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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 쓸 때 스스로에게 도취되는 나르시시즘이 없다"

진지한 단편 '한정희와 나'로 올해 황순원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기호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진지한 단편 '한정희와 나'로 올해 황순원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기호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올해 황순원문학상 수상자 이기호(45)는 '웃기는' 작가다. 작품만 그런 게 아니다. 그와 잠시만 얘기를 나눠봐도 알게 된다. 그가 얼마나 유머가 체질화된 사람인지를. 평범한 이야기도 그의 입을 거치면 웃긴 얘기가 된다.

 
 
 
 
 그런 이씨의 수상작 '한정희와 나'는 뜻밖에도 웃긴 얘기가 아니다. 웃기려는 시도가 없는 건 아니지만 구색만 갖췄다는 느낌이 들 만큼 시늉만 낸 정도다. 소설은 반대로 진지하고 묵직하다. 인간이 타인의 고통에 어디까지 공감할 수 있는지, 누군가를 아무런 조건이나 한도 없이 환대한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를 묻는다. 현실의 이기호를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한 소설 속의 소설가 '나'와, 아내와 조카 관계라고 해야겠지만 실제로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그래서 나의 입장에서는 타인도 아니고 관계인도 아닌, 초등학생 한정희 사이에서 벌어진 찜찜한 사건을 통해서다. 
 수상작이 진지해 뜻밖이라고 했지만 이씨 소설이 진지해진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인터뷰에서 물어보니 그가 교수(광주대) 자리를 얻어 광주광역시로 내려간 2008년 무렵이 분수령이었다. 가령 바보 같지만 고결한 캐릭터 나복만을 내세운 2014년 장편 『차남들의 세계사』에서 그가 문제 삼은 건 전두환 정권 시절 자행된 끔찍한 국가폭력이었다. 그러면서도 이씨 소설은 특유의 유머를 잃지 않았다. 단순히 웃기는 작가에서 '의식 있는' 작가로, 이야기꾼에서 소설가로, 이기호는 왜 변했나. 
 이씨는 "두 번째 소설집(『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2006년), 첫 번째 장편(『사과는 잘해요』, 2009년)을 낼 때까지만 해도 소설 구성에서나 문장에서나 가능하면 전통적인 소설 작법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한국 작가들의 이상한 인문학 숭배 습성, 선생님 노릇하려는 모습이 싫었고, 소설 뭐 있어, 이야기가 전부 아냐, 라고 공공연히 얘기하고 다니던 시절이다.  
 광주에 내려가며 삶의 질은 확실히 좋아졌다. 안정적인 교수 월급이 나오고 연구실도 생겼다. 소형차에서 SUV로 차를 바꿨고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샀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사람들 한 번 웃게 만들어보자, 하고 정신 없이 쓰다 보면 아, 내가 이거 미친 거 아냐,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했다. "MB, 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주변에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고, 학생들도 암울한 시기에 작가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데, 아무리 웃기는 이야기꾼이라지만 소외된 사람들의 얘기를 쓸 때면 거짓말을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별 문제 없이 잘 사는 내가 남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하는 건가, 삶과 문학 사이에 괴리를 느꼈다는 거였다. 
 '한정희와 나'는 그런 고민의 산물이다. 아예 이기호라는 이름의 소설가를 소설에 등장시켜 난관을 맞닥뜨리게 한다. 그 난관 앞에서 이씨를 닮은 소설 속 이기호가 겪는 고통은 진짜에 가깝지 않겠느냐는 거다. 인물과 에피소드는 물론 꾸며낸 거지만 말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씨 소설이 더이상 웃기지 않는 건 아니다. 당장 『차남들의 세계사』는 알싸한 희비극, 올해 출간한 가족소설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에서도 웃음이 잔뜩 묻어났다. 
 웃기는 비결이 뭘까. "나는 글을 쓸 때 나르시시즘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작가들이 글 쓰다 보면 스스로에 도취돼 자꾸 아름답게 쓰거나, 보다 깊숙하게 인간 내면을 그리려는 경우가 많은데 자기는 그런 게 없다는 얘기였다. 작가가 우스꽝스럽거나 젠체 하지 않는 의외의 모습에 독자들이 웃음을 터뜨린다는 거였다. 이런 생각의 밑바탕에는 '소박한' 작가의식이 깔려 있다. 작가는 영감을 받아 작품을 쓰거나 하는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 그저 남들보다 좀 더 앓고 좀 더 깊게 느끼는 정도라는 얘기다. '한정희와 나' 속의 이기호는 그런 고민으로 몸살을 앓는 중이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이기호
 1972년 강원도 원주 출생. 9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김 박사는 누구인가?』『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최순덕 성령충만기』, 짧은 소설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가족 소설 『세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장편소설 『차남들의 세계사』『사과는 잘해요』. 이효석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김승옥문학상 수상. 현재 광주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황순원문학상 본심 심사 장면. 이기호씨의 진지한 단편소설 '한정희와 나'를 수상작으로 뽑았다. 왼쪽부터 소설가 하성란, 문학평론가 김미현, 소설가 윤대녕·임철우, 문학평론가 황종연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황순원문학상 본심 심사 장면. 이기호씨의 진지한 단편소설 '한정희와 나'를 수상작으로 뽑았다. 왼쪽부터 소설가 하성란, 문학평론가 김미현, 소설가 윤대녕·임철우, 문학평론가 황종연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황순원문학상 심사평
 본심에서 논의된 10편의 소설은 직접적으로 사회적 ‘사건’을 문제 삼는다. 이때의 사건은 개인적 사고가 아닌 구조적 폭력이고, 일회적 실수가 아닌 지속적 재난이다. 학교나 군대 내의 폭력, 여성이나 노인에 대한 혐오, 세월호와 같은 인재(人災)에 침묵할 수 없다는 시대적 요구에 응답하고 있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어둡고 무거웠지만 그에 응전하는 힘도 강했다.  
 그 중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된 권여선의 ‘손톱’에서는 최저 생계비를 계산하는 주인공의 처절함을 통해 지금의 청년세대들이 왜 사회적 고아들처럼 살아가야 하는지 그 책임을 시대에 되묻고 있다. 편혜영의 ‘개의 밤’은 낮선 사람을 보고도 짖지 않는 개를 통해 최소한의 수치심마저 상실된 비인간성을 부도덕한 침묵으로 웅변한다. 김애란의 ‘가리는 손’은 자식에 대한 애정으로도 막아주기 힘든 혐오의 공격성과 인간의 존엄성으로 극복해야 할 혐오의 일상성을 섬뜩하게 그린다.          
 수상작인 이기호의 ‘한정희와 나’는 타자에 대한 절대적 환대가 얼마나 허상에 불과한지 고백한다. 학교 폭력의 가해자이면서도 반성할 줄 모르는 한정희에 대한 이해의 실패와, 그런 실패를 소설로 쓸 수 없는 문학적 실패를 이중으로 경험하는 소설가 ‘나’의 속절없음은 그 자체로 윤리의 곤궁(困窮)을 드러낸다. 하지만 실패한다는 것은 정확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확한 실패는 현재 가장 절실한 문학의 윤리다. 치열한 무력감을 통해 문학의 실체와 미래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학적 증언을 듣고 난 후 상처받을 권리와 위로해줄 의무는 이제 독자들에게 있다. 
◇심사위원=김미현·윤대녕·임철우·하성란·황종연(대표집필 김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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