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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세]청년 인턴과 수저 계급론

영국이나 미국 등의 선진국에도 '열정페이'가 있습니다. 아예 무급인턴으로 스펙을 쌓는 사례도 많은데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투자하는 전략은 과연 얼마나 효과적일까요. [고보면 모있는 기한 계뉴스] 열두 번째 이야기는 '인턴과 수저 계급론'입니다.
 
#선진국 #의원들도 #열정페이 #청년착취 
UN의 무급인턴들이 2017년 8월 14일(현지시간) 제네바에서 공정한 인턴십과 임금 지불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었다. [AFP=연합뉴스]

UN의 무급인턴들이 2017년 8월 14일(현지시간) 제네바에서 공정한 인턴십과 임금 지불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었다. [AFP=연합뉴스]

유럽의회 청년 그룹은 지난 5월 '공정한 인턴십'을 위한 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유럽의회에서 일하는 인턴들에게 생활비를 충당할만한 보수를 지급하고, 교육을 강화하는 등 인턴십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요구를 담았죠. 설문조사 결과 인턴의 25%가 600유로 미만의 임금을 받고, 8%는 무급이었습니다. 22%만 1000유로 이상의 급여를 받고 있었고요.
 
미국은 좀 더 심합니다. 온라인 매체 MIC 조사 결과 미국 하원의원 10명 중 9명이 인턴에게 임금을 주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하원의원 평균 8%가 정기적으로 유급 인턴을 모집합니다. 유급과 무급 인턴을 섞어 뽑는 경우와 외부 기금으로 인턴들을 지원하는 의원까지 합하면 그 비율은 14%까지 올라갑니다. 최대로 후하게 쳐도 86%는 무급인턴이라는 뜻이죠.
 
알쓸코리아-한국 국회의 열정페이
지난 여름, 자유한국당은 청년 국회보좌진 양성 교육 프로그램 '프로듀스 505'를 수강하는 청년 중 희망자에게 4주의 무급 인턴 기회를 준다고 예고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자유한국당 측은 인턴이 아닌 '교육생' 신분이므로 무급으로 노동을 착취하는 게 아니라 무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거라고 방어했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도 할 말은 있어 보입니다. 헌법재판소도 지난 7월 체재비나 항공비 등을 일절 부담해주지 않는 무급 '해외 인턴'을 모집했으니까요. 국회의원들도 '급여 0원, 식비 제공' 조건으로 입법보조원을 모집하는 경우가 흔했죠.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2015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3년간 정부의 국외인턴십 프로그램 참가자 87%가 무급으로 일한 것으로 나타났고요. 
박주민 의원실이 2017년 2월 내놓은 입법보조원 채용 공고.

박주민 의원실이 2017년 2월 내놓은 입법보조원 채용 공고.

9월 1일 현재 모집중인 입법보조원 공고는 3건입니다. 노웅래(더민주, 서울 마포갑) 의원실은 중식만 제공하고 급여는 없습니다. 안호영(더민주, 전북 진안) 의원실은 '협의에 따른 활동비', 이만희(자유한국당, 경북 영천) 의원실은 '교통비 등 소정의 급여'를 제공한다고 돼 있네요. 
 
지난 2월 올라온 모집 공고 중 근무 조건 내용이 남아있는 5건 중 '국회 인턴 수준의 급여'를 준다고 밝힌 건 박주민(더민주, 서울 은평갑) 의원실이 유일합니다. 유동수(더민주, 인천 계양갑)·김중로(국민의당, 비례)·정진석(자유한국당, 공주·부여·청양) 의원실은 교통비·중식을 노동의 대가로 제시했습니다. 김현아(자유한국당, 비례) 의원실은 '김현아 의원실 근무'와 '경력증명서' 발급만 약속했네요.
#무급인턴 #적자인턴 #금수저만가능 
UN의 무급인턴들이 2017년 8월 14일(현지시간) 제네바에서 공정한 인턴십과 임금 지불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었다. [AFP=연합뉴스]

UN의 무급인턴들이 2017년 8월 14일(현지시간) 제네바에서 공정한 인턴십과 임금 지불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었다. [AFP=연합뉴스]

타임지의 자매 매체인 머니에 따르면 워싱턴 D.C 같은 주요 도시에서 여름방학 약 10주간 지내려면 집세·식비·교통비 등 생활비만 최소 6000달러(약 673만원)가 듭니다. 무급이 문제가 아니라 '적자 인턴'이라는 건데요.
 
2016년 '페이 아워 인턴스(Pay Our Interns)'라는 단체를 만든 칼로스 베라도 과거 의회에서 무급 인턴으로 일했습니다. 베라는 의회에서 주당 30시간 일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파트 타임 아르바이트를 두 가지 병행했습니다. 그는 알바를 뛰며 버틸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고 회상합니다. 그는 무급인턴은 불공평하다고 지적합니다. 무급으로 버틸 수 있는 사람만 의회로 진입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으니까요.
 
2016년 7월 폴 라이언 하원의장실에서 촬영한 의회 무급인턴 단체 사진이 SNS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인종적 다양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죠. 각각의 의원실에서 개별 채용한 것임에도 백인에 남성 일색이었죠. 총 115명 중 남성 81명, 여성 34명, 흑인 남성 2명, 흑인 여성 0명이었습니다. 
 
무급 인턴이 미국 의회의 오랜 전통은 아닙니다. 매년 2명의 인턴을 고용할 수 있도록 하던 프로그램이 20년간 운용되다 1994년 갑자기 중단됐습니다. 의원실 예산이 삭감되면서 이를 무급 인턴으로 대체하게 된 거죠. 예산 삭감의 피해가 가장 취약한 청년층에게 돌아간 겁니다. 
 
#졸업후인턴금물 #연봉도떨어져 
UN의 무급인턴들이 2017년 8월 14일(현지시간) 제네바에서 공정한 인턴십과 임금 지불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었다. [AFP=연합뉴스]

UN의 무급인턴들이 2017년 8월 14일(현지시간) 제네바에서 공정한 인턴십과 임금 지불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었다. [AFP=연합뉴스]

B.A. 루돌프 재단에 따르면 미국에서 대학 재학 기간 중 인턴십 경험이 있었던 학생 51.7%가 졸업 전에 취업을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그 비율은 17%로 떨어진다고 합니다. 인턴이 취업에 유리한 스펙이 되는 것이지요. 미국 대학생들이 자비를 들여가며 무급 인턴에 도전하는 것도 취업을 위해서일 겁니다. 하지만 인턴에도 금수저와 흙수저가 있다는 사실, 모두가 짐작은 하고 있을 겁니다.
 
영국에서 최근 인턴에 대한 연구가 나와 영미권 청년들을 술렁이게 만들었습니다. 에섹스 대학 사회경제연구소가 수행한 조사였는데요. 연구팀은 2005년부터 2011년까지 영국과 웨일스 지역의 대학에서 졸업하고 6개월 동안 인턴십을 경험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3년 후, 즉 졸업 시점 기준 3년 6개월 뒤 수입을 추적 조사했습니다. 
 
결과를 요약하자면, 곧장 취업한 졸업생보다 무급 인턴 과정에 들어간 이들의 연봉이 3500파운드(약 500만원)가량 적다는 거죠. 석사과정에 들어간 이들 보다도 1800파운드(약 260만원) 덜 받습니다. 인턴을 거치면 다른 선택을 한 이들에 비해 평균 2000파운드(약 300만원)가량 미래 소득이 줄어들게 된다는 겁니다. 인턴과정이 본격적인 취업 시점을 늦추기 때문에 장래 소득이 줄어드는 거죠.
 
연구를 수행한 앵거스 홀포드 박사는 "졸업생들이 인턴 경험을 통해 자기가 원하는 직업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번 조사결과에) 실망하게 될 것"이라고 가디언에 말했습니다. 인턴십을 거친 이들이 졸업 3년 반 뒤 전문직이나 관리직에서 종사할 확률은 15% 포인트 낮았고, 직업에 만족할 확률도 8.8% 떨어졌습니다. 인턴으로 일했던 회사에 취업하거나 관련 분야로 연결되기 어렵다는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금수저는괜찮아 #흙수저는악순환 
UN의 무급인턴들이 2017년 8월 14일(현지시간) 제네바에서 공정한 인턴십과 임금 지불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었다. [AFP=연합뉴스]

UN의 무급인턴들이 2017년 8월 14일(현지시간) 제네바에서 공정한 인턴십과 임금 지불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었다. [AFP=연합뉴스]

특히나 가정 여건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경우(흑인이나 소수민족 졸업생, 장애인, 실업률이 높은 지역 출신 등)엔 인턴을 한 졸업생은 곧장 취업한 이들에 비해 3년 반 뒤 연봉이 4000파운드(약 600만원)나 적었습니다. 반면 학비가 비싼 사립학교 출신이거나 부모가 전문직인 경우엔 오히려 인턴을 하는 게 장래 소득에 유리했고요. 
 
배경이 좋은 이들이 고연봉으로 연결되는 '양질의' 인턴십을 구하는 반면, 배경이 취약한 이들은 전문성을 쌓기 어려운 단순 인턴을 하게 되고 이후에도 인턴이나 저임금 계약직을 전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인턴의 양극화'입니다. 
 
영국 공공정책연구소(IPPR)가 지난 4월 내놓은 조사 자료에 따르면 영국에서 무급 인턴 채용 공고는 2010년 대비 50% 늘었다고 합니다. 열정페이가 가파르게 증가한 겁니다. 그러면서도 인턴 경험 없이 곧장 취업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는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상대적으로 줄어들었고요. 한국의 청춘들이나 영국의 청춘들이나 상황은 비슷해 보이는데요. 에섹스 대학 연구팀은 저소득층은 학부 과정에서 실제 업무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해주면 기회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죠.
 
에밀리 오라일리 유럽연합(EU) 옴부즈맨은 지난 2월 "EU 외무부의 인턴십은 청년들의 커리어에 중요한 발판이 될 수 있으며, 가능한한 광범위한 사람들에게 기회가 제공돼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무급 인턴이 부담해야 하는 주택·보험·여비 때문에 저소득층의 취업 기회가 제한되고 '특권이 특권을 부르는 악순환'을 낳을 수 있다면서 '적절한 수당'을 지급하라고 권고한 거죠. 유럽 청년 포럼은 지난 5월 무급 인턴 비율이 무려 82%로 EU에서 가장 높은 벨기에를 시작으로 무급 인턴을 금지하기 위한 법적 투쟁에 나서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알고보면쓸모있는신기한세계뉴스]는 중앙일보 국제부 기자들이 '몰라도 되지만 알면 더 재미있는' 다양한 세계뉴스를 가져다 각자의 스타일대로 요리해 내놓는 코너입니다.더 많은 이야기를 만나보시려면 배너를 클릭(http://news.joins.com/Issue/11029)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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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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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