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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디지털은 아예 없다 ‘87년 아날로그 헌법’

내 삶을 바꾸는 개헌
1987년 6월. 넥타이 부대까지 거리에서 “독재 타도, 호헌 철폐”를 외쳤다. 당시의 시대적 요구는 ‘대통령 직선제’였다.
 

대통령 직선제 전환 성취했지만
4차 산업혁명 등 시대 못 따라가

온라인 사생활 보호 담지 못하고
아동기본권 표현도 전혀 없어

87년 개헌 주역 이한동·이용희
“체구 커진 한국, 옷 바꿔 입어야”

대통령 직선제란 열망을 현재의 대한민국 헌법에 담아낸 기구가 이른바 ‘8인 정치회담’이었다. 8인은 민정당 권익현·윤길중·이한동·최영철 의원, 통일민주당 김동영·박용만·이용희·이중재 의원으로, 각각 노태우 당시 민정당 총재 및 양 김씨(김영삼-김대중)의 지휘를 받아 개헌 협상을 타결로 이끌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났다. 현재의 헌법을 만들어낸 산파 8명 가운데 생존자는 이한동(83) 전 국무총리, 이용희(86) 전 국회부의장, 최영철(82) 서경대 총장 세 명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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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는 헌법사의 세 증인 가운데 이한동 전 총리, 이용희 전 부의장을 만나거나 전화로 인터뷰했다. 최 총장은 인터뷰를 고사했다. 이한동 전 총리는 통화에서 “돌이켜보면 아쉬운 점이 있을 수 있으나 87년 헌법은 국민 손으로 대통령을 직접 뽑고, 대통령은 연임해선 안 된다는 시대정신을 반영한, 당시로서는 역할을 충분히 한 헌법이라고 감히 자신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총리는 “이미 30년이 지났고, 한 세대가 바뀌었다”며 “87년은 산업화 시대라 할 수 있었으나 이후 정보화 시대를 거쳤고, 지금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목전에 둔 문명사적인 변화에 직면했으니 헌법도 당연히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이제 다시 개헌이 시대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이용희 전 부의장도 “당시에도 인권 보장 면에서 선진국 헌법에 뒤지지 않는 헌법을 만들어보자고는 했지만 (군사 정권의) 장기 집권을 막는 게 가장 큰 목표였다”며 “목표를 이룬 지 벌써 30년이 지났고, 지금은 그때와는 상황이 또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 전 부의장은 “한국은 이미 체구가 더 커졌는데 그때의 옷이 지금 맞을 수는 없다”며 “이제는 국민이 모든 면에서 편하게 살 수 있는 헌법을 다시 만든다는 각오로 나서야 한다”고 했다. 87년 헌법 탄생의 두 주역조차 개헌을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30년이 지난 오늘의 눈으로 보면 민주화 운동기의 헌법은 미완(未完)의 헌법이다.
 
①온라인 세상이 없다=지난해 기준으로 한국은 인터넷 이용자 수 4364만 명,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 수 2048만 명인 ‘온라인의 나라’다. 이젠 온라인은 삶의 일부 또는 전부가 됐다. 하지만 30년 전 헌법 개정 당시는 온라인 세상이 열리지 않았을 때였다. 그러니 지금 헌법은 온라인 공간에서 자신의 정보를 보호받을 기본권조차 명문화돼 있지 않은 ‘아날로그 헌법’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16년 정보보호 실태 조사’에 의하면 인터넷 이용자의 17.4%가 개인정보 침해 사고를 경험했다. 또 악성코드 감염 피해 11.6%, 개인정보 유출 및 사생활 침해 9.2%, 보이스 피싱 등에 따른 금전 피해가 2.1%였다. 인터넷 이용자 수로 환산하면 760만 명 정도가 피해를 경험한 셈이다. 
 
‘송파 세모녀’ 막을 사회안전망 못 담아 … 헌법에 기본권 추가 땐 내 삶이 달라져
 
법무법인 시민의 김선수 대표변호사는 “현재는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해석해 온라인 공간에서 사생활 보호의 근거를 만들어 놓은 상태”라며 “이 방식만으론 부족하고 헌법조문으로 만들어야 사회적 인식이 바뀌고, 관련 법률이 체계화된다”고 말했다.
 
②아동권 없는 헌법=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과 130개 조항은 모두 1만9540자다. 이 중 ‘아동’이란 표현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약자 보호를 위한 조항으로는 ‘국가는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 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진다’(34조 4항), ‘연소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32조 5항)란 내용이 있을 뿐 ‘아동권’은 헌법에 조문화돼 있지 않다. 현재 한국 사회에는 어린이집과 가정 내의 각종 아동 학대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아동 학대 사범 수가 1만1464명이다.
 
2012년 252명이던 아동 학대 사범 수는 2016년 4580명으로 4년 사이 18배나 증가했다. 신필균 헌법개정 여성연대 공동대표는 “아동은 부모가 알아서 키우는 ‘훈육의 대상’이 아니라 성인처럼 존엄성을 인정받아야 하는 엄연한 인격체”라며 “아동권을 헌법에 명기해 아동 학대가 더는 안 된다는 레드라인을 그어야 한다”고 말했다.
 
③안보만 있고 안전은 밀려=2014년 2월 서울 송파구의 세 모녀는 생활고를 겪다 “죄송하다”는 유서와 집세용 현금 70만원을 남겨놓은 채 번개탄을 피워 자살했다. 세 모녀 사건으로 드러난 구멍 뚫린 ‘사회안전망’은 한국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인구 10만명당 28.7명, 2016년 기준)라는 불명예를 안겨줬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14년 세월호 참사의 트라우마에도 불구하고 헌법에는 ‘시민 안전’이라는 개념도 명문화돼 있지 않다. 헌법이 규정한 안전은 ‘국가 안전 보장’이란 안보와 ‘재해 예방’ 개념에 머물러 있다. 하승수 변호사(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시민 안전권을 비롯한 각종 기본권을 새로 헌법상의 권리로 만들어야 국가에 책임을 물을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개헌은 내 삶과 무관하지 않다. 내 삶을 바꾸는 ‘생활개헌’이 필요한 이유다.
 
중앙일보·JTBC의 국가 개혁 프로젝트 ‘리셋 코리아’는 개헌이 한국 사회 변혁을 위해 시급한 과제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채병건·최민우 기자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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