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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누구나 언젠가 닿게 될 오래된 미래 … 회색지대 같은 노년을 들여다보다

문학이 있는 주말
국화 밑에서
최일남 지음

문학과지성사

 
외국에 비하면 작가들의 조로(早老) 현상이 두드러진 한국문단에 하나의 사건이라고 해야 할지 모른다. 물론 긍정적인 의미에서.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서울대 국문과) 작품활동을 시작한, 32년생 작가 최일남(85) 선생이 낸 새 소설집이다. 소설집 『석류』 이후 13년 만, 선생이 지금까지 생산한 작품이 단편 150여 편, 중편 7편, 장편 6편에 이른다고 하니 놀랄 만한 다작은 아니어도 그 꾸준한 발걸음에 경의를 표하고 싶어진다.
 
책에 실린 가장 최근 작품이 2013년 발표여서 좀 아쉽지만 소설집에는 2007년 이후 발표한 7편이 실려 있다. 하나같이 노년의 일상과 심경을 드러낸 이를테면 노년소설이다.
 
정책 공학 입장에서 노년은 인구계획이나 사회적 부조의 대상이겠지만 개개인 실존의 감각으로는 우리 모두 언젠가는 닿게 될 ‘오래된 미래’다. 구체적인 인간 감정과 사건을 통해 인생 단면을 실감 나게 재현하는 소설을 통해 회색지대 비슷한 노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 의미 없을 수 없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소설집 안에는 노(老) 소설가만의 크고 작은 인생 성찰이 곳곳에 들어 있다. 어쩌면 내용의 값어치를 결정하는 게 형식일 텐데, 오랜 기자 생활과 스스로의 단련으로 탄생했을, 군더더기 없이 짧으면서도 간단치 않은 행간의 의미를 내포한 선생의 문장(그러니까 소설의 형식)을 맛보는 것도 흥미롭다. 물론 젊은 작가들의 빠르게 읽히는 감각적인 문장과는 다르지만 말이다.
 
‘메마른 입술 같은’은 이제는 친구처럼 돼버린 대학교 1년 선·후배 사이 두 노인이 해방 공간 삐라 자료집을 계기로 당시를 회고하는 내용이다. 소설 중간에, 일본 총독부가 해방 직전 조선의 유력한 지도층 인사 몇에게 곧 일본이 항복한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렸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래서 해방 직후 수백 종의 삐라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올 수 있었다는 얘기다. ‘물수제비’에는 아내를 먼저 떠나 보낸 박 교장이 생전 아내와 나눈 죽음에 관한 대화를 떠올리는 장면에 나온다. 그 대화에 이런 문장이 있다. “스트레스라는 말이 아직 기승을 부리지 못하던 시절의 우리 세대는 스트레스 대신에 멜랑콜리에 젖어 살았지.” 멜랑콜리는 얼핏 고통스럽고 서러웠을 과거사 생활고를 연상시킨다. 모두 ‘젊은 소설’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얘기들이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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