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이슈추적] 의사 가운 대신 감옥 선택, 3차례 걸쳐 7년10개월 삶의 공백

기로에 선 병역거부 <중> 두 거부자 이야기
반공 분위기가 널리 퍼져 있던 시절에 병역거부를 해 장기간 수감됐던 정춘국씨는 칠순을 코앞에 둔 지금 깻잎 농사를 하며 지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반공 분위기가 널리 퍼져 있던 시절에 병역거부를 해 장기간 수감됐던 정춘국씨는 칠순을 코앞에 둔 지금 깻잎 농사를 하며 지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갈매기 조나단은 날개가 자신의 삶의 의미임을 깨닫고 대대손손 이어온 삶의 방식을 버리고 자신만의 길을 택합니다. 그러자 원로들은 ‘해 오던 대로 하지 않으면 너는 추방이다’고 말합니다.”

병역거부 최장기 수감 정춘국씨
신앙 이유 의대 한 학기 만에 자퇴
교도관 출신 아버지와 대화 끊기도
서른셋에 출소 … 지금은 깻잎 농사
“몽둥이찜질 하던 헌병 마음 이해”

 
1974년 당시 스물여섯의 정춘국(69)씨가 대전지법에 낸 7장의 항소이유서는 리처드 바크의 소설 『갈매기의 꿈』 이야기로 시작한다. “왜 병역거부를 하는 거야”라고 묻고는 입을 떼기도 전에 “일주일 후 선고”라며 말문을 막은 판사에게 답하고 싶어 쓴 글이었다. 항소심 판사는 1심 형량의 두 배인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충남대 의대 1학년 때 어머니를 따라 ‘여호와의 증인’이 된 정씨는 7년10개월의 징역을 산, 병역거부 관련 최장기 수감자다. 충남 금산에서 깻잎 농사를 짓는 정씨를 지난 7월 27일 만났다.
 
관련기사
 
정씨는 교도관이던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아버지께 점심 도시락을 나르며 본 교도소 감시탑은 소설에 나오는 대단한 지하감옥처럼 무시무시해 보였어요. 제가 그곳에 산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죠.”
 
그러나 정씨는 의사 가운 대신 수의(囚衣)를 택했다. “성서에서 새로 알게 된 세계를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게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씨가 의대를 한 학기 만에 자퇴하자 “병원을 차려 주겠다”며 퇴직 뒤 택시운전을 하던 아버지는 말을 잃었다.
 
스물한 살이 된 정씨는 69년 처음 수감돼 10개월을 살았다. 68년 1월 발생한 ‘김신조 사건’으로 반공 분위기가 최고에 달했을 때였다.
 
72년 유신헌법을 통과시킨 박정희 대통령은 이듬해인 73년 1월 20일 “법을 만들어서라도 병역을 기피한 본인과 그 부모가 이 사회에서 머리를 들고 살지 못하는 사회 기풍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병역법 개정과 ‘병역법 위반 특별조치법’ 제정으로 병역기피자에 대한 처벌은 대폭 강화됐다.
 
정씨도 74년 두 번째 입영영장과 구속영장을 받았다. 당시 병역법상 징역이나 금고 3년 이상의 실형을 살기 전까지는 병역면제를 받을 수 없었고, 병역기피는 입영영장이 나올 때마다 반복 처벌할 수 있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전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노역을 시키지 않고 종일 앉혀 두기만 했습니다. 일어설 수 있는 때는 세끼 식사와 하루 15분 운동시간이 전부였습니다. ‘일어서서 일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77년 2월 1095일 만에 만기 심사를 받는 날 육군 32사단으로 끌려갔다. 정씨는 다시 군사법원에서 항명죄로 4년형을 선고받았다.
 
“모든 게 끝난 것 같았습니다. 눈물을 글썽이는 어머니를 보고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당시 병역법상 현역 입영 대상은 고졸일 경우 만 28세가 되는 해 12월 31일까지였다. ‘대학 학력자’에 해당돼야 만 30세 12월 31일까지 징집할 수 있었다. 한 학기 만에 대학을 자퇴한 뒤 29세에 두 번째 형기를 마친 정씨는 병무청에 “왜 영장이 나왔느냐”고 편지를 보냈다. “1학년 중퇴도 ‘대학 학력자’”라는 답이 돌아왔다.
 
병역거부 대가 치르기는 서른셋이 된 81년에 끝났다. “집에 가는데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 것도, 사람들이 ‘온라인’ ‘지로용지’ 같은 말을 쓰는 것도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죠.”
 
정씨는 최근 한 변호사에게서 “재심을 받아 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여호와의 증인에게는 죄의식이 들지 않는다”며 몽둥이찜질을 하던 헌병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정씨는 거절했다. “우리 사회를 지키는 일을 누군가 이해되지 않는 이유로 거부하면 ‘안 되면 되게 만들어’라고 하고 싶은 마음도 이해 못할 건 아니잖아요.”
 
< 글 싣는 순서 >
<상> 흔들리는 저울
<중> 두 거부자 이야기
<하> 10년 헛돈 세 바퀴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