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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채용방식이 회사를 키운다…연 25% 성장하는 러쉬의 비밀

‘왜 이렇게 쓰는 게 없어?’

고교졸업장만 있으면 지원 가능
학벌도 나이도 안 묻는 묻지마 채용
‘100초 자기 소개 영상’만 평가
막내와 팀원이 면접 참여
‘자신을 보여줘라’란 주문이 전부
면접 자체가 즐거운 경험

2016년 화장품회사 러쉬코리아에 입사한 임현섭(31)씨가 온라인 상에서 지원서를 쓰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회사 리쿠르트 사이트에 있는 온라인 지원서에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졸업한 고등학교만 적도록 되어 있었다. 다음 칸에는 바로 ‘100초 자기소개 동영상’을 올리는 칸이 있었을 뿐이다. 세 가지 항목을 단숨에 적은 임씨는 ‘해피피플(행복한 사람)’을 찾는다는 이야기에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즐거웠던 순간의 사진들을 모아 영상으로 만들어 올렸고, 러쉬코리아의 마케팅본부 직원이 될 수 있었다.  
2016년 100초 자기소개 영상 등 '러쉬 아워' 채용을 통해 입사한 러시코리아 젊은 사원들을 9월 13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왼쪽부터 정운정, 최민혜, 김윤호, 선지훈(누워있는 사람), 권도윤, 임현섭씨. 강정현 기자

2016년 100초 자기소개 영상 등 '러쉬 아워' 채용을 통해 입사한 러시코리아 젊은 사원들을 9월 13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왼쪽부터 정운정, 최민혜, 김윤호, 선지훈(누워있는 사람), 권도윤, 임현섭씨. 강정현 기자

100초 영상이 전부
영국 핸드메이드 화장품 브랜드 러쉬의 한국지사는 2016년 독특한 채용 방식을 통해 직원을 뽑았다. 2002년 러쉬코리아가 생긴 후 처음 진행하는 신입 공채였던만큼 제대로 뽑고 싶다고 욕심을 낸 거다. '러쉬 아워'라 이름을 붙이고는 학력, 경력, 영어성적 등 다른 기업이 직원을 뽑을 때 중요하게 보던 스펙을 전혀 보지 않았다. 게다가 면접관으로 막내 사원을 세우기까지 했다. 
우미령 러쉬코리아 대표는 "열정과 창의성을 중요시하는 조직 특성상 학벌 등 고루한 잣대가 아니라 그 사람의 본질, 즉 성격과 에너지를 보고 싶었다"며 "취업 준비생들이 보여주고 싶어하는 '만들어진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표현하는 능력에 초점을 맞추고자 이런 채용을 했다"고 말했다. 이 방향을 설정한 후 직원들과 끊임없는 아이디어 회의 끝에 나온 게 100초 동영상이었다.  
채용은 대략 이런 과정으로 진행됐다. 100초 자기 소개 영상으로 걸러진 1차 선발자는 서울 논현동의 복합문화공간 ‘쿤스트할레’에 모여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웃음치료사 강연을 듣고 팀 토론을 했다. 웃고 떠들며 강연과 토론에 참여하는 모습이 심사 대상이 됐다. 
2016년 2월 서울 논현동 쿤스트할레에서 열린 러쉬코리아의 면접 현장. 온라인으로 접수 받은 자기 소개 영상 심사를 통해 선발된 150명이 모여 웃음치료사의 강연을 즐기고 있다. 지원자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을 각 부서의 막내 직원들이 면접관이 돼 심사했다. [사진 러쉬코리아]

2016년 2월 서울 논현동 쿤스트할레에서 열린 러쉬코리아의 면접 현장. 온라인으로 접수 받은 자기 소개 영상 심사를 통해 선발된 150명이 모여 웃음치료사의 강연을 즐기고 있다. 지원자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을 각 부서의 막내 직원들이 면접관이 돼 심사했다. [사진 러쉬코리아]

막내가 뽑고 사장은 통보받기만 
직원 선발 부서의 막내 직원 의견을 거쳐 해당부서 팀장과 팀원 전부가 함께 하는 면접이 전부. 일반 기업이었다면 마지막 관문이었을 임원 면접조차 없었다. 임원보다 막내 직원이 어떤 사람이 이 회사에 필요한지 가장 잘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라는 판단에서 정한 방침이었다. 이 과정을 통해 지원자 6000여 명 중 10명을 뽑았다. 우 대표는 “실무팀 면접 후 최종 합격자를 결정했다”며 “내가 직접 면접을 보지 않으니 신입 직원들 얼굴을 익히느라 나중에 애를 먹을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2017년엔 신입사원 공채 대신 경력 공채를 했다. 이번에도 또 다른 파격을 보였다. 지원자가 원하는 시간에 맞춰 면접을 진행하는 것 말이다. 다른 기업에서도 경력 면접은 지원자 의사를 많이 반영한다. 하지만 면접관과 조율을 거치지 일방적으로 지원자 시간에 맞추진 않는다. 하지만 러쉬는 오전 6시 면접 요구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주희 러쉬코리아 홍보팀장은 “새벽 시간을 원하면 오전 6시에도 면접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파격은 또 있었다. 경력 지원이지만 이전 직장에 대한 정보를 묻지 않았다. 입사지원서에는 '러쉬 아워'와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인적 사항 이외에 대학, 영어점수 적는 칸이 아예 없었다. 밝히고 싶은 사람만 어떤 경력이 있는지 썼다.  
'행복한 사람'이 기업 철학
채용방식이 참 특이하다 싶지만 이 회사 기업 철학과 안재상을 듣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러쉬는 1995년 환경을 생각하는 핸드메이드 비누를 만들겠다는 뜻을 공유한 5명이 영국 런던 외곽의 풀(Poole) 지역에서 시작한 브랜드다. 친환경적인 화장품을 만드는 것 외에 이들이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바로 사람이었다. 창업자들이 평소 읊어대던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비누를 만든다’란 슬로건은 러쉬의 인재 채용 원칙이 됐다.  
러쉬코리아의 ‘러쉬 아워’ 채용 역시 이 생각으로부터 나온 아이디어다. 우 대표는 “채용 과정 자체를 모두가 즐기는 축제처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직원뿐만 아니라 이 회사 지원자들 역시 채용 여부와 무관하게 행복해야 한다고 믿은 결과였다. 
일반 매장 직원으로 시작해 6년만에 본사의 제품개발총괄이라는 임원자리까지 오른 다니엘 캠벨. [사진 러쉬코리아]

일반 매장 직원으로 시작해 6년만에 본사의 제품개발총괄이라는 임원자리까지 오른 다니엘 캠벨. [사진 러쉬코리아]

매장 알바도 본사 정직원으로
러쉬의 인사는 채용만이 아니라 배치도 다르다.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매장 직원도 본사 직원으로 채용하는 경우가 많다. 러쉬 매장 아르바이트도 능력만 보여준다면 본사 정규직으로 얼마든지 일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가 영국 본사의 제품개발 총책임자 다니엘 캠벨(37)이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채 러쉬 매장의 판매 직원으로 들어갔다가 런던 본사 제품 개발팀으로 자리를 옮겼고 6년이 지난 지금은 개발팀을 총괄하는 임원이 됐다. 
우리에겐 낯설지만 러쉬에서는 흔한 일이다. 김미현 영업본부 이사는 “본사에 자리가 나면 외부에서 채우는 게 아니라 우선적으로 매장을 포함해 회사 내부에 먼저 공지를 띄워 지원자를 받는다”고 말했다. 지금 자신이 하는 일에서 다른 부서로 옮기고 싶은 사람뿐 아니라 매장 아르바이트에게도 똑같은 기회를 준다. 내부 지원자 심사 후 적합한 사람을 못 찾았을 때만 외부에서 고용한다. 이 채용 방식은 영국 본사와 한국 뿐 아니라 러쉬가 진출한 50개국에서 전부 지키는 원칙이다. 
한국에서는 블라인드 채용을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가 높지만 러쉬의 성장을 보면 긍정적 효과가 더 두드러진듯 보인다. 2015년 이후 매년 매출이 25% 이상 커가는 등 급성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런던 외곽에서 매장 하나로 시작한 러쉬는 현재 50개국 932개 매장이 있다. 영국 직원 수만 1600명이 넘는다. 한국도 2002년 명동에 한 개 매장으로 출발해 현재 70개로 늘었다. 직원 수는 380명에 달한다. 
면접 자체가 즐거운 경험 
지난해 러쉬 아워를 통해 러쉬코리아에 입사한 직원들은 "색다른 면접을 통해 진정한 '나'를 보여줬고 그래서 적성에 맞는 일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입사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발랄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이다. 강정현 기자

지난해 러쉬 아워를 통해 러쉬코리아에 입사한 직원들은 "색다른 면접을 통해 진정한 '나'를 보여줬고 그래서 적성에 맞는 일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입사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발랄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이다. 강정현 기자

지원자들에겐 이런 파격적인 채용 방식이 어떨까. 지난해 입사한 직원들 모두 “당황스러웠다”고 입을 모은다. 정운정(27)씨는 “면접을 미리 준비할 수가 없다는 점이 가장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다른 회사의 채용 면접에는 예상 문답이나 무엇을 보여줘야하는지 대략 정답처럼 떠도는 말이 많아 이에 맞춰 준비를 하면 되는데 '러쉬 아워'는 그런 기준이 없어 오히려 불안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장점이 더 많았다"고 입을 모은다. 결혼 5년차인 권도윤(29)씨는 “과거 다른 회사 입사시험을 치를 때마다 기혼자라는 사실 외에 나보다 특별한 장점이 보이지 않는 다른 지원자가 채용되는 걸 보면서 기혼자라 차별 받는다고 종종 느꼈다”며 “반면 러쉬에선 아예 그런 걸 묻지도 않고 내가 그 부서에 어울리는 사람인가만 보니 고마웠다”고 말했다. 권씨가 지원한 수입팀이 인재상은 ‘활달하고 영어로 수다떨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딱 이런 성격의 권씨는 합격했다. 
입사용 자기소개서를 쓸 때마다 정해진 답을 쓰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는 선지훈(27)씨는 "내 본 모습과 완전히 다른 만들어진 모습으로 입사를 해봐야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까란 걱정이 많았는데 러쉬는 달랐다"고 말했다. 정운정씨는 면접 후 자책하지 않을 수 있어 좋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다른 회사 면접을 봤을 때는 불과 10~20분에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못한 데 대해 나 스스로를 탓하며 우울한 적이 많았는데 여기서는 내 모습 그대로를 성의있게 봐주는 게 좋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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