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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도, 총선도, 대북압박도 치밀한 아베 그림대로 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제72차 유엔총회 일반토의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강력히 비난하면서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거론했다. [뉴욕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제72차 유엔총회 일반토의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강력히 비난하면서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거론했다. [뉴욕 AP=연합뉴스]

"북한이 간첩을 가르칠 어학교사로 쓰기 위해 일본 해변에서 13세 소녀를 납치했다." 
19일(현지시간)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45분간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불쑥 이런 말을 던졌다. 이렇게 변곡점을 맞은 연설은 "로켓맨 김정은이 미국과 동맹을 위협하면 완전 파멸시킬 것"이란 강경 기조로 흘렀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의 극적 효과를 끌어올리려 도입부에 거론한 13세 소녀는 요코타 메구미(橫田めぐみ)였다. 1977년 니가타(新潟)현의 학교에서 배드민턴 연습을 마친 뒤 실종된 그는 일본 국내에선 납북 피해자의 상징이다. 미국 대통령이 그를 직접 언급한 건 이례적이었다.  
1987년경 북한 모처에서 찍은 요코타 메구미(왼쪽). 오른쪽은 1977년 납북되기 전 중학생 시절의 모습. [중앙포토]

1987년경 북한 모처에서 찍은 요코타 메구미(왼쪽). 오른쪽은 1977년 납북되기 전 중학생 시절의 모습. [중앙포토]

지난 2006년 4월 요코타 메구미의 어머니인 요코타 사키에가 미국 의회에서 딸의 납치 문제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19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 연설에서 메구미 문제를 언급한 데 대해 아키에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감사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워싱턴 AP=연합뉴스]

지난 2006년 4월 요코타 메구미의 어머니인 요코타 사키에가 미국 의회에서 딸의 납치 문제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19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 연설에서 메구미 문제를 언급한 데 대해 아키에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감사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워싱턴 AP=연합뉴스]

일본 신문들은 다음날 조간 1면이나 국제면에서 트럼프의 발언을 크게 실었다. 그리고 "일본인 납치 문제를 국제 이슈화시키는데 큰 진전을 이뤘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트럼프의 입에서 '일본인 납치'가 튀어나오게 한 건 99%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 아베는 트럼프의 연설 이틀 전인 17일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북한과의 대화는 막다른 길’이란 글에서도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필요성을 강조하며 북한의 일본인 납치 사례를 열거했다. 그는 지난 2월 트럼프와의 첫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기 직전에도 "트럼프와 납북 일본인 문제를 협의하겠다"고 공언했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이후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국면 때마다, 심지어 엿새 동안 4번이나 트럼프와 통화했던 아베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트럼프의 머릿속에 '납치 문제'를 각인시켰을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의 유엔 연설은 아베 총리의 그런 악착같은 노력이 낳은 외교적 쾌거로 일본 국내에서 포장되고 있다.  
지난 2월 미일 정상회담을 위해 방미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골프를 즐기고 있다. [플로리다 교도=연합뉴스]

지난 2월 미일 정상회담을 위해 방미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골프를 즐기고 있다. [플로리다 교도=연합뉴스]

“축성(築城)에 3년, 낙성(落城)에 하루”라는 속담을 스스로 인용할 만큼 급락했던 지지율도 북한이 일본 상공을 통과하는 탄도미사일을 두 번 연속 발사하자 큰 폭으로 뛰고 있다. 요미우리신문 등의 최근 여론조사에선 50%선까지 회복됐다.  

자신감을 얻은 아베는 정치 시계를 더 빨리 돌리기 시작했다. 유엔총회 참석 차 뉴욕으로 출발하면서 중의원 해산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더욱 강력한 내각을 바탕으로 2021년까지 장기집권으로 가기 위한 교두보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이번 선거에서 이기고, 내년 가을 예정된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3연임에 성공하면 전후 최장수 총리라는 꿈도 실현할 수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6일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의 발사 장면 사진을 공개했다. 이동식 발사 차량(TEL)에서 발사되고 있는 화성-12형 탄도미사일을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평양 순안공항 활주로에서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6일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의 발사 장면 사진을 공개했다. 이동식 발사 차량(TEL)에서 발사되고 있는 화성-12형 탄도미사일을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평양 순안공항 활주로에서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지율 하락과 함께 물건너갈 뻔했던 '아베의 숙원' 헌법 개정도 다시 살아나고 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자민당은 다음달 22일께 치러질 중의원 선거에서 헌법 9조에 자위대를 명기하는 개정안을 선거 공약에 담을 방침이라고 한다. 총리관저에서도 “자위대 명기 개헌은 공약에 들어간다”고 이를 확인했다. 
중의원 선거 공약에 개헌이 들어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존재감 있는 야당이 없고, 자민당에 대항하기 위한 정계 개편 등 야권의 전열 정비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인 만큼 야당이 승부를 뒤집기는 어려운 상황. 
아베의 구상대로 자민당이 선거에서 또 승리한다면 아베는 "국민들이 개헌을 승인했다"며 드라이브를 걸 가능성이 크다. 개헌을 교묘하게 공약에 밀어넣어 '선거승리=국민의 개헌 찬성'으로 몰아가려는 치밀한 정치적 셈법이 깔려있는 셈이다.   
지난 11일 일본 방위성 승격 10주년을 맞아 도쿄 방위성 청사를 방문한 아베 신조 총리가 사열을 받고 있다. [도쿄 AFP=연합뉴스]

지난 11일 일본 방위성 승격 10주년을 맞아 도쿄 방위성 청사를 방문한 아베 신조 총리가 사열을 받고 있다. [도쿄 AFP=연합뉴스]

외부적 변수 역시 아베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북한의 김정은이 결과적으로 아베를 돕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세 증세가 이번 선거의 최대 쟁점이 될 것이라는 당초 전망과 달리 안보 불안에 따른 대북 대응 문제가 더 큰 이슈가 될 것이란 관측이 강하다.  
 
니혼게이자이(닛케이) 신문은 20일자에서 "아베 총리가 북핵 위기 등을 이번 총선 이슈로 활용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안보 위기 국면에서 아베 내각의 대응은 일본 국내에서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닛케이는 "아베 내각의 위기 관리 실적 등을 부각함으로써 야당과는 정권을 담당할 능력에서 큰 차이가 난다는 점을 아베 총리가 강조할 것"이라며 "긴박한 정세로 국민들의 위기의식이 강해지고 있는 상황적 요건이 정부 여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있다"고 분석했다.  
'운전대엔 문재인 대통령이 아닌 아베 총리가 앉아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대북외교, 트럼프의 연설, 중의원 선거를 둘러싼 안팎의 환경, 일단은 아베 총리의 계산대로 흐르는 분위기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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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