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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 스펙 대신 ‘100초 자기 소개 영상’ 지원자가 원하는 새벽 6시 면접

핸드메이드 화장품 회사 러쉬의 특별한 채용 
‘왜 이렇게 쓰는 게 없어?’
 
2016년 화장품회사 러쉬코리아에 입사한 임현섭(31)씨가 온라인상에서 지원서를 쓰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회사 리쿠르트 사이트에 있는 온라인 지원서에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졸업한 고등학교만 적도록 되어 있었다. 다음 칸에는 바로 ‘100초 자기소개 동영상’을 올리는 칸이 있었을 뿐이다.
 
영국 핸드메이드 화장품 브랜드 러쉬의 한국지사는 2016년 독특한 채용 방식을 통해 직원을 뽑았다. ‘러쉬 아워’라 이름을 붙이고는 학력, 경력, 영어성적 등 다른 기업이 직원을 뽑을 때 중요하게 보던 스펙을 전혀 보지 않았다.
 
우미령 러쉬코리아 대표는 “열정과 창의성을 중요시하는 조직 특성상 학벌 등 고루한 잣대가 아니라 그 사람의 본질, 즉 성격과 에너지를 보고 싶어 이런 채용을 했다”고 말했다. 이 방향을 설정한 후 직원들과 끊임없는 아이디어 회의 끝에 나온 게 100초 동영상이었다.
 
채용은 대략 이런 과정으로 진행됐다. 100초 자기 소개 영상으로 걸러진 1차 선발자는 서울 논현동의 복합문화공간 ‘쿤스트할레’에 모여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웃음치료사 강연을 듣고 팀 토론을 했다. 웃고 떠들며 강연과 토론에 참여하는 모습이 심사 대상이 됐다.
 
직원 선발 부서의 막내 직원 의견을 거쳐 해당부서 팀장과 팀원 전부가 함께하는 면접이 전부. 일반 기업이었다면 마지막 관문이었을 임원 면접조차 없었다. 이 과정을 통해 지원자 6000여 명 중 10명을 뽑았다. 우 대표는 “실무팀 면접 후 최종 합격자를 결정했다”며 “내가 직접 면접을 보지 않으니 신입 직원들 얼굴을 익히느라 나중에 애먹을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2017년엔 신입사원 공채 대신 경력 공채를 했다. 이번에도 또 다른 파격을 보였다. 지원자가 원하는 시간에 맞춰 면접을 진행하는 것 말이다. 다른 기업에서도 경력 면접은 지원자 의사를 많이 반영한다. 하지만 면접관과 조율을 거치지 일방적으로 지원자 시간에 맞추진 않는다. 하지만 러쉬는 오전 6시 면접 요구도 마다하지 않았다.
 
파격은 또 있었다. 경력 지원이지만 이전 직장에 대한 정보조차 묻지 않았다. 대학, 영어점수 적는 칸은 당연히 아예 없었다.
 
채용 방식이 참 특이하다 싶지만 이 회사 기업 철학과 안재상을 듣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러쉬는 1995년 환경을 생각하는 핸드메이드 비누를 만들겠다는 뜻을 공유한 5명이 영국 런던 외곽의 풀(Poole) 지역에서 시작한 브랜드다. 창업자들이 평소 읊어대던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비누를 만든다’란 슬로건은 러쉬의 인재 채용 원칙이 됐다. 러쉬코리아의 ‘러쉬 아워’ 채용 역시 이 생각으로부터 나온 아이디어다. 직원뿐 아니라 이 회사 지원자들 역시 채용 여부와 무관하게 행복해야 한다고 믿은 결과였다.
 
러쉬의 인사는 채용만이 아니라 배치도 다르다.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매장 직원도 본사 직원으로 채용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가 영국 본사의 제품 개발 총책임자 대니얼 캠벨(37)이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채 러쉬 매장의 판매 직원으로 들어갔다가 런던 본사 제품 개발팀으로 자리를 옮겼고, 6년이 지난 지금은 개발팀을 총괄하는 임원이 됐다.
 
우리에겐 낯설지만 러쉬에서는 흔한 일이다. 김미현 영업본부 이사는 “본사에 자리가 나면 외부에서 채우는 게 아니라 우선적으로 매장을 포함해 회사 내부에 먼저 공지를 띄워 지원자를 받는다”고 말했다. 매장 아르바이트에게도 똑같은 기회를 준다. 이 채용 방식은 영국 본사와 한국뿐 아니라 러쉬가 진출한 50개국에서 전부 지키는 원칙이다.
 
한국에서는 블라인드 채용을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가 높지만 러쉬의 성장을 보면 긍정적 효과가 더 두드러진 듯 보인다. 2015년 이후 매년 매출이 25% 이상 커가는 등 급성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런던 외곽에서 매장 하나로 시작한 러쉬는 현재 50개국 932개 매장이 있다. 한국도 2002년 명동에 한 개 매장으로 출발해 현재 70개로 늘었다.
 
지원자들에겐 이런 파격적인 채용 방식이 어떨까. 정운정(27)씨는 “면접을 미리 준비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다른 회사의 채용 면접에는 예상 문답이나 무엇을 보여줘야 하는지 대략 정답처럼 떠도는 말이 많아 이에 맞춰 준비하면 되는데 ‘러쉬 아워’는 그런 기준이 없어 오히려 불안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장점이 더 많았다”고 입을 모은다. 결혼 5년차인 권도윤(29)씨는 “과거 다른 회사 입사시험을 치를 때마다 기혼자라 차별받는다고 종종 느꼈다”며 “반면 러쉬에선 아예 그런 걸 묻지도 않고 내가 그 부서에 어울리는 사람인가만 보니 고마웠다”고 말했다.
 
선지훈(27)씨는 “내 본 모습과 완전히 다른 만들어진 모습으로 입사해 봐야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까란 걱정이 많았는데 러쉬는 달랐다”고 말했다. 정운정씨는 면접 후 자책하지 않을 수 있어 좋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다른 회사 면접을 봤을 때는 불과 10~20분에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못한 데 대해 나 스스로를 탓하며 우울한 적이 많았는데 여기서는 내 모습 그대로를 성의있게 봐주는 게 좋았다”고 말했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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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