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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언급한 80년 전 일본 경찰 공문 “군 의뢰로 3000명 모집, 내무성서 허락”

호사카 유지 교수가 19일 세종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일본 내무성과 경찰 등이 일본군 위안부 모집에 개입한 증거 문서를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호사카 유지 교수가 19일 세종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일본 내무성과 경찰 등이 일본군 위안부 모집에 개입한 증거 문서를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정부는 위안부 생산 시스템의 공범으로서 책임이 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19일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한 일본 정부의 공문서를 한국어로 번역해 소개하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2003년 한국으로 귀화해 세종대 독도종합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는 그는 이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밝히는 문서 공개’ 기자회견에서 “연구팀이 번역한 1938년 일본 경찰청 문서에는 경찰이 부녀자 납치 사건을 수사하던 과정에서 일본군의 위안소 설치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후 위안부 문제에 협조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밝혔다.
 
이번에 공개된 일본 정부의 공문서들은 97년 일본의 ‘아시아 여성기금’이 출판한 『정부조사 종군위안부 관계 자료집성』에 실린 30~40년대 자료들이다. 이 자료는 한국에서 정식으로 번역 출판된 적은 없었다.
 
당시 일본 경찰은 부녀자 납치 사건이 잇따르자 단속에 나서 ‘군 어용 업자’들을 체포했다. 38년 1월 19일 작성된 ‘상하이 파견군 내 육군위안소의 작부 모집에 관한 건’이란 제목의 문서에는 “1937년 12월 중순부터 상하이에 보내는 위안부 3000명을 모집하기 시작했으며 이미 200~300명이 상하이에서 가동 중이다. 군의 의뢰로 위안부를 모집·운영하고 있으며 관서지방에서는 현 당국이 협력했다”는 업자들의 진술이 담겨 있다.
 
38년 2월 7일자 ‘시국 이용 부녀 유괴 피의사건에 관한 건’ 문서에는 업자 3명이 “아라키 대장, 도야마 미쓰루와 회합하여 일본으로부터 상하이에 3000명의 창부를 보내게 되었다”는 내용과 “70명을 보내는 과정에서 오사카부 구조 경찰서와 나가사키현 외사과에서 편의를 제공받았다”는 진술이 나온다. 아라키 사다오 육군 대장은 전범재판에서 A급 선고를 받은 인물로 당시 중일전쟁에 대한 자문기관인 ‘내각 참의’를 맡고 있었다. 도야마는 일본 최초의 우익단체 겐요샤의 창시자다.
 
자료에는 오사카의 구조 경찰서장이 “내무성으로부터 작부 모집에 관해 비공식으로지만 오사카부 경찰부장에게 의뢰한 바가 있다는 회신을 받고 상당한 편의를 제공했다”는 내용도 있다. 경찰 상부 기관인 내무성은 “현지 상황을 볼 때 어쩔 수 없이 필요하다”며 위안부 동원을 허가했다. 내무성은 “부녀들의 모집 주선업자에 대한 단속이 적절하지 못하면 제국의 위신에 상처를 입히고 황군의 명예를 더럽힐 뿐만 아니라…(중략)…부녀 매매에 관한 국제 조약의 취지와 어긋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표현도 나온다.
 
호사카 교수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일본 정부는 법적 책임을 회피했고 한국 정부는 합의를 해버렸다. 당시 한국 측의 실패는 피해자 증언 외에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문서들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구 일본군이 위안소를 설치·운영하는 과정에서 편의를 제공했고, 위안부 생산 시스템에 포함된 공범으로서 법적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번역 작업을 끝낸 뒤 인터넷에 결과를 올리고 책을 출판할 계획이다. 
 
이현 기자 lee.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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