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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2035] 무서운 상사, 닮고 싶은 상사

김경희 중앙SUNDAY 정치부 기자

김경희 중앙SUNDAY 정치부 기자

“제일 무서운 선배가 누구니?”
 
서툴기 짝이 없는 사회부 수습기자 시절, 회사 선배들한테 종종 받은 질문이다. 처음엔 우물쭈물하다가 점점 답하기 어렵지 않게 되었다. 무서운 선배란 대개 일 잘하는 선배와 동일시되는 분위기를 간파한 다음부터다. 나 역시 갓 입사한 후배 기자들을 보면 습관처럼 그런 질문을 했다. 후배가 누구를 지목하면 나 역시 ‘아, 그 기자가 일 잘하는 모양이구나’라고 내심 생각했던 것 같다.
 
무의식적으로 되풀이돼 왔던 이 질의응답 시간이 좀 가혹하다 싶어진 건 최근에 와서다. ‘무섭지 않은 상사=무능한 상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유능함을 인정받으려면 아랫사람 다그치고 차가워야 한다는 관념이 은연중에 자리 잡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물론 최근 들은 사회부 내의 훈훈한 이야기는 나의 과도한 기우를 다독이는 듯하다. 이런 이야기였다. 사회부 막내 수습기자 시절엔 선배의 시시각각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취재 훈련을 받는다. 쉬는 것도 허락을 받곤 한다. 올해 입사한 후배가 어느 날 평소보다 일찍 퇴근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고마움을 표하자 내 입사 동기인 직속 선배는 이렇게 화답했단다. “나도 네가 열심히 해줘서 고맙다.”
 
제일 무서운 선배가 누구냐는 질문은 호기심 충족 이외에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다는 확신이 섰다. 그래서 앞으로 후배들 만나면 대신 “제일 닮고 싶은 선배가 누구인가”라고 묻기로 했다. 기획재정부 노조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2004년부터 ‘닮고 싶은 상사’ 투표를 해 왔다. 여기에 몇 차례 선정됐는지는 일종의 표창장이다. 주요 보직인사 때는 하마평 기사에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자칫 인기투표로 변질될 수 있다는 지적에도 10년 넘게 이런 이벤트가 유지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기업에도 이 제도가 확산된다면 어떨까. 닮고 싶은 상사가 있느냐 없느냐는 그 자체로 조직의 비전과 건강 척도가 될 것이다.
 
지난 7월 잡코리아가 직장인 567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96%가 직장상사와 갈등을 겪은 적이 있고 이 중 90%는 갈등 때문에 퇴사나 이직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수십 년째 잘 바뀌지 않는 고질적인 사회문제다. 악습의 고리를 끊으려면 나부터 변하는 수밖에 없다. 일 폭탄에 시달리다 저녁도 제대로 못 먹고 버스 뒷좌석에 지친 몸을 실은 채 집으로 향하던 어느 날, “밥은 먹었냐”는 팀 선배의 말 한마디에 코끝이 찡했던 기억을 종종 떠올린다. “나도 이런 선배가 되어야지” 하는 다짐과 함께.
 
김경희 중앙SUNDAY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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