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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머리카락이 힘을 주는 것 같아요, 삼손처럼”

한영애는 “변신을 좋아한다”고 했다. 앞머리만 청록색과 노란색으로 염색하고 나타난 그녀는 “매니큐어는 2~3일마다 바꿀 수 있다고 해서 공연에 맞게 바꿔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진 아이스타미디어]

한영애는 “변신을 좋아한다”고 했다. 앞머리만 청록색과 노란색으로 염색하고 나타난 그녀는 “매니큐어는 2~3일마다 바꿀 수 있다고 해서 공연에 맞게 바꿔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진 아이스타미디어]

“제겐 아직도 17살 때의 감성이 있어요. 그렇다고 소녀적 감성은 아니지만 학교 뒷동산에 올라 나비는 왜 소리 없이 날아오르나, 햇빛은 왜 이리도 나를 행복하게 비춰주나 하는 나만이 갖는 판타지가 있었죠. 그때의 정서가 평생 내 무대를 지배하고 제가 노래할 수 있는 힘이에요.”
 
19일 서울 정동에서 만난 가수 한영애는 마녀보다는 소녀 같았다. 남다른 아우라를 내뿜으며 한을 토해내듯 노래하는 그녀가 지금도 무대에 설 때마다 “나를 조금 더 발전시켜줘”라고 말을 건네는 모습을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그를 따라 다니는 수식어 ‘소리의 마녀’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 9일 여수를 시작으로 다음 달 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11월 3~4일 경기 문화의전당 소극장으로 전국 투어에 나선 한영애는 이번 공연에 ‘바람’이란 부제를 붙였다. 그는 “첫 공연지가 결정되면서 ‘여수에 부는 바람’이란 단어가 불현듯 떠올랐다”며 “자연에서 불어오는 ‘바람(wind)’과 무언가 이뤄지길 바라는 ‘바람(wish)’이라는 두 가지 뜻을 모두 담았다”고 말했다. 2014년 11월 발매된 6집 ‘샤키포’의 수록곡 명이기도 하다.
 
지금은 공연 타이틀로 승격한 ‘바람’이지만 음반을 준비할 때만 해도 그가 가장 도망 다녔던 곡이다. “너무 전형적인 발라드여서 도저히 새롭게 표현할 자신이 없더라고요. 그런데 공연 디렉터가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해서 다시 들어보니 어릴 적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렇게 바람은 그녀의 것이 됐고, ‘언제든 힘이 들 땐 뒤를 봐요/ 난 그림자처럼 늘 그대 뒤에 있어요’라는 메시지는 희망의 주문을 외는 타이틀곡 ‘샤키포’보다 더욱 강력한 주문이 됐다.
 
사실 시간이 흘러 더 큰 생명력을 얻게 된 노래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2년 발매한 3집 수록곡 ‘조율’은 25년이 지나 지난 겨울 촛불집회나 올 봄 세월호 참사 기억문화제 등에서 울려퍼지며 다시금 주목을 받게 됐다. “‘나는 가수다2’로 준 히트했다면 이번에 전국구 노래가 됐다”며 “한돌씨가 만든 곡을 토대로 개작했는데 ‘알고 있지 꽃들은’ 한 줄을 써놓고 완성하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고 털어놨다.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주세요’라는 노랫말은 많은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다시 나아갈 힘을 안겨주었다.
 
그는 ‘샤키포’에 대해 “지금은 많이 편안해졌지만 당시엔 앨범을 내고도 희망찬 노래를 하기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40주년 기념 공연에 맞춰 음반을 발매했지만 가라앉은 마음을 일으키기가 쉽지 않았던 탓이다. “사람이 기댈 데가 없으면 절망하잖아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생겨야 희망을 말할 수 있는 건데 ‘너의 꿈을 버리지마 기적은 일어날 거야’(‘샤키포’) 같은 이야기는 오히려 1~2년이 지난 뒤에야 할 수 있는 노래더라고요. 그것을 보다 적극적으로 나눠야 된다고 생각했지, 무언가를 대표하겠다는 특별한 마음은 아니었어요. 절실한 연대감이죠.”
 
그는 이 모든 과정을 ‘성장통’에 비유했다. 무대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가 그대로 보이는 거울과도 같아서 계속 성장하도록 만들고 발전하도록 도와주는 곳이란 뜻에서다. 그는 그 통증을 가장 세게 맛본 무대로 1993년 63빌딩 컨벤션홀에서 열린 ‘아.우.성’을 꼽았다. “‘비애’를 부르는데 관객들이 웅성웅성하더라고요. 시선을 따라 천장을 보니 조명이 과열돼 불이 났더라고요. 그래서 순간 고민했는데 이미 스태프들이 뛰어가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전 계속 노래를 했죠. 그러니 관객들도 저를 믿고 따라와줬고. 우수한 관객 덕에 많이 배웠어요.”
 
그래서 지금도 틈날 때마다 공상을 하고 무대와 객석 배치를 꼼꼼히 체크한다고 했다. “연극을 하던 버릇이 남아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시쳇말로 맞장 뜬다고 하죠. 이 공간을 장악해야 하니까. 눈앞에서 오선지가 펼쳐지고 그 음표 사이의 거리가 굉장히 멀어지면서 시공간이 확장될 때가 있거든요. 그 공간감이 주는 느낌을 좋아해요.”혼성 그룹 해바라기로 데뷔해 신촌블루스 등을 거친 그는 6년간 연극 무대에 섰다.
 
그녀의 다음 계획은 무엇일까. “작은 극장에서 공연을 해보니 영상이나 다른 장치를 사용할 수 없어서 그런지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더라고요. 지금의 마음으로 들으면 또 새 노래가 되는 거잖아요. 다양하게 섞는 걸 좋아해서 지난 앨범엔 발라드·레게·전자음악 더 넣어봤으니 이제 악기 1~2개에 담백하게 부르는 노래를 한번 해봐야겠다 싶어요. 15년까지 걸리진 않겠죠. 직무유기하지 않겠습니다. 하하.” 그녀는 “삼손처럼 머리가 제게 힘을 주는 것 같다”며 새로 한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보였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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