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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뒤면 결혼 1주년인데….” 여고생의 무면허 운전이 파괴한 단란한 가정

지난 10일 새벽 강릉에서 벌어진 무면허 10대 교통사고 현장.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지난 10일 새벽 강릉에서 벌어진 무면허 10대 교통사고 현장.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한 달 뒤면 결혼 1주년인데… 6개월 된 아들을 두고 이렇게 허망하게 가다니.”

무면허 여고생이 운전하는 차량과 충돌해 숨진 강원도 강릉의 퀵서비스 배달기사 최모(24)씨의 아버지(58)는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아버지 최씨는 12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얼마 전 태어난 아들을 잘 키우겠다고 했다.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밤늦게까지 참 착실하게 배달 일을 하다 사고가 난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사고 이후 아들을 보니 얼굴과 몸에 성한 데가 없었다. 몸이 아픈 내가 걱정할까 봐 힘든 내색 한 번 안 하고 혼자 해결하는 착한 아들이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숨진 최씨의 아버지는 5년 전 직장암 수술을 받고 투병 중이다.
무면허 여고생이 운전한 차량.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무면허 여고생이 운전한 차량.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아들 최씨가 퀵서비스 배달 일을 시작한 것은 지난 2일. 치킨 등 음식을 배달하는 업무 특성상 출퇴근이 자유로워 최씨는 오후 2시부터 새벽 2시까지 근무를 희망했다고 한다.
 
배달 건수에 따라 매월 수입이 다르다. 하지만 건당 3000원 안팎이라 매월 400만~5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게 업체 관계자의 설명이다. 아들 최씨는 결혼 이후 강릉의 한 아파트에서 월세를 내고 생활해 왔다.
 
퀵서비스 업체 관계자는 “예정대로라면 업무가 마감돼야 했는데 치킨 배달 의뢰가 들어와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사고 당일)배달 나간 것 같다”고 말했다.
최씨의 오토바이.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최씨의 오토바이.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최씨는 지난 10일 오전 2시25분쯤 강릉시 교동 강릉종합경기장 인근 삼거리에서 여고생 김모(18)양이 몰던 승용차와 충돌해 숨졌다.
 
김양은 이날 오전 0시쯤 강릉시 노암동 공영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어머니의 승용차를 몰래 끌고 나왔다. 조수석과 뒷좌석엔 친구 3명도 태웠다. 
 
김 양은 무면허 상태로 약 2시간 동안 도심을 활보하다 강릉종합경기장으로 가던 중 사고를 냈다. 경찰은 김양을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입건하고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10대 청소년의 치기어린 무면허 운전사고로 인한 참사가 잊을 만하면 발생하고 있다.
지난 7일 충북 증평군에서 A군(17)이 또래 친구를 태우고 무면허로 선배의 승용차를 운전하다 중앙분리대와 반대편 가로수를 연이어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A군이 숨지고 동승했던 B양(17)이 중상을 입었다. 

 
이보다 앞서  지난달 31일에는 부산 남구에서 C군(17)이 또래 남녀 4명을 태우고 아반떼 승용차를 몰다 주차된 차량 5대의 앞뒤 범퍼를 잇달아 충돌하고 달아나다 시민들에게 잡히기도 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0대가 자동차와 오토바이 등 무면허 운전을 하다가 낸 사고는 662건에 달했다. 전체 무면허 사고(4192건) 중 15%였다. 6건 중 1건은 10대가 저지른 셈이다. 지난해 10대 무면허 운전 사고로 운전자 등 11명이 숨졌다.
지난 7월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상리 상용터널에서 발생한 사고[강원도소방본부]

지난 7월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상리 상용터널에서 발생한 사고[강원도소방본부]

 
명의를 도용하거나 신분을 속여 렌터카를 빌린 청소년들이 무면허 사고를 내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에따라 렌터카 대여 과정에서 미성년자의 운전면허 확인 의무화 등 제도적 안전장치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지난 7월 강원 양구군 양구읍 상리 상용터널에서는 10대 청소년 3명이 렌터카를 빌려 무면허로 운전하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1명이 숨졌다. 

 
지난 4월 전북 전주에서는 무면허로 렌터카를 빌려 타고 가던 이모(17)양 등 4명이 택시와 충돌한 뒤 인근 주유소로 돌진해 시설물을 파손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정용기 의원이 교통안전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무면허 렌터카 사고 1474건 가운데 20세 이하 운전자가 낸 사고가 458건으로 무려 31%나 됐다. 이 기간 청소년 무면허 사고로 숨진 사람은 19명으로 전체 사망자(39명)의 48.7%를 차지했다.  
 
정 의원은 “최근 카셰어링을 이용한 10대 청소년의 무면허 교통사고도 급증하고 있다”며 “운전면허가 없는 청소년들이 렌터카를 빌릴 수 없도록 기술적·제도적 문제점을 신속하게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무면허 운전과 차량사고에 따른 뺑소니 등 각종 범죄 사항에 대한 교육이 의무적으로 시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청소년 무면허 교통사고는 의도된 범죄라기 보다는 호기심이나 일탈에서 비롯된 사건이 많다”며 “결과에 대해 엄격한 처벌이 필요하겠지만 정규 교과 과정에서 교통안전 교육이나 운전예절, 도로에서의 준법 의식을 가르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성인이 되어 단순히 면허취득을 위해 운전기술을 배우는 제도에서 청소년 무면허 교통사고를 막는데 한계가 있다”며 “학교 교과외 활동에 운전교육을 포함하는 등 전향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강릉·증평=박진호·최종권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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