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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코트'의 앞날은…"지난 6년보다 험난할 듯"

대법원장 후보자 지명 이튿날인 지난달 22일, 김명수(58·사법연수원 15기) 당시 후보자는 양승태 대법원장을 면담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로 갔다
 
그의 일성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기자들에게 “31년 5개월 동안 법정에서, 그것도 사실심(事實審) 법정에서 당사자들과 호흡하면서 재판만 해온 사람이다. 그 사람이 어떤 수준인지, 어떤 모습인지 이번에 보여드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판사가 ‘재판만 해 왔다’고 말하는 건 일반 국민들 입장에선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김 후보자가 그의 전임자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건 바로 이 대목이다.
 
법원행정처 고위 간부를 지낸 A변호사는 “경력 내내 사실심 재판만 하는 판사는 많다. 하지만 그런 판사가 대법원장이 되는 경우는 없었다. 김 후보자에게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쏟아지는 건 이 지점에서다”고 말했다. 일선 법원에서의 재판 경험이 많다는 점에서 판사들의 고충을 잘 이해할 수 있지만, 사법행정 경험이 적은 것은 대법원장으로서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김 후보자의 대법원 근무는 재판연구관 3년(1999~2000년)이 전부다. A변호사는 “이른바 ‘엘리트 판사’ 중엔 판사 경력의 절반 이상을 대법원에서 보낸 경우도 많다. 적어도 1987년 개헌 이후 대법관, 대법원장을 꿈꾼 판사들은 사실심 경력보다는 대법원 재판연구나 사법행정 경력이 더 긴 경우가 많았던 게 사실이다”고 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21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가결을 알리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임현동 기자

정세균 국회의장이 21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가결을 알리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임현동 기자

 
판사 사법행정 참여 요구가 첫 관문 
‘김명수 코트(court)’ 앞에는 난제가 쌓여 있다. 가장 먼저 맞닥뜨릴 이슈는 판사들의 사법행정 참여 요구다. 지금까지 사법행정은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한 법원행정처 엘리트 판사들의 전유물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양 대법원장 임기 말기인 지난 2월, 이른바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이 빚어졌다. 법원행정처가 법원 내 진보적 판사들의 학술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행사를 축소할 것을 지시했다는 의혹이었다. 판사들은 지금까지 세 차례 전국법관대표회의(판사회의)를 열어 판사회의의 정례화를 통한 사법행정 참여와 인사제도 개혁 등을 요구하고 있다.
 
사법부 안팎에선 김 후보자가 노무현 정부 시절 진보 성향 판사모임이었던 우리법연구회 회장과 이후 만들어진 국제인권법연구회 초대 회장을 지냈다는 점에서 판사회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할 것으로 내다본다. 사법부 전체의 인사와 행정은 물론, 각급 법원의 행정에까지 일선 판사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것이란 주장이다.
 
대법원 내에서도 김 후보자가 사법행정 시스템을 개방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본다. 인사청문회 준비팀에 관여한 법원행정처 간부는 “후보자께서 판사들이 인사권을 틀어쥔 대법원장의 눈치를 봐선 안 된단 소신을 갖고 있다. 인사와 행정 모두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변화가 급진적이지는 않을 것이란 예측도 많다. 또 다른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사법부의 위상과 기능에 대한 후보자의 생각은 알려진 것만큼 과격하지 않다. 법원이 급변하면 사법부 신뢰가 흔들리고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보편적인 법관들의 시각을 후보자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사법발전재단에 마련된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사법발전재단에 마련된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로 김 후보자는 지명 이후 “내가 속해있던 특정 단체가 새로운 권력이 되거나, 개인적인 소신이 사법부를 대표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고 한다. “대법원장이 특정 단체에 소속돼 있다는 불필요한 논쟁을 막겠다”며 인권법연구회에서 탈퇴했다.
 
지난 13일 인사청문회에선 “김형연 청와대 법무비서관에게 공개적인 사퇴 요구를 생각해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비서관은 인권법연구회 간사 출신으로 지난 5월 인천지법 부장판사를 그만둔 뒤 바로 문재인 정부 첫 법무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겨 논란이 된 인물이다. 청문회 준비팀 관계자는 “김 비서관 관련 질문에 대해선 원론적인 대응만 준비했다. 사퇴요구 발언까지 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급진보다는 점진 개혁 택할 가능성
지금까지 행보를 종합하면 ‘김명수 코트’의 사법행정 개혁은 점진적인 방향이 될 가능성이 크다. 판사회의를 통한 일선 판사들의 의견 개진 통로는 열어놓되, 기존의 사법행정 시스템과 조화를 시도할 것이란 예상이다.

 
일선 판사들의 가장 큰 불만은 관료화된 인사 체계다. 법원조직법원은 판사의 직급을 대법원장과 대법관, 판사로만 나누지만 실제론 수직화된 피라미드 체계가 존재한다. 사법연수원 성적과 근무평정이 좋은 판사들은 경력 10년을 전후해 대법원 재판연구관과 법원행정처 심의관을 거치고 이후 지방법원 부장판사가 된다. 다시 대법원 부장 재판연구관, 법원행정처 총괄심의관 경력을 쌓으면 비로소 고등법원 부장판사(차관급)로 ‘승진’한다. 고법부장 승진제도는 94년 법원조직법 개정으로 폐지됐지만 법원 내규에는 여전히 남아있고 실제 법관 인사에도 반영된다.
 
문제는 판사 임용 후 10년 이내에 고법부장 승진 여부가 대략 결판난다는 데 있다. 일선 판사들은 대법원 경력을 쌓아 ‘이너 서클’에 포함되지 않으면 고법부장이나 법원장, 대법관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 승진이 목표가 돼 개별 판사의 독립성이 훼손된 채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아직 인사제도 개선에 대해 김 후보자가 명확한 청사진을 제시한 적은 없다. 하지만 인사청문 과정과 대법원 주변의 관측을 종합하면,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 추진했던 법관 인사 이원화 방안을 다시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지방법원 판사와 고등법원 판사의 인사를 분리해 고법부장 승진제도 자체를 없애는 제도다. 이 전 대법원장은 2011년 정기인사부터 인사 이원화를 실시해 2017년까지 고법부장 승진제도를 폐지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후임자인 양 대법원장 시절 무기한 연기됐다.
 
인사 이원화 제도는 판사회의에서도 요구하는 사안이다. 다만 김 후보자는 즉각적인 제도 도입보단, 새로 시행계획을 마련해 점진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판사 인사 역시 각급 법원장들에게 권한을 분산하고 근무평정 및 재임용 기준을 손보는 방안을 검토할 공산이 크다. 그 동안 대법원이 추진했던 사법개혁 방안의 틀을 유지하되, 시행 시기와 실행 방안을 새로 검토하고 이 과정에 판사회의 등 일선 판사들의 의견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지난 11일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판사회의)에 참석한 판사들이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1일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판사회의)에 참석한 판사들이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양승태 발목 잡았던 상고심 개선 과제 
중·장기적으론 상고심 제도 개선이 김 후보자의 최대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양 대법원장 시절엔 상고법원 도입을 추진하다 무산됐다. 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상고허가제가 가장 이상적 해결방안이라고 생각하지만 적절치 않다고 판단되면 상고법원 설치를 재추진하는 방안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선 양 대법원장의 발목을 잡았던 상고심 제도 개선 논의가 김 후보자에게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대법관 1명 당 사건 수는 2014년 2937건에서 지난해 3220건까지 늘었다. 대법원에 올라오는 사건이 너무 많다 보니 대부분 사건은 본안 심리조차 진행되지 않고 ‘심리불속행’으로 기각된다. 재판 당사자들의 불만이 높아졌고 대법관들의 사건 부담도 커졌다.
 
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상고심 제도 개선과 대법관 증원을 거론했지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실제로 양 대법원장 시절 상고법원에 반대했던 판사들 중엔 대법관 증원 역시 반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 진보적 소수의견을 많이 냈던 B 전 대법관도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정책법원으로서 대법원의 위상을 생각하면 대법관 증원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법원 내에는 양 대법원장의 사법부 보수화에 반대했지만 사법부의 위상이 변화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판사들이 많다.
 
문재인 대통령이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을 공언한 상황에서 사법부의 헌법적 지위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최고재판소 위상을 놓고 대법원과 경쟁하는 헌법재판소가 헌법이 개정됐을 때 어떤 위상을 갖게 될지도 변수다.
 
개헌 이슈도 변수… "임기 첫 1년이 중요" 
개헌이란 최대 변수를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도 크다는 점에서 김명수 코트의 앞날엔 불확실성이 있다. '양승태 코트' 6년 동안 보수화된 사법부를 ‘좌클릭’하려는 일부 판사들의 주장과 김 후보자 개인의 판단이 엇갈릴 수도 있다. 여권 내부에선 “관료화된 법원행정처를 그대로 둔 채 구성원만 진보 성향 판사로 바꾼 것이 노무현 정부 시절 사법개혁 실패의 원인”이란 주장도 있다.

 
'김명수 코트'가 그리게 될 새로운 사법부 지형은 아직 짐작하기 어렵다. 김 후보자 취임 이후 내년 1월 김용덕·박보영 대법관을 시작으로 11월까지 총 13명의 대법관 중 6명이 교체된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수 문화와 이념 성향, 경험 등 새 대법원장에 대한 편견과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선 취임 후 1년이 매우 중요하다”며 “새 대법원장이 리더십을 보여준다면 사법부 개혁이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이 같은 편견이 더욱 증폭돼 갈등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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