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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여신상, 책임의 여신상

소통 카페
아내와 진도, 흑산도, 홍도, 신지도, 선유도 등 다도해와 고군산 해상을 떠다녔다. 풍광은 간절하게 수려했다. 파도와 해무에 따라 배편의 연발착에 애를 태우기는 했지만 난분분한 세상의 풍진을 바다 바람에 날리는 기분이었다.
 
흑산도에는 단골 유배지라는 애절한 역사가 있었다. 육지와 소통할 수 없는 절해고도라는 입지 때문이다. 흑산도 유배문화공원의 설명에 따르면 고려 의종 2년 1148년으로 기록된 최초의 유배 이래 왕궁의 도둑과 남녀상열지사의 스캔들 주인공도 포함하지만 정치적인 이유가 주된 유배의 원인이고, 소통의 차단이 목적이었다.
 
정약용의 형인 손암 정약전도 그러했다. 천주에 대한 믿음이 소통되는 것을 기존 권력은 용납할 수 없었다. 순조 재위 1년인 1801년 신유사옥으로 동생과 함께 남도 귀양길에 올라 나주 금성산 아래 삼거리 주막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헤어진 형제는 다시는 살아서 보지 못했다. 유배지 흑산도에서 죽을 때까지 손암은 어족 227종의 명칭, 형태, 특성, 분포에 대한 자연과학적 관찰연구서인 자산어보를 남겼다. 전인미답의 전문서적을 역사에 소통시킨 것이다.
 
도끼상소라는 단호한 행동으로 자신의 믿음을 전한 면암 최익현도 흑산도 유배자였다. 일본과 통상조약을 체결하려는 조정에 5조 척사소(斥邪疏)로 불가함을 상소하다가 위리안치(圍離安置)당했다. 목숨을 건 격렬한 논쟁 소통의 결과였다. 위리안치는 본인의 거주지를 제한하기 위하여 집 주위에 울타리를 치거나 가시덤불을 싸서 외인의 출입을 금한 형벌이다. 유배자의 심신과 시공간을 격리하고 소통 관계를 파괴해 산송장을 만드는 형벌이다.
 
바다와 섬에서 돌아온 육지는 풍진이 자욱했다. 절해고도도 아니고 유배지도 아닌데 위리안치와 불통으로 진통한다. 중학교 여학생이 집단폭행을 당하여 피투성이 중상을 입은 사건도 그러하다. 아무도 돌봐 주지 않는 골목길에서 무릎을 꿇고 폭행당하며 느낀 공포를 누가 알 수 있을까. 현대판 지옥이었던 아우슈비츠 유대인 강제수용소를 지배하던 혐오감, 공포감, 모멸감, 분노감, 자포자기, 무감각, 상실감, 환멸감, 죽음(죽음의 수용소, 빅터 프랭클)의 범벅이었을 것이다.
 
잔학한 집단폭행에 대한 처벌의 수위를 놓고 소년법에 대한 논쟁이 일고 있다. 법(法)은 물 수(水) 변에 갈 거(去)가 합친 것이다. 법은 물처럼 흘러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꿈 많은 소녀를 파괴한 범죄를 다스릴 수 없는 법이라면 물같이 흘러가지 못할 것이다.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법은 억울하게 눈물 흘리는 사람에게로 흘러가 그들을 감싸 줘야 한다. 흐르지 못하는 물은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고 썩을 뿐이다.
 
가해자들은 ‘피 튀기는 게 좋다’며 ‘어차피 살인미수인데 더 때리자’고 하고 피해자를 조롱했다. 잘못과 반성에 무감각하고 양심이 마비된 것이다. 자유를 감독할 수 있는 책임에 대한 교육이 부실해서이다. 교육은 자유의 여신상과 책임의 여신상이 함께해야 한다.
 
 
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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