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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 쑹즈원에게 돈 빌린 기밀 발설에 진노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546>
건국 초기 쑹칭링(왼쪽 셋째) 등과 우시(無錫)를 방문, 기념사진을 남긴 판한넨(왼쪽 여섯째). 1950년 겨울, 우시 교외.

건국 초기 쑹칭링(왼쪽 셋째) 등과 우시(無錫)를 방문, 기념사진을 남긴 판한넨(왼쪽 여섯째). 1950년 겨울, 우시 교외.

중앙 정치국 상무위원들에게 말했다는 마오쩌둥의 법률관이 민간사회에 떠돈 적이 있다. “헌법이라는 것을 만든 적은 있다. 세상은 시시각각 변한다. 일 터질 때마다 헌법인지 뭔지 뒤적거린들 해답이 나올 리 없다. 우리 몇 명이 모여서 결정하면 된다.” 사실 여부를 확인할 길은 없다.  

저우언라이밖에 모르는 극비 사항
판한넨이 이 사실을 실토했다며
천이 시장, 마오쩌둥에게 보고
기밀 누설 엉뚱한 죄목 처벌이 관례
판한넨, 문혁 때 다시 체포돼 수감

 
직접 겪었다는 무용담도 들은 적이 있다. “목욕탕에서 이상한 사람을 발견했다. 단추 끄르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가까이 가서 들어 봤다. 엄청난 내용이었다. 단추 한 개 풀 때마다 마오쩌둥 나쁜 놈, 린뱌오 나쁜 놈을 반복했다. 목욕 마치고 옷 입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찌나 놀랐던지, 가슴이 두근거리고 무서웠다. 파출소에 달려가 일러바쳤다. 다음날 공안이 와서 그 미친놈을 잡아갔다. 나도 속옷 바람으로 현장에 있었다. 나를 발견한 공안이 한쪽 눈을 찡긋하며 씩 웃었다. 큰 공을 세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사람에게도 칭찬을 받았다. 듣고만 있던 장모는 슬그머니 밖으로 나갔다. 따라가 보니 공중변소로 들어갔다. 변소에 칸막이가 없던 시절이었다. 쭈그리고 앉아 옆사람, 앞사람과 얘기 나누기에 딱이었다. 장모 목소리가 엄청나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밖에까지 소리가 다 들렸다. 우리 사위가 사형감을 체포했다며 어찌나 자랑하는지 민망할 정도였다.”
 
거짓말 같은 얘기가 계속됐다. “나는 상 받으러 오라는 소식을 기다렸다. 연락이 없기에 파출소를 여러 번 들락거렸다. 갈 때마다 조사 중이라는 말만 들었다. 2년이 흘렀다. 하루는 버스 타고 동생 집 가다가 거리에 서 있는 낯익은 사람을 발견했다. 내가 고발한 그사람이었다. 황급히 내려서 온 길을 되돌아갔다. 어떻게 감옥에서 나왔느냐고 물었다. 그냥 나가라고 해서 나왔다는 말을 듣자 화가 치밀었다. 동생 집 가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파출소로 갔다.”
 
소장에게 “사형이 마땅한 범죄자를 풀어 준 이유를 대라며 따졌다. 소장은 내게 차부터 권했다. 어디서 구했는지, 향기가 그럴듯했다. 내가 풀린 기미를 보이자 설명을 시작했다. 네가 고발한 사람의 행위는 누가 봐도 총살감이다. 그래도 이상하기에 주변을 조사했다. 입 무거운 모범 노동자라며 칭찬이 자자했다. 어린 시절부터 다시 살펴봤다. 고향으로 사람을 파견했다. 아버지가 마을 공터에서 비판당할 때 구석에서 지켜보는 것을 봤다는 증인들이 많았다. 그 아버지는 20여 년이 지난 후에 무고함이 밝혀졌다. 충격을 받은 소년은 옷 입고 벗을 때 웅얼거리는 습관이 생기기 시작했다. 단추 풀고 채울 때만 그랬지 평소에는 그런 적이 없었다. 마오 주석에 대한 험담도 혼자만 했지, 남 앞에서는 한 적이 없다. 그 사람이 죄인이 된 이유는 멀쩡한 사람을 반동 취급한 국가의 책임이다. 이런 사람에게 죄를 묻는 것은 폭력이다. 그래서 풀어 줬다. 네게 이 사실을 통보하려던 참이었다.”   
 
공소시효나 일사부재리도 생소한 용어였다. 15년 형을 선고받고 풀려난 판한넨(潘漢年·반한년)은 한동안 자유를 누렸다. 베이징 출입도 막는 사람이 없었다. 하루는 사진관에 들렀다가 눈에 익은 사진이 걸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건국 초기 쑹칭링(宋慶齡·송경령) 일행과 우시(無錫)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쳤다. 감옥에 갇혀 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국부 쑨원의 후계자였던 랴오중카이(廖仲愷)와 중국 여성계 영수 허샹잉(何香凝. 가운데)의 외동딸 랴오멍싱(왼쪽)은 쑹칭링의 최측근이었다. 오른쪽은 랴오멍싱의 유일한 오빠 랴오청즈(廖承志). 국가 부주석에 내정됐지만, 취임 전에 사망했다. [사진 김명호 제공]

국부 쑨원의 후계자였던 랴오중카이(廖仲愷)와 중국 여성계 영수 허샹잉(何香凝. 가운데)의 외동딸 랴오멍싱(왼쪽)은 쑹칭링의 최측근이었다. 오른쪽은 랴오멍싱의 유일한 오빠 랴오청즈(廖承志). 국가 부주석에 내정됐지만, 취임 전에 사망했다. [사진 김명호 제공]

상하이 부시장 시절인 1954년 봄, 판한넨은 쑹칭링을 방문했다. 18년 전 마오 주석이 쑹즈원(宋子文·송자문)에게 빌린 돈이라며 미화 5만불을 건넸다. 쑹칭링은 판한넨이 자신을 이용하려 한다는 의심이 들었다. 마오나 저우언라이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었기 때문이다. 총애하던 수행비서를 불렀다. “판한넨에게 돌려줘라.”
 
수행비서는 공안담당 부시장에게 돈을 돌려줬다. “판한넨에게 전달해라.” 공안담당 부시장은 판한넨을 추궁했다. 궁지에 몰린 판한넨은 “옌안(延安)시절 마오 주석이 쑹칭링을 통해 국민당 재정부장이던 동생 쑹즈원에게 빌린 돈을 갚은 것”이라며 아는 대로 실토했다. 공안담당 부시장은 시장 천이(陳毅·진의)에게 판한넨의 진술을 보고했다. 천이도 마오쩌둥에게 전말을 숨기지 않았다.  
 
중국 공산당은 비밀정당으로 출발했다. 대외비(對外秘) 못지않게 내부 비밀이 많았다. 마오쩌둥이 쑹즈원에게 돈 빌린 사실은 저우언라이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극비 사항이었다. 천이의 보고를 받은 마오는 내부기밀 누설이라며 진노했다. 내부기밀 누설은 엉뚱한 죄목으로 처벌하는 것이 관례였다.  
 
6개월 후 판한넨이 체포되자 쑹칭링은 당황했다. 억울함을 얘기하면, 그것도 내부기밀 누설이었다. 문혁이 발발하자 판한넨은 다시 체포됐다. 3년 전과 같은 죄목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감옥과 농장을 전전하다 비참하게 세상을 떠났다.
 
쑹칭링은 판한넨에게 죄지은 기분이었다. 1974년 4월 평생의 동지 랴오멍싱(廖夢醒·요몽성)에게 보낸 영문편지에서 사실을 털어놨다. 그 덕인지는 몰라도 8년 후 판한넨은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이미 세상 떠난지 5년 후였다.
 
 
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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