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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군 위안부 동원 협조"…일 공문서 한국어로 처음 번역돼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책임이 있다는 내용의 공문서가 한국어로 번역돼 소개됐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 겸 독도종합연구소장은 19일 세종대 학생회관 대공연장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밝히는 문서 공개' 기자회견을 열었다. 세종대 독도종합연구소는 지난해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 측 공식 문서를 한국어로 정식 번역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이번에 공개된 일본 정부의 공문서들은 1997년 일본의 '아시아 여성기금'이 출판한 『정부조사 종군위안부 관계 자료집성』에 실린 자료들이다. 이 자료집은 한국에서 정식으로 번역 출판된 적이 없었다.
 
세종대 독도종합연구소장인 호사카 유지 교수가 19일 오전 서울 광진구 세종대학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의 내무성과 외무성 등 행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조직과정에 개입한 증거를 공개하고 있다. 호사카 교수의 이날 발표는 1997년 아시아여성기금이 출판한 '종군위안부 관계자료 집성' 5권에 대한 분석연구를 통해 나왔다. [연합뉴스]

세종대 독도종합연구소장인 호사카 유지 교수가 19일 오전 서울 광진구 세종대학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의 내무성과 외무성 등 행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조직과정에 개입한 증거를 공개하고 있다. 호사카 교수의 이날 발표는 1997년 아시아여성기금이 출판한 '종군위안부 관계자료 집성' 5권에 대한 분석연구를 통해 나왔다. [연합뉴스]

 
연구팀이 번역한 1938년 일본 경찰청 문서에는 경찰이 부녀자 납치 사건을 수사하던 과정에서 일본군의 위안소 설치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후 위안부 문제에 협조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경찰은 부녀자 납치 사건이 잇따르자 단속에 나서 군 어용 업자들을 체포했다. 1938년 1월 19일 작성된 '상하이파견군 내 육군위안소의 작부 모집에 관한 건'이란 제목의 문서에는 "1937년 12월 중순부터 상하이에 보내는 위안부 3000명을 모집하기 시작했으며 이미 200~300명이 상하이에서 가동 중이다. 군의 의뢰로 업자가 위안부를 모집·운영하고 있으며 관서지방에서는 현 당국이 협력했다"는 업자들의 진술이 담겨있다. 
 
1938년 2월 7일 자 '시국 이용 부녀유괴 피의사건에 관한 건' 문서에는 업자 3명이 "아라키 대장, 도야마 미쓰루와 회합하여 일본으로부터 상하이에 3000명의 창부를 보내게 되었다"는 내용과 "70명을 보내는 과정에서 오사카부 구조 경찰서와 나가사키 현 외사과에서 편의를 제공받았다"는 진술이 담겨있다. 아라키 사다오 육군 대장은 전범재판에서 A급 선고받은 인물로 당시 중일전쟁에 대한 정치적 방침을 결정하는 자문기관 '내각 참의'를 맡고 있었다. 도야마는 일본 최초의 우익단체 겐요샤의 창시자다. 일본군은 병사들이 중국인 창부들과 성관계를 갖고 성병이 확산되는데다 현지 민간인 여성을 강간하는 일이 빈발하자 1937년부터 위안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진술에 등장한 정부 기관에 사실 확인 요청을 보냈다. 나가사키 현 외사과는 주 상하이 일본총영사관 경찰서장으로부터 위안소 설치 상황을 전달받고 임시 작부 영업 허가원에 대해 출국을 허가해왔다는 내용의 회신을 보내왔다. 오사카의 구조경찰서장도 "내무성으로부터 작부 모집에 관해 비공식으로지만 오사카 부 경찰부장에 의뢰한 바가 있으므로 상당한 편의를 제공했다"고 회답했다. 
 
19일 한국어로 변역 공개된 일본 공문서에는 외무성 소관의 현지 영사관, 내무성 산하의 경찰 등 정부 각 기관이 일본군 위안부 모집 과정에서 편의를 제공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연합뉴스]

19일 한국어로 변역 공개된 일본 공문서에는 외무성 소관의 현지 영사관, 내무성 산하의 경찰 등 정부 각 기관이 일본군 위안부 모집 과정에서 편의를 제공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연합뉴스]

 
경찰 상부 기관인 내무성은 "현지 상황을 볼 때 어쩔 수 없이 필요하다"며 위안부 동원을 허가했다. 일본 내에서 매춘부였고 만 21세 이상인 자는 도항을 묵인하고, 미성년자도 이유만 대면 도항이 가능케 했다. 군의 허가서나 재외공관의 증명서가 있는 업자들의 위안부 모집 활동은 방치했다. 문서에서 내무성은 "부녀들의 모집 주선업자에 대한 단속이 적절하지 못하면 제국의 위신에 상처를 입히고 황군의 명예를 더럽힐 뿐만 아니라…부녀매매에 관한 국제 조약의 취지와 어긋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호사카 교수는 "2015년 한일위안부 합의 당시 일본 정부는 정부의 법적 책임을 회피했고 한국정부는 합의를 해버렸다"며 "당시 한국 측의 실패는 피해자 증언 외에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문서들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구일본군이 위안소를 설치 운영하는 과정에서 편의를 제공했고, 위안부 생산 시스템에 포함된 공법으로서 법적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번역 작업을 끝낸 뒤 인터넷에 결과를 올리고 책을 출판할 계획이다.
 
이현 기자 lee.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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