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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롱맨으로 소란스런 세계의 든든한 울타리…'엄마 메르켈'의 리더십 원천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와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두 사람의 패션은 신발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AP=연합뉴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와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두 사람의 패션은 신발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AP=연합뉴스]

 앞으로 사흘 후면 서방세계에서 또 한 명의 최장수 지도자가 탄생한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다. 2005년부터 집권해온 그는 오는 24일 치러지는 독일 총선에서 4연임에 성공할 것이 확실시된다. 11년간 여제(女帝)의 자리를 지킨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기록은 이미 넘어섰다. 선거가 끝나면 자신의 ‘정치적 양부(養父)’로 16년간 재임한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와 같은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의 어떤 점에 독일 국민들은 그토록 오랫동안 열광하고 있는 것일까.    
한 행사에서 생선 음식을 먹고 있는 메르켈. [AFP=연합뉴스]

한 행사에서 생선 음식을 먹고 있는 메르켈. [AFP=연합뉴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핸드백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 비슷한 형태로 색깔만 다른 재킷 50여 벌을 번갈아 입는다. 앞 단추는 항상 단정히 채워져 있다. 신발도 뾰족한 굽이 없는 것을 주로 신는다. 지난 1996년, 2002년, 2014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같은 옷을 입고 참석하기도 했다. 패션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는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등과 딴판이다. 
이같은 ‘소탈함’이야말로 메르켈의 강력한 무기다. 히틀러 시대의 악몽을 기억하는 독일 유권자들이 본능 처럼 갖고 있는 권력자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주기 때문이다.  
독일 총리 집무실 및 관저

독일 총리 집무실 및 관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부부가 살고 있는 아파트. 가운데 노란 건물에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부부가 살고 있는 아파트. 가운데 노란 건물에 있다.

 총리 취임 후 메르켈은 화려한 관저 대신 작은 아파트에서 남편 요아힘 자우어 교수와 줄곧 살고 있다.  
집 입구에 경찰관 두 명 정도만 배치돼 관광객들이 지나쳐도 총리의 거주지임을 알 수 없을 정도다. 그는 아무리 바빠도 여전히 스스로 단골 마트에서 장을 봐서 감자 수프와 자두 케이크를 만든다. 총선을 앞두고 지난 17일 어린이 기자단과 만난 메르켈은 취미를 묻자 “정원 가꾸기다. 총선 이후 수확하려고 감자를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메르켈은 기다림의 승부사다. 단기적인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이슈가 터지면 뒤로 물러나 숙고하며 기다렸다가 결정적인 개입 순간을 잡아채 갈등을 해소한다. 트럼프처럼 트윗을 하지 않고 가십에 등장하지도 않으며 특별히 분노하거나 과도하게 즐거워하는 사진을 찾기 어렵다. 이런 신중하고 절제된 언행은 어렸을 때부터 길러졌다.  
서독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메르켈은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동독으로 가 그 곳에서 자랐다. 학창시절 교사는 “메르켈은 영리하고 끈기있는 학생이었다. 옷차림이나 패션, 연애 같은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기억했다.  
아홉살 때는 수영시간에 3m 다이빙대에서 뛰어내리지 못하고 45분이나 서 있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선물도 두 달 전부터 챙기는 아이였다. 메르켈은 “미래에 닥칠 일을 따져보고 위험을 계산할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메르켈은 15살 때 러시아어 올림피아드에 나가 우승했다.
메르켈 어린시절 [BBC 캡처]

메르켈 어린시절 [BBC 캡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학창시절 [BBC 캡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학창시절 [BBC 캡처]

메르켈은 물리학 박사다. 그는 실험주의자가 아니라 이론 과학자였다. 다양한 시나리오를 세워 위험 요소를 저울질하면서 반응을 예상하고 정보에 입각한 선택을 내린다. 마지막 결과로부터 행동의 방향을 도출해 내는 방식이다. 이런 과학적 사고 방식을 정치에 도입했다.
2015년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와 벌인 국제금융 협상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치프라스는 국제채권단의 구제금융안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반대를 이끌어내며 벼랑 끝 전술을 폈다. 그렉시트(그리스의 EU 탈퇴) 가능성이 예고되자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파국은 막자”며 타협을 종용했다.
1995년 환경장관 당시 실험실을 방문한 메르켈. [타임지 캡처]

1995년 환경장관 당시 실험실을 방문한 메르켈. [타임지 캡처]

 하지만 메르켈은 마라톤 협상 내내 ‘빚은 스스로 갚아야 한다’는 원칙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2010년 이후 1, 2차 구제금융을 통해 그리스에 2300억 유로 가량을 지원했지만 긴축 정책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바람에 그리스가 또 다시 위기에 몰렸기 때문이다. 메르켈은 시간이 흐를 수록 불리한 건 그리스라는 판단을 내렸다. 이에 따라 그리스 국유 자산을 독립 펀드로 넘기고, 구제금융 제공에 앞서 연금ㆍ세제 개혁에 관한 입법안을 준비하라고 요구했다. 그래야 구제금융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던 독일내 여론도 잠재울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결국 협상에서 메르켈은 승리했다. 허약한 남유럽 국가들에 긴축 재정을 요구한 메르켈이 유로존 위기를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만들어놓자 독일에선 '말을 하지 않고 앉아서 생각한다'는 의미로 ‘메르켄(Merkeln)’이란 신조어가 생겨났다.
 메르켈은 비전이나 이데올로기 같은 거창한 말을 입에 올리지 않으면서 실용주의를 지향해 반대 세력과의 갈등을 둔화시키는 능력을 발휘해왔다. 미국 현대독일학회 잭슨 제인스 회장은 “메르켈의 리더십은 양 극단의 주장을 배제하면서 합의에 기초해 화합을 이끌어내는 통치 스타일"이라고 분석했다.
뚝심과 포용의 '무티(엄마) 리더십'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메르켈.

뚝심과 포용의 '무티(엄마) 리더십'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메르켈.

 이를 보여주듯 메르켈은 중도우파 노선을 유지하면서도 좌파의 정책을 적절한 시기에 수용했다. 동성 결혼 허용 법안은 현 연정 파트너인 중도좌파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이 연정의 조건으로 내건 사안이었다. 법안에 반대하던 메르켈은 법안의 표결을 결정하고 자신은 반대표를 던졌다. 해당 법안은 지난 7월 표결 끝에 통과됐다. 반대 투표를 통해 자신의 소신을 지키면서도 향후 연정 구성의 걸림돌을 없애는 묘수를 둔 것이다. 징병제 폐지와 가정 복지 강화, 양성 평등 정책 등도 좌파 정당의 핵심 주장을 수용한 사례다.
 메르켈은 실수를 인정하고 그것을 통해 배우는 역량을 갖춰 독일 언론으로부터 “학습 기계"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10년 간 최대 위기를 불러왔던 난민 정책이 대표적이다. 2015년 그는 “독일에서 난민의 권리는 상한선이 없다”고 발표했다. 이는 곧 난민을 환영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져 그 해에만 80만 명이 쏟아져 들어왔다. 나치 학살이라는 역사적 과오를 끊임없이 사과해온 메르켈은 난민 수용도 독일인의 책임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더욱이 급속한 고령화에 따라 향후 경제 활력을 유지하려면 젊고 의욕 있는 난민의 유입이 필요하다는 경제적 계산도 깔린 포석이었다. 영국 등 다른 국가들이 꺼리는 상황에서 독일마저 나서지 않으면 유럽 내 분열의 씨앗이 자랄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하지만 지난해 독일에선 성폭행 등 난민이 저지른 중범죄가 연일 신문을 장식했다.여기에 지난해 12월 튀니지 출신 난민 신청자의 크리스마스 시장 트럭 테러로 12명이 숨지는 사건까지 터지면서 그의 지지율은 20%가량 폭락했다.
난민 수용 정책을 발표했다가 테러 발생 등으로 지지율 하락을 경험한 메르켈 총리(왼쪽에서 두번째)가 다른 정상들과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난민 수용 정책을 발표했다가 테러 발생 등으로 지지율 하락을 경험한 메르켈 총리(왼쪽에서 두번째)가 다른 정상들과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메르켈은 난민 문제에 명확히 사과한 적은 없지만 입장을 틀었다. 지난해 연말 당 연례회의에서 “2015년 여름 같은 상황은 되풀이 될 수도 없고 되풀이 돼서도 안 된다"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부적격자를 가급적 빨리 추방하기 위해 난민 심사과정을 신속히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메르켈은 이처럼 필요하면 냉정한 선택도 주저하지 않는 모습도 여러 차례 선보였다. 
 동독 과학자 출신인 메르켈을 정계에 입문시킨 이는 콜 전 총리다. 그는 1994년 36살이던 메르켈을 통일 내각의 여성청소년부 장관으로 깜짝 발탁했다.
 하지만 98년 총선에서 콜은 사민당 게르하르트 슈뢰더에 패했다. 설상가상으로 콜의 비자금 스캔들이 터졌는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기민당의 일대 위기였다. 그때 메르켈이 언론을 통해 콜의 정계 은퇴를 요구했다. 콜은 “내 스스로 팔에 독사를 올려놓았다"고 비난했지만, 이 결단으로 메르켈은 기민당의 당수가 됐고 2005년 총선에서 승리했다.
메르켈 독일 총리를 정계에 입문시킨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왼쪽). 그는 메르켈을 '나의 소녀'라고 불렀다. 콜의 비자금 스캔들이 터지자 메르켈은 유일하게 그의 정계 은퇴를 공개 요구했다. [BBC 캡처]

메르켈 독일 총리를 정계에 입문시킨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왼쪽). 그는 메르켈을 '나의 소녀'라고 불렀다. 콜의 비자금 스캔들이 터지자 메르켈은 유일하게 그의 정계 은퇴를 공개 요구했다. [BBC 캡처]

 그러나 메르켈의 최대 덕목은 누가 뭐래도 절제와 포용이다. ‘무티(muttiㆍ엄마) 메르켈’로 불리는 이유다. 타협과 연정의 정치가 불가피한 독일에서 메르켈은 첫번째 연정 대상으로 선거에서 경쟁한 사민당을 골랐다. 선거과정에서 대립했던 '정치적 앙숙' 슈뢰더 전 총리가 좌파의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한 '어젠다 2010’ 정책을 이어받아 경제개혁을 추진했다.
 지난 2015년 슈뢰더 전 총리의 전기 출판 기념식을 찾은 메르켈은 “슈뢰더는 경제ㆍ복지 개혁으로 독일에 큰 도움을 줬다”며 “현재 독일의 성공은 슈뢰더의 헌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독일은 2005년 11.7%에 달하던 취업률이 현재 3.7%로, 완전 고용에 가깝다. 
 인기 하락을 알면서도 개혁을 추진한 슈뢰더의 결단과, 정치 라이벌의 개혁을 그대로 실현해낸 메르켈의 실용주의가 합쳐져 독일의 재도약을 이뤄낸 것이다.  
 
백악관 정상회담에서 메르켈의 악수 요청을 못들은 체 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백악관 정상회담에서 메르켈의 악수 요청을 못들은 체 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미국 정치매체인 폴리티코는 메르켈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등 ‘스트롱맨'들로 소란스러운 현실 세계에서 안정적이면서도 강력하며 의지할 수 있는 울타리 같은 존재"라고 보도했다. 북한 핵실험을 둘러싼 긴장과 중동 정세의 불안, 계속되는 테러와 브렉시트의 영향 등 세계의 불안정성은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서방의 동맹도 흔들리는 중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모습 변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모습 변화

 콜은 정계에 막 입문한 메르켈을 “나의 소녀”라고 불렀다. 그 소녀는 이미 ‘엄마'가 됐고, 국제사회는 독일과 유럽을 뛰어넘어 명실상부한 ‘자유 세계의 총리'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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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