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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RI “자율차 칩 개발” 기업 “세금 낭비” … 국가 R&D 엇박자

“연구원 창사 이래 3대 기술 중 하나로, 혁신적 자동차용 반도체 기술이다.”(한국전자통신연구원) “별것 없는 기술이다. 전형적인 세금 축내기다.”(A대기업)
 
연간 20조원의 혈세(血稅)가 투입되고 있는 국가 연구개발(R&D) 과제들이 국내 대기업들의 외면 속에 표류하고 있다. 국가의 성장엔진을 찾기 위한 전략으로 국가 R&D를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해당 기술은 연구원 서랍 속에서 잠자거나 외국 업체가 가져가는 식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19일 세계 최소 수준인 1W 안팎의 저전력으로 자율주행차가 요구하는 영상 인식 및 제어 기능을 통합 실행하는 프로세서 칩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프로세서 칩은 차량 센서가 모은 데이터를 분석·처리하는 장치로, 최근 글로벌 자동차업체는 물론 정보통신(IT)업체들까지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자율주행차의 두뇌로 불린다. 지난해 개발한 자율주행차용 4코어 프로세서 ‘알데바란’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프로세서 코어를 9개로 대폭 늘려 처리속도를 높이고 더 깨끗하고 큰 영상을 구현할 수 있게 됐다는 게 ETRI 측 설명이다. ETRI는 이 칩이 국제표준화기구(ISO)의 기능 안전국제표준(ISO 26262)을 만족하는 세계 유일의 제품이라고 말했다. 칩 개발에는 2009년부터 최근까지 총 120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강성원 ETRI 지능형 반도체연구본부장은 “그간 한국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외국산 프로세서를 써왔다”며 “이젠 ETRI가 이를 국산화함으로써 더는 해외에 의존할 일이 없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ETRI는 지난해 알데바란을 국내 반도체 설계 전문 중소기업인 넥스트칩에 기술을 이전했으며, 이번에 개발한 업그레드 버전도 하반기까지 관련 기업에 기술을 이전해 내년까지 상용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ETRI 제품을 최종적으로 받아줄 곳이 국내 대기업이 아닌, 중국 전기차 전문업체 BYD나 독일 폴크스바겐이라는 점이다.
ETRI가 개발한 자율주행차용 일체형 프로세서 칩(가운데). 9개의 프로세서 코어가 들어가 처리 속도가 빠르다.[사진 ETRI]

ETRI가 개발한 자율주행차용 일체형 프로세서 칩(가운데). 9개의 프로세서 코어가 들어가 처리 속도가 빠르다.[사진 ETRI]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의 한 관계자는 “세계 곳곳에 완성차를 수출해야 하는 입장에서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부품을 채택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권영수 ETRI 프로세서연구그룹장은 “수년간 국내 대기업들을 찾아갔지만 우리의 기술이 외면당해 안타까웠다”며 “독일 BMW는 자국 반도체업체 인피니언에 투자하고 제품을 구입하는 데 우리 대기업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출연연이 국가 R&D로 개발한 기술들을 관련 국내 기업들이 외면한 사례는 적지 않다. 1000억원이 투자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지능로봇사업과 ETRI의 자율주차 기능이 대표적이다. KIST 지능로봇사업의 기술은 국내 벤처기업이 전수받은 후 매출을 올리지 못해 고전하고 있고, 64억원이 투자된 ETRI 자율주차 기능도 대기업의 외면에 서랍 속에 잠자고 있다.
 
강홍렬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연구위원은 “산업 응용기술의 경우는 기술을 받고자 하는 기업이 처음부터 참여·협업하지 않은 상태에서 국가 R&D를 기획하고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기획단계에서부터 수요 기업이 참여해 기술개발을 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지만, 국내 대기업들 설득이 쉽지 않다”며 “이런 문제점을 고려해 내년부터는 밸류체인(value-chain·공급망 사슬)의 틀 속에서 국가 R&D 과제를 추진할 수 있도록 정책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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