다. 노력은 많이 하지만 실패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성취할 수 있는 일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를 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목표가 너무 크면 목표에 짓눌려 포기하기 쉽다. 나를 남과 비교하는 것도 문제다. 내가 프린스턴대와 예일대에서 발견한 것은 내가 아무리 똑똑하더라도 나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은 있기 마련이라는 사실이었다. 우리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발견되는 사실이다. 우리가 아무리 뛰어나도 우리를 이길 사람은 나타난다. 최고의 스포츠인이라도 언젠가는 그보다 더 젊고, 더 빠르고, 더 재능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실패를 우리가 인정하면 실패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가르친다. 그 가르침을 따르면 우리는 할 수 있다. 나는 인생의 무슨 일이든 큰 걸음보다는 작은 걸음으로 걸어가며 해결한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했는데 인정받지 못하거나 승진에서 누락되는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라면 나 스스로를 관찰해보고 승진한 사람은 나와 일하는 게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겠다. 그리고 내게 자신감과 능력이 있다면 내 상관을 찾아가 이렇게 묻겠다. 이번에 아무개를 승진시킨 이유를 이해합니다. 다음에 당신이 나를 선택하게 만들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번 책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 책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그 질문을 한다. 그래서 나는 책에서 내 인생의 단계별로 영향을 미친 책들을 소개했다. 『낸시 드루』는 독서의 즐거움, 독서하는 법을 일러줬다. 『파리 대왕』은 인간의 본질과 법 질서의 소중함을 일깨워줬다. 책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내 인생의 가치 설정, ‘어떻게 살 것인가’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은 『돈키호테』다. 내게 『돈키호테』는 벅찬 현실에도 불구하고 실현 가능한 꿈을 추구해야 한다는 영감을 주었다. 『돈키호테』를 읽으며 언젠가는 나도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희망을 품었다.”
 
뉴욕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는 푸에르토리코 출신 이민자다. 당신에게 푸에르토리코라는 유산(heritage)는 어떤 의미인가.
"나는 ‘푸에르토리코의 심장을 지닌 매우 매우 자랑스러운 미국인’이다. 우리의 나라·문화·식구·전통·언어가 곧 우리다. 자랄 때 들은 스페인어로 된 노래를 들으면 나는 편안함과 즐거움을 느낀다. 나는 받은 훈련에 있어서나 인생의 경로에 있어서 미국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자라면서 접한 푸에르토리코 문화는 내게 다른 미국인들과 공유하기 힘든 기쁨을 준다.”
 
젊은이들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
"우리 부모 세대의 꿈은 생존하는 것, 자식들을 교육시키는 것, 흉하지 않은 옷을 식구들에게 입히는 것이었다. 젊은이들은 폼 나는 승용차, 더 큰 아파트, 해외 여행, 명품 물품을 바라는 것 같다.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면 그런 것들을 언젠가 누릴 수 있지만, 그런 것들은 인생의 기본적 가치에 비하면 2차적인 것들이다. 그런 것들로 인생에서 성공했는지 여부를 측정할 수 없다. 적어도 나는 아니다. 우리 주변 사람들, 우리가 사는 공동체를 점점 더 좋게 만드는 게 진정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우리 독자들에게 강조할 게 있다면?
"나는 한국과 커넥션이 있다. 내 쌍둥이 조카들인 코너 소토마요르와 코리 소토마요르를 그들이 생후 20개월이었을 때 동생이 입양했다. 조카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우리는 조카들의 유산을 발견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할 것이다. 기대가 크다.”
 
김환영 논설위원 kim.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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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