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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이유 없는 슬픔

이건용 작곡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이건용 작곡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우수(憂愁). 사전을 찾아보니 ‘근심과 걱정’이다. 기대한 설명이 아니다. 한참 부족하다. ‘우수 어린 표정’이나 ‘우수가 흐르는 장면’이라면 이 뜻풀이가 다소 이해된다. 그러나 음악의 경우는 아니다.
 

말이 할 수 없는 것들을 시와 음악은 한다
음악이 그리는 우수는 걱정·슬픔이 아니다

우수 어린 곡을 찾는 것이야 어렵지 않다. 많으니까.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 한 곡을 고른다. 손쉽게 혹은 ‘d단조(20번)’ 혹은 ‘C장조(21번)’가 잡힌다. 느린 2악장을 듣는다. ‘우수 어린’이라는 말도 부족하다. 우수 그 자체다. 하긴 다른 협주곡도 상관없다. 예컨대 클라리넷 협주곡도 된다. 또 굳이 협주곡이 아니고, 느린 악장이 아니라도 좋다. 사랑을 노래하는 성악곡을 골라도 무방하다. 아름다운데 그냥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우수의 빛을 띤다. 심지어 거짓으로 친구의 애인을 유혹해 보는 2중창(‘여자는 다 그래’의 2막)도 들으면 마음이 아리다.
 
다른 작곡가의 곡도 물론 있다. 슈베르트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들, 특히 ‘B♭장조’ 1악장과 2악장, 브람스의 실내악곡들이 떠오른다. 쇼팽의 녹턴은 전곡이 그렇다. 녹턴뿐 아니라 그의 모든 작품에는 우수가 많건 적건 들어 있는 것 같다.
 
우리 전통음악에도 있다. 대금 혹은 단소로 하는 ‘청성곡’을 들으면 서늘한 바람이 마음을 지나간다. 모차르트의 우수가 우아함을 품었다면 ‘청성곡’의 그것에는 표표함이 섞였다고나 할까? 그 맛이 다르다. 곡의 표제나 그 어디에도 근심·걱정의 사연이 없지만 구슬프다. ‘구슬프다’는 말을 하니까 여러 곡이 또 떠오른다. 피리 ‘상영산’, 대풍류의 느린 악장들, 서도소리(아예 이름이 ‘수심가’라는 노래도 있다), 불교의 경문을 노래하는 염불···. 예불 때 부르는 ‘지심귀명례’는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합니다’라는 가사인데 애조가 깊다. 태평소 가락은 가까이서 들으면 흥겨워도 멀리서 들으면 어느덧 구슬퍼진다. ‘수제천(壽齊天)’은 ‘수명이 하늘과 나란하다’는 뜻의 제목이지만 유장하면서도 감히 범하기 어려운 우수를 띠고 있다.
 
이 음악들의 우수란 무엇인가? 이 음악들이 근심과 걱정을 나타낸다? 부분적으로 설명이 되는지는 몰라도 동의는 어렵다. 간혹 모차르트의 고단한 삶이 음악에 그림자를 드리웠다고 설명하기도 하는데 나는 구차하게 느낀다. 그래서 오히려 말을 의심한다. 우수라는 단어가 문제 아닌가? 감당할 내용이 막대해서 다른 어떤 말로도 할 수 없으니 이 말이 벅찬 대로 맡고 있는 것 아닌가? 하긴 이 세상에는 “말로 나타낼(형언·形言) 수 없는 것”들이 많고도 많다. 음악의 우수가 그중 하나이리라.
 
말이 부족하니까 시(詩)가 나오나 보다. 시에는 있다. 하이네는 한 소녀에게 “너 꽃처럼 아름답구나” 하고 나서는 이어서 “너를 바라보노라면/ 내 마음에 아픔이 솟는다”(‘그대 꽃과 같이’의 첫 절)고 노래한다. 박용철은 눈 온 아침의 서정을 그리다가 “임이여 설운 빛이/ 그대의 입술을 물들이나니/ 그대 또한 저 눈을 사랑하는가”(‘눈은 나리네’에서)라고 읊는다. 이 아픔, 이 설움은 걱정·근심이 아니다. 음악에서처럼 뜬금없는 우수다.
 
가을을 우수의 계절이라고 한다. 맞다. 높아지는 하늘, 새삼 멀리 보이는 산, 그 산의 달라지는 빛깔, 떨어지는 나뭇잎, 그 나뭇잎을 몰고 가는 바람. 노래도 많고 시도 많다. 그 많은 내용을 나에게 요약하라면 ‘덧없음’(이 말도 성에 차지 않지만)이라 하겠다. 모든 계절이 시간의 흐름과 변화를 보여주고 어떤 생물이든 실은 ‘잠시 있다 가는 것’이지만 가을은 그것을 눈에 띄게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저 우수의 음악들도 그렇다는 것인가? 말이 나타내지 못하는 덧없음을 음악이 들려주고 있는 것인가?
 
지면에는 음악을 담을 수 없으니 시구로 마감해야겠다. 지독한 더위에 고생했으면서도 가을에 우리는 노래한다. “머지않아 우리들 차디찬 어둠 속에 잠기리니/ 잘 가라 너무나도 짧았던 우리의 힘찬 여름 빛이여”(보들레르의 ‘가을의 노래’에서)
 
이건용 작곡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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