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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하고, 아기자기하고…여자라면 반할껄?

룩셈부르크는 도심 한복판에서 300m 이상의 낙차를 감상할 수 있는 도시다. 절벽 아래 동네와 벼랑 끝 성벽이 드라마틱한 풍경을 빚는다.

룩셈부르크는 도심 한복판에서 300m 이상의 낙차를 감상할 수 있는 도시다. 절벽 아래 동네와 벼랑 끝 성벽이 드라마틱한 풍경을 빚는다.

룩셈부르크를 여행하기 전 가정을 세웠다. ‘듣던 대로 소국(小國)일 것이다. 볼 것이 많이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심심한 나라일 것이다’였다. 룩셈부르크에 대해 제대로 아는 바가 없어서, 가설을 검증하는 과정을 룩셈부르크 여행의 여정으로 삼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룩셈부르크의 단점이라고 오해했던 요소는 룩셈부르크가 여행지로 매력적인 이유가 돼 줬다. 작아서 두발로 걷기 좋고, 너무 거창하지 않아 아직 관광객으로 붐비지 않으며, 사건사고 없이 안전했다. 한마디로 여자 혼자 여행하기 제격인 도시였다.
 
중세 지어진 성곽 뒤로 모던한 빌딩이 마천루를 장식하고 있다.

중세 지어진 성곽 뒤로 모던한 빌딩이 마천루를 장식하고 있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출발한 기차를 타고 룩셈부르크에 도착했다. 여기서 말하는 룩셈부르크는 ‘뉴욕, 뉴욕’과 비슷하다. 미국 뉴욕주의 도시 뉴욕처럼 서유럽 소국 룩셈부르크의 수도 이름도 룩셈부르크다. 룩셈부르크(나라)는 우리나라 경기도만한 면적이고, 룩셈부르크(도시)는 동서로 76㎞, 남북으로는 82㎞에 지나지 않는다. 미니 국가의 미니 도시다. 인구는 56만 명에 불과한데, 수도에 10만 명이 몰려 산다.  
“얼마나 작나 하면 차로 1시간 30분만 달려도 이웃나라로 넘어갈 수 있어요. 동쪽으로는 독일, 서쪽으로는 벨기에, 남쪽으로는 프랑스와 붙어있죠.”
나라가 작은 것이 불만이지 않냐 물었을 때 룩셈부르크관광청 직원 브리짓은 외려 “작은 것이 룩셈부르크의 힘”이라고 되받아쳤다. 나라가 작아서 의사결정도, 국가 체질 개선도 빠른 덕에 룩셈부르크는 세계 최고의 부국이 됐단다. 1970년대 룩셈부르크를 먹여 살렸던 철강 산업 무너진 이후, 룩셈부르크는 ‘금융 허브’로 재빨리 전환해 글로벌 기업들을 대거 유치했다. 그 결과 2017년 기준 룩셈부르크는 국민 1인당 GDP(10만 1715달러)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로 올라섰다.
17세기 건축물 룩셈부르크 노트르담대성당.

17세기 건축물 룩셈부르크 노트르담대성당.

노르트담대성당 내부.

노르트담대성당 내부.

룩셈부르크에 흐르는 부의 향기는 기차역에서부터 감지됐다. 유럽의 여느 대도시의 중앙역이라 하면, 걸인이 있고 불쾌한 냄새가 풍기는 게 보통이었는데 룩셈부르크 기차역은 갤러리처럼 깔끔했다. 홍등가도 게토도 보이지 않아 본능적으로 안전한 도시라고 직감했다. 소매치기에 대한 걱정 없이 유럽의 대도시를 활보한 것은 처음이었다. 브리짓은 “룩셈부르크 사비에르 베텔(Xavier Bettel) 현 총리도 보디가드를 딱 한 명만 동원한 시내를 활보한다”고 룩셈부르크의 치안을 자랑했다.  
본격적인 여행은 노트르담대성당 앞 헌법광장에서부터 시작했다. 광장은 룩셈부르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였다. 광장 오른편으로 구도심과 신도심을 잇는 아치형 다리 아돌프 다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1903년 지어진 다리는 건설 중 꽤나 애를 먹었는데, 다리의 축을 세우기 위해 땅을 파면 고대, 중세 유적이 대량 발굴됐다고 한다. 아돌프 다리 축이 꽂힌 마을은 알제트(Alzeette)강이 둥그렇게 휘감는 물동이 마을 고혼(Gohon)이다. 고혼은 룩셈부르크어로 ‘바닥’이라는 뜻으로, 알제트강이 수만 년간 빚어낸 300m 높이의 사암계곡 아래 만들어졌다.  
고혼 마을의 한적한 정취.

고혼 마을의 한적한 정취.

이미 벼랑이 사방을 감싸고 있는 요새와 같은 마을이었지만, 룩셈부르크 사람들은 14세기부터 사암계곡 위에 성벽를 쌓아 완벽한 방어를 꿈꿨다. 도심 한복판에서 아찔한 낙차를 감상할 수 있는 룩셈부르크의 풍광은 이런 배경 아래 빚어졌다. 중세인이 벼랑 끝에 한 땀 한 땀 쌓아올린 성벽은 지금도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게 만들어졌고, 룩셈부르크를 찾아오는 여행객이 반드시 들르는 명소가 됐다.
룩셈부르크 현지 가이드 엘카를 따라 성벽의 이름 ‘벤첼(Wenzel)’을 따 벤첼워크(Wenzel walk)라고 불리는 성벽 걷기 체험에 나섰다. 벤첼워크는 룩셈부르크에서 가장 인기 있는 투어로, 여행 인포메이션 센터에 예약하면 가이드의 해설을 들으며 1시간 정도 성벽을 오르내릴 수 있다. 성벽은 무작정 걷기만 하면 20여 분 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짧지만, 고혼을 굽어볼 수 있는 전망 포인트가 많아 중간 중간 절로 걸음을 멈추게 됐다. 파스텔톤으로 벽을 칠하고 하나같이 회색 지붕을 얹은 고혼의 건물이 알제트강과 어우러진 경치를 감상했다.  
한데 재밌게도, 눈에 들어오는 고풍스러운 건물은 100년도 채 안된 ‘신식’ 건물인 경우가 많았다. 건물의 현재 용도를 물으면 엘카는 멋쩍게 “은행.”이라고 짧게 답했다. 유서 깊은 중세건축물일 거라고 콕콕 집을 때마다 “이것은 투자은행, 저것은 산업은행”이라는 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중세마을의 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고혼 주변에 새로 세운 건물은 고혼의 중세 건축물과 비슷하게 건축했단다. “룩셈부르크시에만 30여 개국, 150개 은행이 있으니 웬만한 건물은 은행이 아니고서야 뭐겠나”라는 엘카의 반격에 웃음이 터졌다.
1903년 완공된 아돌프 다리. 왼편에 있는 고풍스러운 건축물은 '은행'이다. 룩셈부르크 답다.

1903년 완공된 아돌프 다리. 왼편에 있는 고풍스러운 건축물은 '은행'이다. 룩셈부르크 답다.

이 도시에 둥지를 튼 글로벌 은행과 약 4만 개 이상의 다국적 기업은 룩셈부르크 특유의 정취를 만드는 것도 같았다. 오후 5시가 지나자 일을 마친 직장인이 건물에서 쏟아져 나왔다. 말쑥한 정장을 입은 ‘아저씨’들이 노천카페나 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왁자하게 호프를 기울였다. 중세를 여행하다가 갑자기 퇴근 시간 이후 서울 시청 주변으로 휙 공간이동을 한 듯했다. 
노천 카페에 앉아 맥주와 칵테일을 즐기는 사람들.

노천 카페에 앉아 맥주와 칵테일을 즐기는 사람들.

말쑥한 정장 차림의 회사원들로 북적북적한 '퇴근 후' 구도심 카페 거리.

말쑥한 정장 차림의 회사원들로 북적북적한 '퇴근 후' 구도심 카페 거리.

 
◇여행정보=룩셈부르크까지 직항 노선은 없다. 벨기에나 독일 등 인근 국가에서 기차로 이동하는 게 낫다.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룩셈부르크까지 기차로 3시간 소요된다. 유럽 기차 패스 유레일(eurail.com/kr)을 이용해 기차여행을 즐길 수 있다. 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에서 사용할 수 있는 베네룩스 패스는 어른 3일권(2등석 기준) 160유로(21만6000원)부터다. 룩셈부르크는 도시가 작고 관광 요소가 한데 모여 있어 한나절이나 1박 머물면 충분하다. 룩셈부르크 내 버스·기차 등 교통수단을 무제한 탑승하고 박물관·미술관 등 60여 곳 관광명소 입장이 가능한 자유여행권, 룩셈부르크카드(1일권 13유로)를 끊으면 유리하다. 룩셈부르크 중앙역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구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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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셈부르크=글·사진 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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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