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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의 '멘토' 故 김지석, 그만 없는 방

[매거진M] 22회 영화제를 스물여덟 밤 앞둔 9월 14일, 부산 영화의 전당 부산국제영화제(BIFF) 사무국. 지난 5월부터 굳게 닫혀있던 문 하나가 오랜만에 열렸다. 개최 기자간담회가 있던 사흘 전 내린 폭우 탓이다. 비어있던 방을 가장 먼저 점검한 건 그 주인을 향한 추억이 혹여 하나라도 상할까봐서다.
 
영화제 사무국에선 ‘김 샘(선생님)’이란 소탈한 호칭으로, 아시아 영화인들 사이에선 ‘미스터 킴’‘큰 오빠’로 통했던 그는 바로 5월 프랑스 칸국제영화제 출장 중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작고한 故 김지석(1960~2017) 부집행위원장·수석 프로그래머. 1996년 첫 출범부터 22년간 BIFF를 지켜온 유일한 창립멤버이자, 영화제가 부침을 겪은 최근 든든한 구심점이자 ‘멘토’가 됐던 이다. 향년 57세.
 
황망한 죽음이었던 만큼 그를 향한 슬픔은 넉 달이 지난 지금도 매일 새것처럼 무게를 더하고 있었다. 칸 출장길에 나섰던 그 날의 모습 그대로 멈춘 집무실의 시간처럼. 이건 차마 정리하지 못한 그 방에 깃든 기억들과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한 사람들의 못다 한 이야기다. 올해 BIFF가 아시아영화에 대한 고인의 애정을 기리는 ‘지석상’과 생전 그가 꿈꿨던 아시아 독립 영화인 네트워크 ‘플랫폼부산’을 선보인 이유도 다르지 않다. 
 
부산=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사진=강경희(STUDIO 706)


일본부터 중국·홍콩·이란 멀게는 아프가니스탄까지. 아시아 담당 프로그래머로서 그는 가보지 않은 나라가 없다. “미스터 킴은 전부 다 봐.” 그를 아는 영화인들은 이렇게 입을 모은다. 그의 작고 후 BIFF를 떠난 김현민 전 아시아 담당 코디네이터가 들려준 얘기다.
 
“아무리 만듦새가 거친 영화여도 (김지석) 선생님은 다 보세요. 그 영화를 만드는 데 들어간 시간과 노력을 존중하는 마음으로요. 영화에 연계된 시대적·정치적 배경, 감독 개인의 스토리까지 종합적으로 보셨어요. 제가 어떤 영화를 볼지 조언을 구할 때마다 늘 ‘사람을 많이 만나라’고 하셨죠.” 이렇듯 “자기 철학을 갖되, 낮은 자세로 겸손하게 관객을 가이드하고, 될성부른 신인 작가들의 재능을 꽃피우도록 고민하는 것.” 생전 그가 들려준 프로그래머의 역할이었다. 
 
사진=강경희(STUDIO 706)

사진=강경희(STUDIO 706)

“새벽 네 시인가 자다가 깨서 전화를 받았어요. 듣는 순간 안 믿겨서 멍해있던 차에, 칸에 있던 취재진에게 빗발치듯 전화가 왔어요. 부랴부랴 부산 사무실로 출근했죠. 안 그랬다면 정신을 놨을지도 몰라요.”
 
“마음씨 좋은 작은아빠 같이, 누구에게나 스스럼없이 대했다”는 김지석 부집행위원장. 그가 떠난 이후 한동안 사무국 전체가 집단 우울증에 빠져있었다고 김정윤 홍보실장은 말했다. 당혹한 현실을 누구도 쉬 받아들이지 못했다. 모든 게 그대로인 이 방에, 그가 지금도 출근하고 있다고 믿고 싶을 만큼.
 
외압이 시작된 2014년부터 아시아 담당을 함께한 김영우 프로그래머는 오랜만에 들어선 빈방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선생님!’ 부르면서 문을 열면 ‘왜 또 뭐가 문젠데’ 하고 웃으면서 맞이해주실 것 같은데…. 선생님과 주고받은 텔레그램 문자를 아직 간직하고 있습니다.”
 
사진=강경희(STUDIO 706)

사진=강경희(STUDIO 706)

사진=강경희(STUDIO 706)

사진=강경희(STUDIO 706)

아르바이트를 한 돈으로 해외 영화제를 다니며 문화 충격을 받은 서른여섯 살 청년은 결혼 자금 500만원을 털어 갓 태동한 BIFF 개최에 보탰다. 연애 시절 매일같이 프랑스 문화원에 데려가서 “뻥 차버리려 했다”고 농담처럼 말하던 아내는 그의 그런 열정을 아낌없이 지지했다. 자료 서적과 DVD가 천장까지 차오를 만큼, 아시아영화를 파고들수록 그에겐 친구가 많아졌다. 매해 영화제마다 ‘집 밥’을 대접한 아시아 각국 영화인이 수백 팀에 이를 정도다.
 
그 중 ‘오빠부대’라는 비공식 모임이 있다. 말레이시아 최대 미디어그룹 구매 담당 부사장, 베트남 등지에서 활동하는 배급업자 등 아시아의 마음 맞는 영화인이 모인 10년 지기 친구들이다. BIFF가 힘들 때마다 아무 조건 없이 힘을 보태줬다. “BIFF에선 신인 감독이든, 베테랑 제작자든 함께 고민하고 아낌없이 조언합니다. 설사 이번엔 성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진심으로 공감하며 인연이 됩니다.” 생전 그의 이야기. ‘플랫폼부산’의 정신이다. 
 
사진=강경희(STUDIO 706)

사진=강경희(STUDIO 706)

그가 이곳에 머물기 좋아했던 시간은 토요일. 영화제에 위기가 많았던 터다. 평일이면 조언을 구하려는 이들이 워낙 많았기에, 그는 거의 매주 토요일 한적한 사무실에 나와 영화를 보고는 했다. 부집행위원장이 되고서도 “김 수석(프로그래머)!”하고 불리기를 좋아했을 만큼, 영혼까지 시네필이었으니까. 평일 아침 누구보다 먼저 출근해, 사무국 직원들을 소환한 것도 그다.
 
“선생님 트레이드마크가 있어요. 사내 메신저에 로그인 하자마자 느낌표(!)를 쓰면 ‘왔어? 이리 와봐’란 뜻이고, 대화를 마무리할 때 쓰는 느낌표는 ‘알았어’ 이런 말씀이었어요.(웃음) 희소식이 있으면, 기쁜 마음에 공식 발표 전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하셨어요. ‘지석패치’라는 농담 반 하소연도 했지만, 홈페이지 관리, 개막식 준비 할 것 없이 영화제 일을 챙겼던 분이었어요. 그래서 올해 보도개요집이 나오자마자, 제일 먼저 선생님(정관 부산추모공원)께 가서 보여드렸어요. 항상 그랬던 것처럼….” 김 홍보실장의 나지막한 귀띔. 
 
사진=강경희(STUDIO 706)

사진=강경희(STUDIO 706)

사진=강경희(STUDIO 706)

사진=강경희(STUDIO 706)

“영화의 세상에서 가장 다정했던 사람.” 김지석 부집행위원장이 “초지일관 마음속 구루(Guru·스승)로 모셨던” 이란의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은 그를 이렇게 추모했다. 김 부집행위원장이 발굴해 방글라데시영화 최초로 BIFF 폐막작에 선정됐던 ‘텔레비전’(2012)의 신예 모스타파 파루키 감독은 “당신의 영혼이 지금 내 곁에 앉아 ‘괜찮아, 파루키!’라고 위로할 것 같다”며 울었다. 일본 배우 쿠니무라 준은 “한국만 아니라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를 만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라는 추모사를 남겼다. 그리고 텅 빈 방, 그의 책상 위엔 아직 뜯지 못한 편지들이 쌓여가고 있었다. 어쩌면 그를 향한 더 많은 감사와 슬픔을 담은 채.
 
사진=강경희(STUDIO 706)

사진=강경희(STUDIO 706)

그가 아꼈던 이 16회 영화제 포스터는 이란 거장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찍은 사진 ‘담(The Wall)’을 원화로 디자인했다. 사진 속의 담벼락처럼 햇살이 소담하게 비춘 달맞이고개 어귀에 작은 극장을 세우는 게 평생 간직한 그의 꿈이었다. 예순이 되는 해 미련 없이 영화제를 떠나 365일 그곳에서 자신만의 영화제를 열겠다고 그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3년 후였다면 이뤄졌을지도 모를 꿈.
 
양지바른 언덕에서 영면에 든 그를 대신해 정상진 엣나인·아트나인 대표는 2020년 달맞이고개에 100석 안 되는 규모의 소극장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싱가포르의 에릭 쿠 감독은 그 꿈의 극장 이야기를 언젠가 영화로 만들겠다고 했다. ‘지석상’과 ‘플랫폼부산’도 그의 또 다른 꿈들을 이어갈 것이다. 그렇게, 영화제는 계속될 것이다. 영원히 그와 함께.
고(故)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 사진=중앙포토

고(故)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 사진=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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