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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핵 위기의 시대, 율곡 선생의 경고

장 훈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장 훈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400여 년 전 역사 속 인물이지만 율곡 선생은 핵 위기의 시대를 사는 우리와 똑같은 실존적 고민을 마주했던 분이었다. 스멀스멀 다가오는 국가의 대변란을 일찍이 내다보았고, 국가 존망의 변란 앞에서도 권력 다툼에 여념이 없던 당파정치를 뛰어넘어 삶을 지킬 방책을 줄곧 역설하던 지성인이 율곡 이이였다.
 

보수와 진보가 두루 참여하는
‘핵 안보 국가회의’ 구성 서둘러야
지금 같은 혼란이 지속된다면
동북아에서 우리의 입지는 없다

실질적 핵 국가로 등장한 북한이 동아시아 안보 질서를 근본적으로 흔들면서 정치권과 전문가들은 실로 다양한 대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그 대책들은 대부분 전문성의 문법에 갇혀 있거나 진영논리에 막혀 있다. 심지어 일부는 한가롭기까지 하다. “죽음을 무릅쓰고” 나라의 보전과 백성을 편안히 할 방책을 고심하던 율곡 선생의 경고를 되돌아보면서 핵 위기 시대의 관성적 사고를 깨는 실마리를 찾아보자.
 
첫째, 율곡 선생은 “미리 밝게 살펴서 변란이 일어나기 전에 다스리고 위태로움이 있기 전에 보전하는 것이 상지(上智)”라고 강조하면서 “변란을 당하고도 다스릴 생각을 하지 않고 위태로움을 보고도 안정시키려 하지 않는 것은 하지(下智)”라고 경고하고 있다(율곡전서 권7). 여섯 차례에 걸친 핵실험의 축적과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을 통해 북한은 이미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실질적 핵 국가로 등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편에서는 여전히 이른바 레드라인 타령 중이다. 이미 수십 번 물러서면서 고치고 또 고쳐온 레드라인을 북한이 아직도 넘지 않았다는 주장은 곧 ‘나라의 위태로움’을 직시하는 용기가 없음을 털어놓는 것과 같다. 현실화하고 있는 핵의 두려움 속에서도 일상의 리듬을 지키고자 안간힘을 다하는 평범한 시민들에게 레드라인 타령은 하지(下智) 중의 하지(下智)로 들릴 뿐이다.
 
둘째, 율곡 선생은 변란을 미리 다스리지 못했다면(북한의 집요한 핵 개발을 저지하는 데 실패했다면) 변란의 와중에라도 스스로 반성하고 그간의 잘못을 겸허히 돌아볼 것을 강조한다. “천재를 당했을 적에도 자신을 돌이켜보며 스스로 반성하고 정치를 잘못한 게 없는가 두루 살피되… 절대로 잘못이 없다 하여 스스로를 용서해서는 안 됩니다.”(율곡전서 권5)
 
달리 말해 율곡 선생은 지난 20여 년간 번갈아가며 정부의 대북정책을 이끌어온 여야 정당들이 이제라도 북핵 저지의 실패를 겸허하게 돌아볼 것을 준엄하게 꾸짖고 있는 셈이다. 집권 더불어민주당은 보수 세력의 ‘잃어버린 9년’ 사이에 북핵이 고도화됐다고 비난하기에 앞서 2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대북 화해정책 역시 북핵 저지에 실패한 배경과 과정을 냉철하게 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해 김정일-김정은 정권의 핵무기 개발 동기는 결국 미국으로부터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방어적 전략이 아니었음이 분명해지고 있다. 단순한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넘어 관련국들에 치명적 위협을 가할 수 있는 핵보유국으로서 아시아 안보 질서의 한 세력으로 일어나 보겠다는 것이 김정은 체제 핵전략의 근본 목표였음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 같은 패러다임의 변화는 대북 화해 정책의 근본적인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구멍이 숭숭 뚫린 대북 제재 정책으로 북한의 핵 포기를 끌어낼 수 있다고 믿었던 보수 정부의 대북 정책 역시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
 
셋째, 율곡 선생은 변란을 헤쳐 가기 위한 구체적 방도는 결국 폭넓은 의견 수렴임을 강조한다. “반드시 여러 사람의 의견을 요구해 지식과 견문을 넓히고, 현명한 사람을 등용해 부족한 능력을 메우고… 힘써야 할 것입니다.”(율곡전서 권5) 지금까지의 대북 제재 정책도, 대북 화해 정책도 모두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대통령과 국회는 보수와 진보 세력이 두루 참여하는 ‘핵 안보 국가회의’를 시급히 구성해야 한다. 이념과 정파, 세대를 초월해 다양한 입장을 가진 전·현직 정책 결정자들과 전문가들이 한데 모여 그간의 실패를 면밀히 분석·정리하고 북핵 시대를 살아갈 전략·전술을 다듬어 시민들의 동의를 구해야만 한다. 제재론·핵무장론·핵우산론·대화론으로 어지러이 갈려 있는 지금의 혼란이 지속된다면 핵의 시대 동아시아 국제정치에서 우리의 입지는 없다.
 
당파 싸움이야말로 최악의 위협이라고 보았던 율곡 선생은 “습성에 물들어 안이하게 지내면 쇠퇴하고 마는데…” “반드시 거칢을 포용하는 도량으로써 여러 훌륭함을 받아들이고 황하를 걸어서 건너는 용기로써 구습을 씻어”내라고 역설했다. 그런데 핵 위협을 머리에 이고도 여전히 국회 인사청문 표결 결과에 일희일비하고 있는 여야 정당들은 과연 안이함이라는 그 무서운 적을 떨쳐낼 수 있을까? 과연 그들은 제재와 화해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장 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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