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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한 고성능 … 음악에 모든 것 쏟아붓다

ⓒWilfried Hoesl

ⓒWilfried Hoesl

키릴 페트렌코(Kirill Petrenko)라는 이름은 2015년부터 세계 음악팬들에게회자되기 시작했다. 사이먼 래틀에 이어 2019년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석지휘자로 선출되면서다. 유력 후보였던 독일의 크리스티안 틸레만(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이나 라트비아의 안드리스넬손스(보스턴 심포니)를 제친 터라 더욱 화제가 됐다.  

첫 내한한 차기 베를린필 지휘자 키릴 페트렌코

 
그는 1972년 러시아 옴스크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바이올리니스트 아버지와 음악학자 어머니 밑에서 자연스럽게 피아노를 배웠다. 그가 18살 때 가족들은 더 나은 교육 환경을 찾아 오스트리아로 이주했고, 페트렌코는 빈에서 한스스바롭스키의 제자인 우로쉬라이요비츠에게 지휘를 배웠다. 스바롭스키는 클라우디오 아바도·주빈 메타·이반 피셔·마리스 얀손스 등 거장 지휘자들을 길러낸 명스승이다. 라이요비츠 역시 페트렌코를 비롯해 안드레스 오로스코 에스트라다·키릴 카라비츠 등을 배출해 빈 지휘 악파의 전통을 계승했다.  
 
페크렌코는 95년 브리튼의 ‘오페라를 만들어봅시다’로 오페라 지휘에 데뷔했다. 이후의 경력도 오페라를 중심으로 펼쳐졌다. 2013년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음악감독으로 부임한 그의 임기는 2021년까지다.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대작 ‘니벨룽의 반지’를 세 차례나 지휘하며 두터운 신뢰를 줬다.  
 
그럼에도 이름이 뒤늦게 알려진 까닭은 은둔형 성격 때문이다. 웬만해선 인터뷰를 안 하고 여간해서는 사생활을 노출하지 않는다. 조용하고 학구적인 자세에 음반 녹음도 많지 않다. 그에 대한 궁금증은 조용히 쌓이는 눈처럼 커져만 갔다.  
 
13일 저녁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와 함께한 첫 내한공연에서 열정적인 지휘를 선보이고 있는 키릴 페트렌코. [사진 빈체로]

13일 저녁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와 함께한 첫 내한공연에서 열정적인 지휘를 선보이고 있는 키릴 페트렌코. [사진 빈체로]

13일 저녁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페트렌코가 베일을 벗었다. 현재 수병인 바이에른 슈타츠오퍼를 이끌고 가진 첫 내한공연이었다. 협주곡 파트너인 러시아 출신 피아니스트 이고르 레비트도 첫 내한이었다.  
 
첫 곡은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페트렌코의 격렬한 지휘 동작에 건반 쪽으로 귀를 기울이던 레비트가 용수철처럼 연주를 시작했다. 글렌 굴드처럼 구부정한 자세에 세부를 낱낱이 조명하는 건반 터치가 빛났다. 오케스트라 총주는 상쾌하고 묵직한 파쇄음을 냈다. 피아노는 오페라 아리아를 노래하는 소프라노 같았다. 페트렌코의 손짓과 레비트의 몸짓은 그대로 연주의 일부가 됐다. 서서히 내려오는 손이 자아내는 긴장감에 청중은 숨을 죽였다. 페트렌코는 피아니시모부터 포르티시모까지, 오디오로 비유하면 볼륨을 제로에서 최대까지, 자유자재로 올리고 내렸다. 응집력 있는 음은 명료하고 명쾌하게 흩뿌려졌다.  
 
말러 교향곡 5번은 트럼펫에 이어 나오는 심벌과 스네어 소리가 명확했다. 총주는 어둡고 강렬했다. 페트렌코는 몸짓으로 거대한 격정의 발걸음을 그려냈다. 주먹을 불끈 쥐기도 하고 앞뒤로 끊임없이 오가며 오케스트라를 휘어잡고 리드했다. 2악장은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호른과 첼로의 중저음이 부드럽게 블렌딩됐고 팀파니는 폭주와 절제의 넓은 폭을 오갔다. 첼로군의 중간부는 비애감을 자아냈다. 네모난 지휘대가 페트렌코에겐 좁았다. 기어를 스포츠모드에 넣은 차처럼 견고하고 크게 부풀어오르는 사운드는 놀라웠다. 강철로 된 나비 수만 개가 일제히 날아오르는 듯했다.  
 
3악장에서 우아한 발레리노처럼 지휘하는 페트렌코는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업그레이드 버전 지휘자 같았다. 악단은 현악 피치카토로 동화 같은 세계를 그렸다. 피아니시모와 포르티시모 사이를 조절하는 페트렌코의 다이내믹 레인지와 호른의 상쾌한 연주가 돋보였다. 펄펄 뛰면서 지휘하던 페트렌코는 느린 4악장 아다지에토에서도 끊임없이 유동하는 에너지를 만들어냈다. 마지막에 두 팔을 활짝 펴자 장관이 펼쳐졌다. 바로 그 순간을 위한 움츠림과 절제였다. 점점 작아지는 볼륨 조절도 정교했다.  
 
베토벤 ‘운명’ 4악장을 연상시키는 각 현악기의 푸가에서는 복잡함을 간결하게 하는 페트렌코의 솜씨가 느껴졌다. 악기별 성부별로 뚜렷한 대비를 이뤄냈다. 펄펄 뛰던 페트렌코는 5악장까지 전혀 지치지 않고 부드럽고 절도 있게 완급을 조절해나갔다.
 
그가 두 팔을 벌리면 모든 것이 확장됐다. 먼 지평선을 때리는 벼락이 보이고 천둥소리가 들릴 듯했다. 음 하나하나가 곤두선 듯 울렸다. 강렬한 타악기와 그에 맞춘 모든 악기들의 밸런스가 돋보였다. 온몸의 기운을 다 쓰는 페트렌코의 지휘에 총주는 밝게 빛났다. 요요처럼 자유자재로운 템포는 푸르트뱅글러 같았다. 이런 연주를 하고 나면 그냥 녹초가 되지 않을까. 그의 건강이 염려될 정도였다.  
 
공연 뒤 페트렌코는 트럼펫, 호른, 트롬본,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순으로 단원을 기립시켰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객석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환호했다. 곧 얻게 될 베를린필 수장이라는 직함은 전혀 손색이 없어 보였다. 그가 임기를 시작할 2019년이 몹시 기다려졌다.  
 
 
글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음악 칼럼니스트 kinsechs0625@gmail.com
사진 빈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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