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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극, 국경 넘어 세계로

‘환도열차’ ‘햇빛샤워’ 등 현대사회와 자본주의에 대한 환멸을 노골적으로 표현해 온 작가 겸 연출가 장우재의 ‘미국 아버지’가 국립극단 무대에 올랐다. 2013년 창작산실 대본공모 최우수작에 선정된 작품이다. 소극장 초·재연을 거쳐 최고 권위의 명동예술극장에 입성해 완성도 높은 무대를 선보이게 됐다. 지난 정권에서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외국 작품이나 근현대 희곡 재발견, 외국 연출가의 고전 재해석 등에 집중해 왔던 국립극단이 동시대 사회문제를 직설하는 ‘우리시대 이야기꾼’의 작품을 오랜만에 초청한 터라 더욱 눈길을 끈다. 
 

연극 ‘미국 아버지’
기간: 9월 25일까지
장소: 명동예술극장
문의: 1644-2003

그런데 왜 ‘미국’ 아버지일까. 안 그래도 번역극이 많은 연극판에서 한국인 작가가 한국과 전혀 무관한 배경과 인물을 내세워 창작극을 만드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시도이기에 초기엔 우려도 컸다고 한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보편적인 호소력을 갖는 무대는 오히려 “국경을 뛰어넘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창작극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훗날 한국적 특수성을 넘어 세계 시민이 공감하는 이야기로 시야를 넓힌 ‘창작극 패러다임의 전환’의 계기가 된 작품으로 꼽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우리와 영 딴 세상 이야기도 아니다. 2004년 이슬람 무장단체의 참수로 아들을 잃은 반전 활동가 마이클 버그의 실화를 모티브 삼았기에, 동시기 비슷한 사건을 겪은 우리에게 공감대도 있다. 잊을만하면 유럽 어디에서 테러가 발생하고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 등 선진국들이 앞장서 국수주의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요즘이기에 더없이 현재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뿐 아니다.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1949)에서 우리 시대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처럼, 장우재가 그린 미국 아버지도 우리 아버지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실제로 자본주의의 폭력성에 시달리며 아들 문제로 괴로워하는 빌이 환각을 보다 결국 자살하고 마는 스토리라인은 ‘세일즈맨의 죽음’의 골격을 따르고 있다. 
 
68혁명 세대로 젊은 시절 자유와 평등, 정의를 외쳤지만 믿었던 애인이자 동지 낸시와 친구 데이빗에게 배신을 당하고, 자본의 노예로 평범하게 살다 자본에게도 배신당해 마약중독자 신세가 된 빌. 그는 세상 모든 것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다. 월스트리트의 고액연봉자인 아들 윌에게 얹혀살며 자본주의 꼭대기에 오른 친구 데이빗에게 저주를 퍼붓지만, 아프리카 남수단으로 자원봉사를 떠나는 윌에게 “넘어져도 좋은 데서 넘어지라”며 만류하는 모순덩어리다. 9·11테러가 나고 이라크로 건너간 윌이 참수를 당하자 무슬림 며느리에게서 손자를 빼앗고 애꿎은 사돈 집안에 분노를 터뜨린다. 
 
1930년대를 배경으로 그려진 미국 아버지 윌리가 자본주의에 소외된 개인의 쓸쓸한 뒷모습 정도였다면, 2000년대를 배경으로 그려진 미국 아버지 빌은 그보다 훨씬 더 망가진다. 자본의 폭력성과 도덕적 타락의 희생양이 된 것은 물론, 스스로 혁명 정신으로 신봉했던 자유와 평등, 정의의 가치에게도 철저히 버림받았기 때문이다. 윌리의 자랑이었던 아들 비프는 윌리 자신의 과오에 상처받아 인생을 망쳤지만, 빌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들 윌은 신자유주의와 테러, 전쟁 같은 거대담론의 희생양이 된다. 
 
그런데 윌리의 환각이 좋았던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과 잘못된 선택에 대한 회한에 관한 것이라면, 빌의 환각은 조금은 미래지향적이다. 빌의 젊은 날인 빌리와 낸시, 데이빗의 환영도 분노에 찬 빌을 다독이지만, 결정적으로 빌을 변하게 하는 건 아들 윌의 환영이다. “세상이 만든 자유와 정의, 평등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윤리로 나부터 세워야 한다”며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봉사활동을 떠났던 윌은 죽어서도 그 확신에 변함이 없다. 자신을 참수한 이슬람 무장단체들과 ‘친구’가 됐고, “우리는 서로 하기 싫은 일을 했을 뿐”이라며 “분노를 버리고 진짜를 바로 보라”고 호소한다. 
 
윌리의 죽음이 비프에게 자본의 소산인 보험금을 남겼다면, 빌과 윌의 죽음은 세상에 평화를 향한 호소를 남겼다. 연극은 진짜 ‘미국 아버지’ 마이클 버그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잠적했다는 길고 긴 편지 전문을 자막으로 투사하며 막을 내린다. 그는 왜 자신이 아들을 참수한 살인자를 비난하지 않고 부시 행정부를 비난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아들을 죽인 것은 고통스럽게 칼을 휘두른 ‘친구’가 아니라 가만히 앉아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면서 그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지도자들’이라고. 하지만 평화의 책임을 마냥 저들에게만 돌리진 않는다. “내가 멈춰야 돼. 우리가.” 마지막 편지를 쓰기 시작하는 그의 짧은 한 마디가 울림이 길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극단이와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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