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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성장 딜레마에, 경제제재 장기전 끌고 가야 승산

『북한 경제 베일을 벗기다』 저자 김병연 서울대 교수
신인섭 기자

신인섭 기자

『북한 경제 베일을 벗기다』

『북한 경제 베일을 벗기다』

체제경제학 권위자인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최근 『Unveiling the North Korean Economy(북한 경제 베일을 벗기다)』라는 제목의 책을 내놨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출판부에서 나온 영문 서적이어서 국내보다 해외 언론들이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파이낸셜타임스가 “희귀한 자료를 학무적 엄격성으로 분석한, 북한을 다루는 정책결정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는 서평을 쓴 데다, BBC와 CNN 등 많은 방송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한다. 김 교수는 “북한 경제를 이해해야 올바른 대북정책과 통일정책을 세울 수 있다”고 강조한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준비했던 것이 가장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북한의 아킬레스 건을 밝히는 단서가 됐다”는 김 교수를 만나 대북 해법을 들어봤다.
 
책에 북한 경제 관련 자료가 많다. 구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영국에서 돌아왔을 때 한국엔 북한 관련 자료가 많을 줄 알았다. 그런데 어지간한 경제지표 하나 구하기가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만큼이나 어려웠다. 그래서 직접 찾아 나섰다. 우선 탈북민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했다. 현재 약 3만 명의 탈북민 중 2000명 이상의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있다. 2011년부터는 북한과 거래하는 180여 개 중국 기업을 취재해 자료를 모았다. 북한의 철광석·석탄 수출량은 통계로 잡히지만 중국 기업이 어떤 식으로 북한과 거래를 하는지, 가장 큰 이득이 뭔지, 어떤 효과를 기대하는지 등에 대한 미시 데이터를 모았다.”
 
그래서 얻은 답은 무엇인가.
“우선 북한의 경제 사정이 김정일 시대보다 나은 것은 확실하다. 한국은행은 2015년 북한의 경제성장률을 1%로 봤지만 내 분석으로는 2.5%에 이른다(한국은행은 지난달 북한의 2016년 경제성장률을 3.9%로 평가했다. 이는 지난 17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북한이 성장하는 이유는 세 가지다. 무역과 시장, 그리고 (시장경제에 대한) 정권의 묵인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시장은 김정은 정권의 적이다. 김정은으로선 자기 기반을 잠식하는 성장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이다.”
 
적과의 동침인 셈이다.
“김정은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속도를 내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외세에 대한 두려움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김정은이 장기적으로는 지는 게임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당장은 먹고살 수 있으니 체제 유지가 가능하지만 장기적으로 타협을 하지 않으면 정권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그래서 유리한 협상 카드를 손에 넣기 위해 핵과 미사일 기술의 고도화를 더욱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단기전에 휘둘리지 말고 장기전으로 가져가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어떤 장기전인가.
“김정은이 2013년부터 추진한 핵-경제 병진노선이란 결국 내부 문제(경제)가 해결돼야 외부 문제(핵)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내부 문제에서 우리가 이기고 있다. 제재 전까지 북한과 교역하는 중국 기업들은 매출액의 7%를 리베이트로 줬다. 북·중 거래 규모가 연간 6조원이니 리베이트가 최대 4000억원에 달했다. 이 중 상당액이 북한의 엘리트 그룹에 흘러간다. 장성택 처형 사건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광물과 수산업 무역을 장악했던 장성택 손에 막대한 리베이트가 들어갔고 이를 안 김정은이 분노한 것이다. 반면 중간 관료들은 돈이 없다. 시장활동을 하지 못해서다. 한 달에 50달러는 있어야 생활이 가능한데 이들의 월급이 1달러다. 뇌물을 받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뇌물을 주는 사람들을 장기적으로 보호하려 하지 않겠나. 불법시장(장마당)이 묵인되고 있는 이유다. 일반 주민의 경우 ‘우리들이 알아서 먹고살 테니 건드리지 말라’는 분위기다(북한엔 허가받은 약 400개의 시장과 60만 개의 점포가 있다. 그 밖에 무수히 많은 장마당이 존재하는데 가구 수입의 70~90%가 여기서 나온다). 김정은으로서도 줄 수 있는 게 없으니 도리가 없다. 김정은이 엘리트들은 잔인한 처형으로 제어하고 주민들은 포옹 같은 스킨십을 자주 구사하는 이유가 그래서다.”
 
그런 체제가 장기적으로 붕괴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의 부제 역시 ‘붕괴와 이행(Collapse and Transition)’이다.
“그렇다.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붕괴다. 아래에서부터의 시장화가 진행되면 결국 김정은은 시장과 타협해 권력을 나눠야 할지, 아니면 시장을 척결하기 위해 화폐개혁 같은 반동정책을 해야 할지 선택해야 할 시점에 몰리게 될 것이다. 권력과 돈의 싸움에서 결국 돈이 이기게 마련이다. 돈은 쌓이지만 권력은 축적되지 않는다. 김정은이 타협을 선택한다면 중국식 모델로 가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를 맛본 국민들이 세습 독재권력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스탈린 이후의 흐루쇼프처럼 보다 민주적인 권력으로의 레짐 체인지가 북한 내부에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김정은이 서두르는 것이다. 아마도 할 수 있는 만큼 판을 키우고 미국이 공격 명령을 내리기 직전까지 밀어붙일 것이다.”
 
전쟁이 날까.
“미국 종군기자가 같은 질문을 하길래 ‘안 난다’고 말해줬다. 전쟁이 나면 가장 많이 잃는 사람이 김정은일 텐데 그가 전쟁을 하려 하겠나. 그랬더니 ‘내일 짐 싸서 돌아가겠다’고 하더라.”
 
미국이 공격할 수도 있다.
“군사공격은 장기적으로 우리가 이기고 있는 싸움을 파탄 내는 것이다. 성공 여부는 예측하기 어렵고 막대한 피해는 명백하다. 그보다는 경제적으로 풀어야 한다. 소련의 붕괴도 스타워즈가 아니라 사회주의 경제의 붕괴 때문이다. 제재 국면이 2년 정도 더 갈 수 있다. 성급하게 공격하면 더 큰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강력한 제재에 집중하는 것이다. 가능성은 30%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30%가 넘는 해법이 뭐가 있나. 대화해서 풀자는 사람도 있지만 경제학적 관점에선 가능한 일이 아니다. 사람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최대한의 제재를 가해야 한다. 지도자의 의지도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무를 담당한 공무원들이 하는 척만 한다. 광물은 부피가 큰 아이템이기 때문에 감시만 철저하면 막을 수 있다.”
 
이번 유엔 제재는 어떻게 평가하나.
“섬유·의류 수입 금지를 추가했지만 원유 공급 중단과 해외 근로자 취업 금지 쪽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다. 섬유는 전체의 10~20%에 불과한 데다 부피가 작아 밀무역이 쉽다. 감시하기가 쉽지 않다. 한쪽에 감시자산을 집중하는 게 낫다. 다만 이번 제재가 제대로 작동하면 지난해 대비 수출액의 80~90%가 줄어들게 돼 북한 정권에 타격을 줄 수 있다.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제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원유 파이프를 막는 데 중국이 협조를 안 하는데.
“원유는 중국의 마지노선이다. 중국이 한반도 전략을 수정하기 전에는 끊지 않을 것이다.”
 
핵미사일이 실전 배치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어쩌나.
“전술핵 재배치든 핵무장이든 모두 다 가능성은 열어두고 연구를 해야 한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푸는 게 우선이다. 사실 이 책을 쓴 이유도 그것이다. 군사 정치적 옵션과는 달리 경제 옵션은 팩트를 기반으로 한다. 그만큼 예측이 가능하고 보다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이 알 수 있도록 책을 영어로 썼다.”
 
경제 옵션을 위해 중요한 것은.
“정확한 통계가 중요하다. 남한 경제가 북한 경제를 추월한 시기를 1974년으로 보는 게 정설인데 내가 살펴보니 이미 68년에 앞질렀다. 그동안 물가를 고려한 실질성장률 대신 북한이 발표한 자료만 사용하다 오류를 범한 것이다. 제때 사실을 알았더라면 북한에 보다 자신감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었을 테고, 지금과는 많이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수세적으로 ‘멸공’ 구호만 외치다 많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5·24 조치도 마찬가지다. 명분이 있는 조치였지만 제대로 된 통계를 가지고 접근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한국 기업은 다 철수하고 중국 기업만 득을 봤다. 우리는 북한에 대한 레버리지만 잃게 된 것이다. 현실적으로 도움이 안 되는 5·24 조치를 해제하자고 칼럼을 썼다가 욕만 호되게 먹었다.”
 
책의 3부는 독일식 통일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가장 좋은 소식이다. 5년만 북한 정권이 더 지속된다면 가장 오랜 사회주의 체제로 기네스북에 오를 것이다. 북한이 오래 버틴 덕분(?)에 사회주의 체제가 자본주의 체제로 이행될 때 겪은 각종 실패와 시행착오를 답습하지 않도록 배울 기회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 실제로 조지아는 체제 이행기에 국내총생산(GDP)의 70%가 사라졌다. 불평등 문제도 있다. 사회주의 소련의 지니계수는 0.2였는데 체제 이행 후 0.48이 됐다. 2~3년 만에 북구 국가가 남미 국가로 전락한 것이다. 이 같은 점들을 막기 위해서 할 일이 많다. 예컨대 북한 지하자원 개발도 민영화할 때 지분의 49%는 북한 주민들에게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효율과 통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다.”
 
 
이훈범 논설위원
cielble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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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