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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둥지 이렇게 지키세요”…‘젠트리피케이션 매뉴얼’ 낸 청년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한 다양한 상황때문에 고통 받는 임차인들을 위해 대응 메뉴얼을 만든 청년들이 각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보여주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구본기(33) 구본기생활경제연구소장, 최창근(26) 유음 편집인, 정현석(22) 유음 발행인, 지하나(18) 유음 디자이너, 방정인(25) 디자인스튜디오 둘셋 디자이너, 홍윤희(25) 디자인스튜디오 둘셋 디자이너, 김보민(25) 유음 편집인. 김춘식 기자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한 다양한 상황때문에 고통 받는 임차인들을 위해 대응 메뉴얼을 만든 청년들이 각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보여주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구본기(33) 구본기생활경제연구소장, 최창근(26) 유음 편집인, 정현석(22) 유음 발행인, 지하나(18) 유음 디자이너, 방정인(25) 디자인스튜디오 둘셋 디자이너, 홍윤희(25) 디자인스튜디오 둘셋 디자이너, 김보민(25) 유음 편집인. 김춘식 기자

임차 상인을 위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둥지 내몰림) 매뉴얼’이 나왔다. 구본기생활경제연구소와 출판사 유음, 디자인스튜디오 둘셋은 14일 『젠트리피케이션 예방·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발간한다고 밝혔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낙후됐던 구도심이 번성하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을 겪는 임차 상인을 위한 실전 매뉴얼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 최초 ‘젠트리피케이션 매뉴얼’ 14일 발간
‘상가법’을 근거로 한 상황별 실전 대응법 담아
“지자체와 협업해 모든 임차인에게 전해졌으면”

2030세대 청년 7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우리를 ‘하마들’이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유음 발행인 정현석(22)씨에게 그 의미를 물었다. “하마는 자기 영역을 중시하는 동물이에요. 내쫓기지 않으려 저항하는 임차 상인을 상징하기도 하고, 각자 전문적인 영역에서 역량을 발휘해 시너지 효과를 내보자는 뜻이기도 해요.” 매뉴얼 공식 발간을 앞둔 지난 11일 서울 홍대 인근의 한 카페에서 ‘하마들’을 만났다.
 
“건물주가 바뀌었으니 계약을 다시 하재요.”
그래픽 디자니어 방정인(25·여·왼쪽)씨와 세트 디자이너 홍윤희(25·여)씨가 운영하는 디자인스튜디오 둘셋은 일상의 이야기를 재해석해 그래픽과 입체적 연출을 통해 구체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디자인스튜디오 둘셋]

그래픽 디자니어 방정인(25·여·왼쪽)씨와 세트 디자이너 홍윤희(25·여)씨가 운영하는 디자인스튜디오 둘셋은 일상의 이야기를 재해석해 그래픽과 입체적 연출을 통해 구체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디자인스튜디오 둘셋]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서 디자인스튜디오 ‘둘셋’을 운영하는 디자이너 방정인(25·여)씨와 홍윤희(25·여)씨는 지난 5월 새 건물주로부터 "월세를 70% 올리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들이 응하지 않자, 건물주는 월세 입금계좌를 바꿨다. 임차인이 월세를 3기 이상 연체하면 임대인은 남아 있는 계약 기간과 상관없이 임대차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상가법)’을 악용한 것이다.
 
“어떻게든 저희를 내쫓겠다는 거라 생각해 무서웠어요. 하지만 정당하게 권리금을 내고 들어왔으니 제대로 알아보고 버티자고 마음먹었죠. 새 건물주가 와도 기존의 임대차 계약은 그대로 유효하다는 것, 채권자가 변제를 받지 않아도 공탁소에 공탁해 채무를 면하는 변제공탁 제도가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어요.”
 
구본기(33) 구본기생활경제연구소 소장은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생활경제 방법론'을 연구한다. [사진 구본기씨]

구본기(33) 구본기생활경제연구소 소장은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생활경제 방법론'을 연구한다. [사진 구본기씨]

이들에게 상가법 상담을 해준 이는 구본기(33)씨다. 구씨는 보험·금융·부동산 등 ‘생활경제’를 연구하는 구본기생활경제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상가 임차인에 대한 임대인의 부당한 요구를 접해온 그는 지난해부터 젠트리피케이션 관련 연구를 해왔다. 서울 종로구 서촌의 한 상가 임차인이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채 쫓겨 나가는 것을 본 뒤 본격적으로 상가법을 뜯어보기 시작했다.
 
“상가법은 임차 상인 대부분이 적용받기 때문에 반드시 알아야 하는 법률이에요. 하지만 현실은 너무 달라요. 임차 상인에게 자신의 권리를 정당하게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공간을 찾는 사람들도 둥지 내몰림의 당사자에요.”
출판사 '유음'은 신촌 '공씨책방' 문제 해결을 위해 만난 청년 4명이 만든 문학 중심의 창작집단이다. 왼쪽부터 김보민(25) 편집인, 정현석(22) 발행인, 지하나(18) 디자이너, 최창근(26) 편집인. [사진 유음]

출판사 '유음'은 신촌 '공씨책방' 문제 해결을 위해 만난 청년 4명이 만든 문학 중심의 창작집단이다. 왼쪽부터 김보민(25) 편집인, 정현석(22) 발행인, 지하나(18) 디자이너, 최창근(26) 편집인. [사진 유음]

구씨는 지난 3월부터 출판사 ‘유음’과 함께 상가 임차인을 위한 상황별 대응법을 담은 매뉴얼을 기획했다. 유음은 문학청년 4명이 모여 만든 출판사다. 문을 연지 40년이 넘은 신촌의 헌책방 ‘공씨책방’의 단골손님인 이들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공씨책방을 지키자”며 뜻을 모았다. 공씨책방은 건물주가 바뀐 지난해부터 월세 인상 압박을 받아왔다. 올해부터는 건물주가 “공씨책방이 입주한 공간을 사용하겠다”며 명도소송을 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유음의 편집인인 김보민(25·여)씨는 “‘공씨책방 사태’를 보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임차 상인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당사자는 임차 상인뿐만 아니라 그 공간을 자주 찾던 사람들까지 포함해요. 언론에서는 임차 상인들의 이야기에 집중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 공간에서 추억을 쌓고, 이 공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숨어있어요.”
 
이후 구씨의 도움으로 월세 인상 없이 내쫓길 위기를 넘긴 둘셋 디자이너들이 구씨와 유음의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건물주의 부당한 요구에 다른 임차 상인들도 제대로 대응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그렇게 뭉친 구씨와 유음, 둘셋의 프로젝트는 지난 8일 『젠트리피케이션 예방·대응 매뉴얼』로 첫 번째 결실을 맺었다.
 
“임차 상인의 피부에 와닿아야 진짜 매뉴얼이죠.”
구본기생활경제연구소, 출판사 '유음', 디자인스튜디오 '둘셋의 2030세대 청년 7명이 모여 만든 7단 양면 접지 형태의『젠트리피케이션 예방·대응 매뉴얼』. 하준호 기자

구본기생활경제연구소, 출판사 '유음', 디자인스튜디오 '둘셋의 2030세대 청년 7명이 모여 만든 7단 양면 접지 형태의『젠트리피케이션 예방·대응 매뉴얼』. 하준호 기자

7단 양면 접지(접히는 종이) 형태의 매뉴얼에는 ‘다음 번 계약 갱신은 없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월세를 억 소리 나게 올려달라고 했을 때’ 등 구체적인 상황의 대응법과, 이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지침 등이 담겼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둘셋 디자이너들의 경험도 녹였다.
 
매뉴얼을 책이나 잡지가 아닌 접지로 발행한 것은 하루하루가 바쁜 임차 상인들이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9월 경주 지진 당시 화제가 됐던 일본 ‘도쿄방재’의 지진대응·대피매뉴얼을 참고했다. 딱딱한 법률용어는 피하고 글도 최대한 줄였다. 매뉴얼 한켠에는 상가법 근거조항을 적고, 다른 한켠에는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관련기관의 연락처를 넣었다.
 
“기존의 젠트리피케이션 논의는 지역적·학술적 담론에 머물러 있어요. 정부나 지자체, 연구기관에서 관련 대책을 내놔도 정작 당사자인 임차 상인들은 잘 보지도 않죠. 상가법의 빈틈을 잡고, 임차 상인에게 피부로 와닿는 해법을 위해 미시적·즉각적으로 접근한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입니다.” 구씨가 “국내 최초의 젠트리피케이션 매뉴얼”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하마들의 다음 계획은 뭘까. 이들은 지자체를 설득해 매뉴얼을 최대한 많은 상인에게 전하는 등 임차 상인에 대한 권리 침해 예방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정씨는 “공씨책방 사장님이 이 매뉴얼을 알고 있었다면 사태가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려워지기 전에 상가법을 알아두면 확실히 대응할 수 있는 선택지가 넓어진다”고 말했다. 외국인 임차 상인을 위한 영문판 매뉴얼과 ‘주거 젠트리피케이션 매뉴얼’도 제작할 예정이다.
 
알아두면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젠트리피케이션 꿀팁’
◇임대인이 갑자기 나가라고 해요.

당황하지 말고 평정심을 되찾을 때까지 의사표현을 삼가세요. 통화를 비롯한 모든 대화는 반드시 녹음해 증거를 남기세요.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고 관련 단체나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세요.
 
◇새 임대인이 재계약을 요구해요.
점포에 ‘사업자등록’을 했으면 임차인에게는 ‘대항력’이 생겨요. 임대차계약기간 중에 매매로 임대인이 바뀌어도, 기존의 임대차계약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권리에요. 대항력을 갖춘 상태에서 매매가 이뤄지면 새 임대인은 기존 임대차계약을 그대로 넘겨 받기 때문에 꼭 재계약을 하지 않아도 돼요.
 
◇월세를 내던 계좌가 사라졌어요.
임차인이 월세를 3기 이상 연체하면 임대인은 남아 있는 계약기간과 상관없이 임대차계약을 해지할 수 있어요. 이를 노리고 임대인이 월세 받는 계좌를 막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땐 ‘변제공탁’을 하세요. 변제공탁이란 채권자가 채무자의 변제를 받지 않거나 받을 수 없는 경우에 공탁소에 공탁해 채무를 면하는 제도에요.
 
☎대한법률구조공단 132  
☎서울시상가임대차상담센터 02-2133-1211
☎맘편히 장사하고픈 상인모임(맘상모) 02-733-8979
 
자료: 『젠트리피케이션 예방·대응 매뉴얼』(하마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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