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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외환위기 20년 후, 무엇이 다른가?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전 아시아개발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전 아시아개발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한국 경제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과감한 개혁으로 건실하게 성장했다고 평가했다. 9월 6일 서울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속담을 인용하면서 지난 20년의 경제 성과를 높이 샀다. 앞으로 한국 경제가 무난히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20년 전에도 IMF는 한국 경제에 대해 낙관적이었다. 97년 7월 태국에서 발생한 외환위기가 아시아 국가들로 빠르게 파급됐지만 한국은 다르다고 했다. 그러나 외국인 투자자들이 자금을 계속 회수하고 금융기관의 해외 차입이 어려워지면서 외환보유액이 급속히 줄었다. 12월 3일 IMF에서 구제금융을 받고 가혹한 구조개혁이 시작됐다. 많은 기업과 금융기관이 문을 닫고 대량 실업으로 고통을 겪었다. 98년 경제성장률은 -5.5%였다.
 
그러나 한국은 위기를 빠르게 극복했다. 개혁조치로 금융시장이 안정되고 99년 성장률은 11.3%에 달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해 지도자를 중심으로 온 국민이 합심해 위기 극복에 전력을 다했다. 세계 무역환경이 좋았던 덕에 수출이 경제 회복의 돌파구 역할을 했다. 한국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고려해 외채 협상이 조기에 타결되도록 미국 정부가 적극 도왔다.
 
이제 한국 경제는 상당한 외환보유액을 가지고 있고 기업과 금융기관의 재무구조가 건실해 20년 전과 같은 외환위기를 겪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2017년은 20년 전과는 또 다른 대내외적 어려움이 한꺼번에 닥친 위험한 상황이다. 긴 안목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선진국의 초입에서 주저앉을 수 있다.
 
대내적인 첫 번째 어려움은 낮은 생산성이다. 한국 경제가 베이비붐 세대의 노동력과 높은 투자율로 고도성장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그러나 생산성과 기술혁신이 새로운 성장동력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의 국제경제력지수에서 한국 노동시장의 효율성은 세계 83위, 정부정책과 정치제도의 효율성은 69위다. 기술혁신 능력도 선진국 중에서 최하위다. 서비스업의 낮은 생산성이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급속한 저출산·고령화도 심각한 어려움이다. 출산율은 전 세계 최저 수준이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고 2035년에는 28%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화로 경제가 활력을 잃을 수 있다.
 
대외적으로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엇보다 북핵 위기가 심각하다. 북한의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한반도에서 군사 충돌의 위험이 커졌지만 해결의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북핵 위기의 진전에 따라 우리 안보와 경제에 엄청난 타격이 올 수 있다.
 
보호무역주의와 무역마찰도 상당한 대외 위험요인이다. 중국은 우리 수출의 25%, 미국은 13%를 차지하는 최대 교역 상대국들이다. 중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이후 경제보복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재협상으로 통상압력을 가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는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더욱 불리하게 작용한다.
 
97년에 미국은 전 세계 총생산의 20%를, 중국은 겨우 6.6%를 차지했다. 그러나 지금 중국은 전 세계 총생산의 18%를 차지해 미국의 16%를 넘어섰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중국몽(中國夢)’을 추구하는 두 강대국이 세계의 패권을 다투고 있다. 그 한가운데에서 국익을 추구해야 하는 우리의 국력은 약하고 외교 역량도 부족하다.
 
이렇듯 대내외적 상황이 엄중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97년 위기 때처럼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아 어려움을 극복하는 역량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과거에 쌓여 있던 문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하려 하면서 우리 사회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국회에서도 여야가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 공공 일자리 늘리기, 탈원전 같은 정책들이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경제 전문가들의 우려가 높다. 라가르드 총재도 기자회견에서 쓴소리를 했다. 최저임금 인상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했고, 재정 여력은 노동인구 감소와 생산성 둔화를 해결하는 데 우선적으로 사용하라고 권유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 이유는 물이 주위의 흙 입자를 끌어당겨 땅을 단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97년에는 위기가 물의 점성과 같은 역할을 해 땅을 굳게 했다. 지금은 대내외 위험들이 한꺼번에 닥쳤지만 힘을 합치지 못하고 마른 흙처럼 부스러질 뿐이다. 온 국민과 정치지도자들, 정부가 힘을 하나로 모아 정말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전 아시아개발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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