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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전 여성 미라 유전자서 발견된 현대 질병 '이것'

국내 연구팀이 질병 유전자 분석을 통해 17세기 조선시대 미라의 사망원인을 밝혀내는 데 성공했다. 사진은 2010년 경북 문경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여성 미라의 모습. [사진 플로스원 논문 발췌]

국내 연구팀이 질병 유전자 분석을 통해 17세기 조선시대 미라의 사망원인을 밝혀내는 데 성공했다. 사진은 2010년 경북 문경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여성 미라의 모습. [사진 플로스원 논문 발췌]

돌이켜보면 저는 늘 밥을 먹고 나면 소화가 잘 안 되는 것 같았고 피곤했어요. 가끔 걸어서 외출이라도 하려 하면 얼마 못 가 숨이 가빠 늘 가마를 타고 다녀야 했죠. 이게 심장병 증상이었다는 걸 400년이 지난 지금에야 알게 됐네요. 게다가 심장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제가 이미 갖고 있었다니요. 저도 제 사망 원인을 잘 몰랐는데 이제 조금 답답함이 풀리는 것 같습니다.  
 
참, 제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2010년 경상북도 문경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발견된 '미라'입니다. 사람들은 저를 보고 진성 이씨 집안의 소실(첩)이라고도 하고 여러 이유로 결혼하지 못한 '노처녀'라고도 하더군요. 제 명정(죽은 사람의 성씨 등을 적은 깃발)에 ‘진성이낭지구(眞城李娘之柩)’라고 쓰여 있는데 ‘낭(娘)’이라는 글씨는 미혼 여성이거나 첩일 경우에 쓰는 단어기 때문이죠. 제 신분은 여러분의 상상력에 맡길게요. 당시에는 결혼하지 않은 것도, 소실인 것도 남들 입에 오르내릴 일이었으니 말이죠. 400년이 지난 후에 '미라'로서 사람들의 주목을 또 한 번 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제 인생도 그러고 보면 평범하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30대 후반쯤(사망 나이 35~50세 추정)이었던가, 저는 수명을 다해 제가 입던 저고리·한삼·치마 같은 옷들과 함께 묻혔답니다. 그런데 400년쯤 지났을까요. 갑자기 웅성거리던 소리가 들리더니 관 뚜껑이 열리더군요. 빛이 얼굴에 닿는 순간이 잊히지 않네요. 그렇게 제가 다시 한번 세상의 빛을 보게 됐어요.
 
세상에 나온 뒤 가문의 후손들이 저를 데리고 가서 이제 다시 영면에 드는가 싶었어요. 그런데 2015년, 낯선 사람들이 저를 생전 처음보는 공간으로 데리고 가더군요. 사람들은 이들을 '의사'라고 부르네요. 의사들은 저를 데리고 가 CT(컴퓨터단층촬영)라 불리는 기계 속으로 들여보냈어요. 이 기계에 들어갔다 나오면 제 몸 안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훤히 볼수 있다고 하네요. 
2015년 진행한 미라의 뇌(왼쪽)와 심장·간 CT 사진. [사진 플로스원 논문 발췌]

2015년 진행한 미라의 뇌(왼쪽)와 심장·간 CT 사진. [사진 플로스원 논문 발췌]

CT 사진에서 발견 된 대동맥의 석회화. [사진 플로스원 논문 발췌]

CT 사진에서 발견 된 대동맥의 석회화. [사진 플로스원 논문 발췌]

 
2015년에 미라를 부검하기 위해 입고있는 옷을 제거하는 장면. [사진 플로스원 논문 발췌]

2015년에 미라를 부검하기 위해 입고있는 옷을 제거하는 장면. [사진 플로스원 논문 발췌]

기계로 촬영을 하고나서 저를 부검했더니 심장 혈관에서 '죽상동맥경화증'이 확인됐다고 합니다. 혈관에 나쁜 콜레스테롤 등이 쌓여 혈관 지름이 좁아지는 질환이라더군요. 듣기로는 제가 살던 시대가 아닌 요즘 사람들이 많이 걸리는 병으로 꼽힌다고 하네요. 흡연, 운동 부족, 고칼로리 식단 같은 생활습관이 원인이기 때문이랍니다. 방치하면 뇌졸중·심근경색 같은 질환으로 이어진다는군요. 저도 이런 심혈관계 질환으로 사망을 했다고 의사들이 확진했답니다. 
 
이 얘기를 듣고보니 생각나는 것이 한가지 있어요. 저는 밥·떡·국수 같은것을 참 좋아했어요. 나이가 들면서 고기를 굉장히 즐겨먹었습니다. 동맥경화증의 원인으로 꼽히는 고탄수화물 식품과 칼로리 높은 음식들이죠. 알고보니 한 연구기관(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제 뼈·머리카락을 분석해 제가 어떤 것을 즐겨먹었는지 밝혀내 2014년에 발표를 했더군요.
 
제가 좀더 주목받은 이유는 제 유전자에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유전자가 있었다는 거에요. 얼마 전 또 다른 의사들이 저를 '무균실'이란 곳으로 데리고갔어요. 전에 봤던 의사들하고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이들은 온 몸을 꽁꽁 감싼 '방호복'이란 옷을 입고 장갑과 마스크와 헤어캡이란 것을 착용하고 제게 다가왔어요. 이런 복장을 한 이유는 자칫 제 DNA와 이 사람들의 DNA가 섞일까봐 예방하기 위한 조치라네요. 이 의사들은 제 뇌 조직을 채취해갔어요. 사체 표면의 DNA는 오염됐을 가능성이 크고, 실험하는 사람들의 DNA가 묻을수도 있기 때문에 뇌 조직에서 미토콘드리아 DNA를 추출해냈다는군요.
 
의사들은 동맥경화증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유전자 10개를 골라서 제 유전자와 비교를 했답니다. 그랬더니 그중에 7개가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중 4개는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유전자이고 3개는 아시아 사람에서 많이 보이는 유전자라네요. 제가 살던 17세기만 해도 실학이라 불리던 학문이 그리 빛을 보지 못했는데 제가 잠들어 있는 사이 놀랍게 발전했네요.
 
저를 연구한 의사들은 제가 생활습관때문에 동맥경화가 왔는지, 유전적인 요인때문에 왔는지는 정확히 알수 없다고합니다. 유전자 분석을 통해 동아시아인 미라에서 동맥경화가 사망의 원인으로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또 동맥경화가 현대인의 질병으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동맥경화증을 일으키는 유전적 원인이 17세기 우리나라 조상에서 나타났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동맥경화같은 심장질환으로 여성이 35~50세 사이에 사망하는 건 현대에도 일반적인 건 아니라네요. 하지만 저처럼 고탄수화물 식품과 육류를 즐겨먹고 유전적 요인까지 있으면 조심해야한다는 것, 기억하세요.
 
※위 기사는 이은주(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신동훈(서울대병원 해부학과) 교수 연구팀이 1600년대 조선시대 여성 미라의 사인을 유전자 분석기술로 연구한 논문과 이 교수의 설명을 바탕으로 미라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것이다. 논문은 국제학술지 '플로스원' 최근호에 실렸다.
 
이민영 기자 lee.m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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