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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캔 스피크' 이제훈, "작품의 캐릭터로만 존재하고 싶다"

9월 21일 개봉하는 ‘아이 캔 스피크’ 주연 배우 나문희·이제훈. 사진=전소윤(STUDIO 706)

9월 21일 개봉하는 ‘아이 캔 스피크’ 주연 배우 나문희·이제훈. 사진=전소윤(STUDIO 706)

[매거진M] “우리 손자야, 손자.” 다정하게 장난하는 모습으로 사진을 찍자는 제안에 나문희가 걱정하지 말라는 투로 이제훈을 가리키며 말한다. 맞다. ‘아이 캔 스피크’(9월 21일 개봉, 김현석 감독)는 ‘민원왕’ 나옥분(나문희)과 원칙주의자 9급 공무원 박민재(이제훈)가 세상에 둘도 없는 할머니와 손자가 되는 이야기다.
 

'아이 캔 스피크'
영원토록 진실하게
이제훈 인터뷰

허구한 날 남의 일에 참견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옥분과, 언제 어디서나 원칙을 내세우는 민재가 가까워지는 건, 영어 수업을 통해서. 옥분의 따뜻한 저녁상을 받은 민재가 그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정다운 수업을 계속 하는 동안에도 민재는 알지 못한다. 옥분이 어떤 비밀을 감추며 살아왔는지. 곧 옥분이 그에게 배운 영어로 “아이 캔 스피크(I Can Speak·말하겠습니다)!”라고 외치며 얼마나 큰 용기를 발휘하게 될 것인지. 그 모든 과정을 함께한 두 배우가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2017년의 어느 날,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이야기를 나누며 정다운 할머니와 손자처럼 해맑은 웃음을 나눴다.

 
9월 21일 개봉하는 ‘아이 캔 스피크’ 주연 배우 나문희·이제훈. 사진=전소윤(STUDIO 706)

9월 21일 개봉하는 ‘아이 캔 스피크’ 주연 배우 나문희·이제훈. 사진=전소윤(STUDIO 706)

‘박열’과 정반대다. ‘박열’에서는 세상의 모든 형식과 틀을 거부하는 조선 최고의 무정부주의자를 연기했던 이제훈(33)이‘아이 캔 스피크’에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원칙이 꽉 들어찬 9급 공무원 박민재로 변신했다.어떤 작품에서든 ‘사람 이제훈’을 지우고 그 캐릭터로 남고 싶다는 배우 이제훈의 원칙은 무엇일까.
 
―‘민원왕’ 할머니 옥분과, 원칙주의자인 공무원 민재가 영어 수업을 하며 아웅다웅하다 가까워지는 캐릭터 코미디인 줄만 알았는데, 극 후반의 묵직함에 놀랐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을 때 나도 그랬다. 옥분이 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대목부터는 자세를 고치게 되더라. 그분들의 이야기를 묵직하고 따뜻하게 그리는 점이 정말 좋았다.
동시에 그 점 때문에 출연을 망설였던 것도 사실이다. 가슴 아픈 역사, 그 피해를 당한 실존 인물이 있는 이야기를 극영화로 잘못 만들었다가 그분들께 누를 끼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섰다. 제작사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님이, 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뿐 아니라 관객에게 선보이는 모든 순간에 그분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고자 한다는 걸 믿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원칙주의자 캐릭터가 맞춤한 듯 잘 어울리더라. 당신도 원칙주의자인가.
“일할 때는 그렇다. 작품을 준비하고 촬영하고 홍보하는 모든 과정에서, 그때그때 상황 봐서 대충하는 걸 아주 싫어한다. 단계 하나하나의 원칙과 약속을 철저히 챙기는 편이다. 약속을 했으면 끝까지 지키려 노력하고, 그렇게 못할 거면 애초에 약속을 안 한다.
배우라는 직업을 택하면서 처음에는 ‘나 혼자 열심히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스태프 및 동료들과 서로 믿고 함께 노력해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
일할 때는 늘 긴장하고 뭐든 꼼꼼하게 하려 하지만, 일에서 벗어나면 정말 아무것도 신경 안 쓴다. 딱히 뭘 찾아서 하지도 않고 취미도 없다. 나 자신을 그냥 내버려 둔다고 할까(웃음). 일할 때와 안 할 때의 차이가 정말 크다.”
 
―연기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면.
“이 장면에서는 이렇게 하자는 약속이 돼 있다 해도, 촬영장에서 온갖 변수가 작용하는 게 연기다. 그로 인해 약속한 것보다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결국 제일 중요한 건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과의 앙상블이다. ‘난 이렇게 준비해 왔으니 이대로 할 거야’라는 식으로 연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 순간 다른 배우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려면 상대방의 연기를 잘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 캔 스피크'

'아이 캔 스피크'

―나문희와의 호흡은 어땠나.
“말 그대로 선생님이 그 순간 내게 주는 감정을 충실히 느끼며 연기하면 됐다. 뭔가를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선생님을 정말 많이 믿고 따라갔는데, 극 중 민재의 모습에도 그런 마음이 진실하게 담기길 바랐다.”
 
―옥분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안 민재가 옥분을 찾아가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 말이 둘의 관계에서 비롯된 감정만이 아니라, 민재가 또래의 젊은 세대들을 대신해 마음을 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맞다. 아픈 역사를 지나온 할머니·할아버지 세대에 우리 세대가 느끼는 죄송스러움과 부끄러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요즘은 할머니·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경우가 별로 없지 않나. 극 후반으로 갈수록 옥분과 민재는 할머니와 손자 같은 사이가 된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젊은 관객들이 그 관계의 따뜻함을 느낀다면 정말 좋겠다.”
 
['아이 캔 스피크'

['아이 캔 스피크'

―멜로영화 ‘건축학개론’(2012, 이용주 감독)의 승민처럼 관객 누구나 자신을 투영하게 만드는 인물을 연기하기도 했지만, 장르색이 두드러지는 작품에서 특징적인 캐릭터를 정말 많이 연기했다. ‘아이 캔 스피크’의 원칙주의자 민재는 물론이고, 시대극 ‘박열’의 무정부주의자 박열, 만화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탐정 홍길동:사라진 마을’(2016, 조성희 감독)의 악동 탐정 홍길동 등등.
 
“난 오로지 그 작품의 그 캐릭터로만 존재하고 싶다. 그 안에 ‘사람 이제훈’의 모습이 비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작품마다 다른 캐릭터로 남길 바란다. 전에는 연기와 내 일상이 엄격히 구분되기를 바랐다. 대중에게 실제 내 모습을 보여 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사람 이제훈에 대한 이미지가 내가 연기한 캐릭터에 영향을 미치는 게 싫었다. 그런데 요즘은 대중이 작품은 작품대로,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관객을 더 믿게 된 것 같다.”
 
―얼마 전,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삼시세끼 바다목장편’(tvN)에 출연한 것도 그런 이유에선가.
“그렇다. 다 내려놓고 남자들끼리 재미있게 놀다 오자는 마음으로 갔다 왔는데, 방송을 보니까 후후후, ‘내가 평소 저렇게 재미없고 허술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웃음).”
 
9월 21일 개봉하는 ‘아이 캔 스피크’ 주연 배우 나문희·이제훈. 사진=전소윤(STUDIO 706)

9월 21일 개봉하는 ‘아이 캔 스피크’ 주연 배우 나문희·이제훈. 사진=전소윤(STUDIO 706)

―지금 배우로서 가장 절실히 바라는 것이 있다면.
“시간이 지나 이 순간을 돌아봤을 때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매순간 배우로서 최선을 다하려 한다. 때로는 순간적인 인기나 행운을 누리기도 한다. 내가 그보다 더 간절히 바라는 건, 지금 이 노력이 훗날에도 진실한 무언가로 남는 것이다. 연기라는 건 결국 작품으로 남겨지는 일이니까.”
 
―영원불멸한 ‘진짜’를 남기고 싶은 건가.
“맞다. 그게 내가 영화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지금 기분을 영어로 표현하면.
“그레잇(Great)! 이 영화를 찍으며 충만한 감정을 느꼈다. 그 마음을 관객과 함께 나누고 싶은 기대 때문에 기분이 정말 좋다.”
 
 
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사진=전소윤 (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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