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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南人流] 뉴욕 컬렉션 17번 도전 … “동대문 시스템이 첨단”

"그게 되겠어?" 동대문 시장에서 옷을 팔던 최범석(41)이 정식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하자 냉소와 만류가 쏟아졌다. 그의 학력은 고등학교 1학년 중퇴. 정식 디자인 수업 대신 현장을 구르며 옷을 배웠다.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모아 열아홉 살에 홍대 앞 노점을 시작, 경기도 의정부 가게 등을 거쳐 스물한 살엔 동대문 시장에 입성했다. 직접 디자인한 옷으로 만 3년 만에 상가 내 매출 1위를 만들더니, 2003년 마침내 '제너럴 아이디어'라는 브랜드로 서울컬렉션에 데뷔했다. 이후 세상은 그에게 '동대문 신화' '패션계 개룡남(개천에서 용난 남자)'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줬다. 하지만 이것으로 개천생활이 끝난 게 아니었다. 2009년 그는 여전히 "그게 되겠어?"라는 소리를 들었다. 이번엔 뉴욕패션위크 진출을 앞두고서였다. 자본과 인맥이 탄탄한 대기업도, 이름 있는 중견 디자이너들도 중도 하차한 뉴욕 시장을 뚫겠다고 나섰으니 무모해 보였던 것이다. 주변에선 한두 번 하다 말겠지 했지만, 그는 2017년 7월까지 무려 열일곱 번의 컬렉션을 이어가고 있다. 9월 말에는 'K패션 프리미엄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을 달고 파리 패션위크와 패션 박람회 '트라노이'에도 나선다. 9월 11일 서울 압구정동 제너럴 아이디어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이 무모한 도전에 대해 가볍게 응수했다. "이 또라이짓을 나 아니면 누가 하겠느냐"며. 글=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서울 압구정동 제너럴 아이디어 사무실에서 만난 최범석 디자이너. 예전처럼 왜 사진 촬영 때 선글라스를 끼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이제 그런 허세는 버렸다”며 웃었다.

서울 압구정동 제너럴 아이디어 사무실에서 만난 최범석 디자이너. 예전처럼 왜 사진 촬영 때 선글라스를 끼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이제 그런 허세는 버렸다”며 웃었다.

 
뉴욕에 간 계기가 뭐였나.
 
"한 마디로 객기였다. 왜 그랬는지 그때는 세계 무대에 내 존재를 알리고 싶었다. 패션 도시 4곳을 다녀 봤는데 실용적이고 가성비를 따지는 뉴욕이 내 디자인 철학과 가장 잘 맞았다. 음,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뉴욕에 사랑했던 여자가 있었다. 지금은 헤어졌지만. 만날 때마다 '우리 꼭 여기서 쇼 하자'고 했는데 실제 저질러 버린 거다. "  
후원이나 인맥 없이 버틸 만했나.
 
"첫 쇼는 무참히 무시당했다. 쇼장이 텅텅 비었다. 맨땅에서 시작해서 디자이너가 된 한국에서의 경험을 생각하고 막 부딪쳐 봤는데 통하지 않았다. 뭣 모르고 CFDA(미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에 회원 신청을 했는데 단호히 거절당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시안 디자이너들이 오래 못 버티니까 당연한 거였다. 3년이 지나고서야 회원이 됐다. 사실 이너서클에 드느냐보다 돈이 더 문제였다. 4년 전에도 돈이 부족한 걸 알면서도 그냥 쇼 계약을 하고 무작정 뉴욕으로 떠났다. 가자마자 한국에 전화를 걸어 돈을 빌렸다. 한국에서였다면 그대로 주저앉을까봐 나름 벼랑끝 전술을 편 거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2010년 세 번째 쇼 때였다. 뉴욕에 도착했는데 컬렉션 옷이 든 짐이 사라졌다. 옷도 없는 상황에서 모델 캐스팅을 했다. 갖고 있는 사진으로 이 옷은 저 모델한테 맞겠다는 식으로 정했다. 쇼를 못 하게 될까봐 피를 말리는 시간을 보냈는데 다행히 쇼 전날 옷을 찾아서 무사히 무대를 꾸렸다. "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나.
"그냥 내가 할 일은 이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이게 버티는 이유다. 처음부터 '네가 되겠냐'는 만류를 무릅쓰고 했던 일이라 이기고 싶었다. 처음에는 다섯 번만 하자 그랬다가 열번 만 하자, 지금은 스무 번만 하자고 결심한다. 이제는 프레스도 바이어도 브랜드를 알아 본다. 최범석이라고 하면 뉴욕 디자이너인 줄 안다. 뉴욕타임스나 패션 전문 매체 WWD 같은 곳에서 인터뷰나 리뷰를 실어줄 정도는 됐다. 매출을 떠나 손해나는 일은 아니었다. 그간 많이 배웠고, 여전히 배우고 있다."    
뭘 배웠나.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패션은 비즈니스라는 사실이다. 한국에서는 패션쇼가 그저 쇼에 그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해외에 나가는 것도 올림픽 국가대표 출전 같이 그 자체가 성과이자 의미였다. 하지만 뉴욕의 패션은 모두 돈과 연결되는 무시무시한 정글이었다. 쇼 하나에 모델 캐스팅부터 조명·기술·음향·연출 등 모든 게 세분화 돼서 돈이 어디로 얼만큼 나가느냐에 초점이 맞춰졌다. 투자 대비 성과를 극명하게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는 게 놀라운 동시에 바람직하다고 느꼈다. 또 다른 깨달음은 패션이라는 것에 나를 한정짓지 말자는 거다. 지금처럼 세계적으로 패션 시장이 불황일 땐 옷만 고집해 봐야 죽기 십상이다. 코닥필름이 필름회사를 고집하다 망한 것과 달리 후지필름은 화장품·의료로 영역을 넓히면서 살아남았다. 패션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뷰티·리빙, 아니 그 이상으로 영역을 넓히는 게 맞다. 그런 생각으로 2014년 향초·디퓨저 등을 파는 ‘W.드레스룸’을 만든 게 지금 패션을 받쳐주는 든든한 효자가 됐다. 지난 7월 뉴욕에 가서 또 다른 생각을 했다. 이제 새 옷을 보여주는 패션쇼는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아 뭔가 다른 걸 구상 중이다. "  
‘제너럴 아이디어’ 2018 봄여름 컬렉션. 온라인 세상에서 살아가는신(新)히피 세대들의 아날로그적삶에 대한 동경을 다채로운 컬러에 담았다. [사진 제너럴 아이디어]

‘제너럴 아이디어’ 2018 봄여름 컬렉션. 온라인 세상에서 살아가는신(新)히피 세대들의 아날로그적삶에 대한 동경을 다채로운 컬러에 담았다. [사진 제너럴 아이디어]

한두 푼도 아닌 쇼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나.
 
"국내 여러 브랜드에서 디자인 컨설팅 작업을 꾸준히 해 왔고, 중국 업체들과도 일을 많이 했다. 최근 연매출 1조원 규모의 패션 기업 한두이서(韓都衣舍)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았다. "  
뉴욕에 진출했는데 중국과는 어떻게 연결됐나.
 
" 2014년 중국에서 제작한 '여신의 패션'이라는 디자이너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간 적이 있다. 거기서 준우승을 했다. 당시 그 프로 시청률이 중국에서 인기 많은 '러닝맨(SBS 예능)'보다 높아서 이후에 한국 대표 디자이너로 인지도를 얻게 됐다. 아무래도 뉴욕에 진출했다는 배경 덕에 제안이 많았다. "  
뉴욕, 중국 다음 이번 달엔 파리까지 간다.
 
"원래 밀라노·파리에 쇼룸이 있긴 하다. 이번에는 정부(산업통상자원부) 지원으로 일단 테스팅 차원에서 가보려고 한다. 파리도 달라지고 있다. 시장이 안 좋으니 어려운 옷이 잘 팔리는 분위기가 아니다. 뉴욕의 실용적인 스타일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  
파리에 함께 가는 디자이너들(고태용·계한희·문진희·조은애)이 한참 후배다.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옷 만드는 사람일 뿐이니까. 패션은 비즈니스다. 매출과 규모로 등급을 나눌 뿐, 디자이너 연차가 무슨 상관인가. "  
뉴욕에 가 있는 사이, 후배들이 훨씬 유명해졌다.
 
"서울 컬렉션에 데뷔했을 때 동대문 시장에서 디자이너가 나왔다니까 한순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쇼 끝나자마자 바로 인터뷰 제안이 쏟아졌고, 화보도 원없이 찍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예전같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인기는 사라질 지 몰라도 실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만약 뉴욕에 가지 않았다면 지금 지닌 경험을 할 수 있었을지 장담할 수 없다. 비슷한 얘기인데 디자이너 안 하고 동대문에서 계속 장사를 했으면 어땠겠냐고 묻는 친구들이 있다. 아마도 임대료 받는 건물주, 그 이상은 아닐 거다. "  
2017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최종 점검을 하는 최씨와 걸려 있는 의상들. [사진 제너럴 아이디어]

2017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최종 점검을 하는 최씨와 걸려 있는 의상들. [사진 제너럴 아이디어]

'동대문 신화' '개룡'이라는 수식어가 불편하지 않나.
 
"어릴 적에야 자신감과 콤플렉스가 왔다갔다 했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나니까 이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논어』에 일이관지(一以貫之)라는 말이 있다. 하나의 이치로써 모든 것을 꿰뚫는다는 의미다. 뉴욕에서도 속내를 보니 동대문 시장 돌아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걸 간파했다. 요즘은 오히려 다시 동대문 시장을 생각한다. 옛날 가게를 할 땐 새벽에 원단 골라서 공장에 주문하면 그날 저녁에 옷을 받았다. 유행이다 싶으면 소량으로 생산하고 반응이 좋으면 재주문을 하는 시스템이다. 최첨단이라는 아마존이 지금 하려는 게 고객이 원단을 고르면 닷새 안에 원하는 옷을 만들어 주겠다고는 거다. 이제는 브랜드라는 덩치를 생각하기보다 효율성을 생각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  
'동대문 신화'의 결말은 어찌 되나.
 
"패션 컨설팅을 하면서 마케팅이나 영업, 유통까지 본다. 그러다보니 후배들이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있는 상사를 만들어보고 싶다. 중국에서 쌓은 네트워크로 후배들을 불러 모으고도 싶다. 뭐가 됐든 지금까지 누구보다 촉이 좋았다고 자부한다. 누구는 날 보고 살아남기 위해 태어났다고 하더라. 그 본능적 감을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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