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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선비 유승민과 부산싸나이 김무성…가깝고도 먼 '보수 투톱' 애증의 스토리

 
“김무성 의원만 유승민으로 가자고 하면 쉽게 유승민 비대위로 가는 것이죠.”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은 11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바른정당의 향후 지도부 재편을 놓고 이렇게 내다봤다.
여기에 두 가지 함의(含意)가 담겨 있다. 첫째, 김무성 의원이 아직 동의하지 않았다는 점. 둘째, 김무성 의원이 동의하면 유승민 비대위원장에 대한 당내 일부 반발은 극복될 것이라는 점이다.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과 유승민 의원이 10일 의원단 만찬에서 입맞춤을 하고 있다. [바른정당 제공]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과 유승민 의원이 10일 의원단 만찬에서 입맞춤을 하고 있다. [바른정당 제공]

당내에서 김무성ㆍ유승민 양측의 긴장 관계를 부정하는 이는 없다. 또 한편으로는 바른정당이 존속하려면 양측이 협력해야 한다는 데도 이의가 없다. 
불과 2년 전 당 대표-원내대표로서 보수여당을 지휘했던 두 사람은 이제 ‘개혁보수’라는 기치 아래 둥지를 떠나 풍찬노숙을 함께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서로를 향한 긴장의 끈은 놓지 않은 상태다. 지난 10여 년이 그랬다. ‘공동의 적’이 나타났을 때는 힘을 합치고, 위기를 극복하면 상호 견제하는 긴장의 공생관계를 이어왔다.
 
①부산 사나이와 대구 선비=출발선부터 달랐다. 7년 연상인 김 의원은 1980년대 말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가신그룹인 상도동계의 막내로 정치에 발을 디뎠다. 반면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위원을 지낸 유 의원은 2000년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가 여의도연구소장으로 밭탁하며 정치에 입문했다. 김 의원은 이른바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이 한창이던 시기에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다면 유 의원은 기울어가는 시기에 입문했다.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왼쪽에서 둘째)가 2002년 7월 10일 당 후보실에서 유승민 여의도연구소 소장, 이한구 의원, 임태희 의원(왼쪽부터) 등 브레인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왼쪽에서 둘째)가 2002년 7월 10일 당 후보실에서 유승민 여의도연구소 소장, 이한구 의원, 임태희 의원(왼쪽부터) 등 브레인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두 사람은 스타일도 다르다. 김 의원이 ‘무성대장’이라는 별명에서 드러나듯 동료 의원들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스타일이라면 유 의원이 꼿꼿하고 강직하며 브레인으로 분류된다.
양측의 성장 배경도 비슷하면서 결이 달랐다.  

김 의원의 부친인 김용주 전 의원은 전남방직을 경영한 실업가로 제2공화국에서 민주당 원내총무를 하다가 5ㆍ16 군사쿠데타로 물러났다. 이후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경영에만 전념했다. 유 의원의 부친인 유수호 전 의원은 판사 시절인 1971년 반정부 시위를 이끈 당시 부산대 총학생회장(김정길 전 행자부장관)을 석방시켰다가 미운털이 박혀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부친들이 모두 국회의원을 지냈지만 실리와 관계를 중시하는 사업가와 원칙을 중시하는 판사의 특성이 서로 다른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부부가 2007년 9월 19일 부산 남구 용호동 김무성 의원 사무실을 격려 방문했다.김무성의원이 사무실 앞 에서 기다리다 김 전 대통령을 포옹하고 있다. [중앙포토]

김영삼 전 대통령 부부가 2007년 9월 19일 부산 남구 용호동 김무성 의원 사무실을 격려 방문했다.김무성의원이 사무실 앞 에서 기다리다 김 전 대통령을 포옹하고 있다. [중앙포토]

 
②대선캠프 한솥밥=양측은 2000년대 들어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대통령 만들기를 함께했다. 2002년 대선 당시엔 재선의 김 의원은 미디어대책본부장을 맡아 미디어 관련 업무를 총괄했고, 여의도연구소장이자 이 총재의 신임이 깊어던 유 의원이 연설과 정책 등을 도맡았다.
이후 열린 박근혜 대표 시대엔 두 사람 모두 자연스럽게 박근혜계가 됐다.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부상했으나 이들은 박근혜로 남았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각각 조직총괄본부장과 정책메시지 총괄단장직을 맡아 조직과 정책을 책임졌다. ‘원조 친박’의 핵심으로 자리잡았지만 경선 패배로 영광은 짧았다. 김 의원은 2008년 총선 과정에서 공천 탈락의 쓴맛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무소속으로 출마했고, 모두 18대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③원내대표로 탈박=두 사람 모두 2007년 경선 후 박 전 대통령과 사이가 멀어졌고, 원내대표를 계기로 탈박(脫朴)을 공식화했다. 

김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부정적 입장에도 2010년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했고 친이(친이명박)계의 지원사격으로 당선됐다. 사실상 친박계에서 이탈한 순간이었다.. 
유 의원도 2012년 초 “박(근혜) 위원장을 가까운 거리에서 도울 기회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내가 쓴소리를 하니 박 위원장도 나를 싫어할 것”이라고 말해 사실상 친박계에서 멀어지고 있음을 시인했다. 또 2015년 7월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당선되고 국회 연설에서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박 전 대통령의 공약을 공개비판해 탈박을 공식인증했다. 
 
 ④비박 지도부=양측은 2014년 전당대회에서 다소 소원해졌다. 유 의원은 당 대표로 출마한 김 의원 대신 서청원 의원을 지원했다. 선거 결과는 김 의원의 승리였다. 
하지만 2015년 유 의원이 원내대표가 되면서 양측은 여권의 ‘비박’ 지도부로서 손발을 맞췄다. 그러다 2016년 총선에서 유 의원이 ‘진박(진짜 친박) 감별’에 밀려 공천에서 탈락하자 당 대표였던 김 의원이 공천안에 날인을 거부하며 당 대표 직인을 챙겨 부산으로 가버린 일도 있었다. 이른바 ‘옥쇄 파동’이다. 유 의원은 대구 동을에 무소속 출마해 당선된 뒤 복당했다. 이때부터 사실상 박 전 대통령의 ‘레임덕’이 시작됐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2015년 8월 21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운데)와 전 원내대표인 유승민 의원이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고 있다. [중앙포토]

2015년 8월 21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운데)와 전 원내대표인 유승민 의원이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고 있다. [중앙포토]

⑤바른정당의 1인자는?=두 사람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동참한 이후 바른정당을 창당하는데까지 손을 잡았다. 하지만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김 의원은 외연 확대를, 유 의원은 정강과 정책의 방향을 나누어 맡았다. 하지만 유 의원의 경제적 ‘좌클릭’에 대해 이견이 나오면서 잡음이 일었다. 일부 의원들이 새누리당 탈당을 주저하자 김 의원이 “나도 참고 있다. 바로잡을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설득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무성계 의원 상당수가 대선 전 탈당파에 합류하면서 양측의 갈등설은 대선까지 끊임없이 이어졌다. 양측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를 부인했지만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특히 이혜훈 전 대표가 물러나고 유ㆍ김 의원이 자강론과 통합론의 상징으로 대두되면서 이같은 갈등 국면은 첨예화되고 있다.  
지난 3월 2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바른정당 19대 대통령 후보자 선출대회에 참석한 유승민 의원이 대선 후보로 선출된 후 김무성 고문과 악수하고 있다.

지난 3월 2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바른정당 19대 대통령 후보자 선출대회에 참석한 유승민 의원이 대선 후보로 선출된 후 김무성 고문과 악수하고 있다.

10일 바른정당은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유 의원을 비대위원장으로 삼는 비대위 구성에 사실상 동의했으나, 의원 만찬에 참석한 김 의원은 주호영 원내대표를 권한대행으로 삼는 체제로 이행하자고 주장해 이견이 다시 한 번 노출됐다.
당 관계자는 “양측이 흉금을 터놓고 서로 이야기하는 자리가 마련되면 좋을텐데, 자존심 때문인지 선뜻 먼저 나서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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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