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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변신은 무죄? 신자유주의 첨병서 양극화 해소 기수로..

[하현옥의 금융산책] 국제통화기금(IMF)의 변신
 
 “한국이 외환위기를 극복하면서 굉장히 잘한 부분은 구조개혁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1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국이 외환위기를 극복한 과정을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한국은 여러 충격에도 강한 회복력을 보여왔다”며 “지난 20년간 번영하는 선진 경제의 면모를 보였고 한국의 경제 성과는 고품질”이라고 말했다. IMF의 수장이 한국을 경제 모범생으로 인정한 셈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11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11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20년 전으로 시곗바늘을 돌리면 상황은 완연히 다르다. 1997년 11월 19일, 한국은 IMF에 단기 유동성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태국에서 시작된 아시아 외환위기의 격랑이 한국을 휩쓸었다. 나라의 곳간이 텅 비었다. 시장에서 돈을 빌리기 힘들었다. IMF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IMF가 내건 조건은 가혹했다. 재정 긴축과 금리 인상, 부채 비율 축소, 구조 개혁, 시장 개방 등을 요구했다. 은행과 기업은 부채 비율을 줄이고 군살을 빼기 위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생존의 위기에 몰린 기업의 이합집산이 이어졌다. 구조조정의 여파로 회사가 사라지고 일자리를 잃은 이들은 고통에 시달렸다. 구제금융으로 외환위기의 불길을 잡는 소방수였지만 IMF는 오히려 저승사자로 비쳤다.
 
 ‘저승사자 IMF’는  1ㆍ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쥔 미국이 구상한 전략의 산물이었다. 외환 시장 안정과 국제 무역 확대의 기치를 내걸고 미국은 전후 경제의 판을 새로 짰다.
 
1997년 12월 임창렬 경제부총리가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에서 국제통화기금(IMF) 미셸 캉드쉬 총재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금 지원 합의문에 서명하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1997년 12월 임창렬 경제부총리가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에서 국제통화기금(IMF) 미셸 캉드쉬 총재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금 지원 합의문에 서명하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44년 미국의 브레턴우즈에서 44개국 연합국 대표가 모인 가운데 기존 금본위제를 폐지하고 ‘금 1온스=35달러’로 정한 뒤 각국 환율을 달러에 고정한 통화체제를 출범시켰다. 미국 달러화와 연동된 금태환제다. 브레튼우즈 체제의 등장이다. 
 
이 체제를 지탱할 세 개의 기둥을 세웠다. 이후 세계은행(WB)이 된 국제부흥개발은행(IBRD)과 관세와무역에관한일반협정(GATT), 그리고 IMF다.
 
 ‘브레튼우즈 삼각편대’의 역할은 분명했다. IBRD는 세계대전 이후 전후 복구 사업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후 세계무역기구(WTO)로 변신한 GATT는 자유무역 확대에 앞장섰다. 보호무역주의 기승으로 세계 경제가 휘청댔던 과오를 막기 위해서였다. IMF는 국제통화 협력과 환율 안정을 담당했다.
 
 IMF의 목적은 분명했다. 국제통화체제를 안정적으로 운영해 세계 교역을 촉진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것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전 각국이 경쟁적으로 평가 절하에 나서며 세계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구상이었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국제통화기금(IMF) 본부. IMF과 세계은행은 브레튼우즈 체제라는 미국 중심의 세계 경제 체제를 이끌었다. [중앙포토]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국제통화기금(IMF) 본부. IMF과 세계은행은 브레튼우즈 체제라는 미국 중심의 세계 경제 체제를 이끌었다. [중앙포토]

 
 이를 위해 미국 달러에 고정된 환율 변동폭은 ±1%로 제한됐다. 환율 변동 등으로 인해 국제 수지 적자가 커지며 어려움을 겪는 국가에 긴급 대출을 하는 것도 IMF의 주요 기능 중 하나였다. 환율이 안정을 찾을 때까지 시간을 벌어줄 자금을 대주기 위해서였다.
 
 문제는 이 자금을 빌려주는 데 있어 IMF가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만큼 가혹한 채권자였다는 데 있다. 97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에 제시한 전제조건을 모든 채무국에 요구했다. 구조조정과 재정 긴축, 고금리 정책 등으로 이뤄진, 이른바 ‘IMF 정책 준수조건’이다.
 
 신자유주의의 바탕 위에 만들어진 이 조건은 ‘워싱턴 컨센서스’로 불리며 미국의 세계화전략으로 비판받았다. 80년대 남아메리카의 외채 위기가 닥치자 구제금융을 주며 신자유주의를 강제했다는 것이다. 
 
94년 멕시코 외환위기와 97년 아시아 외환위기 한국과 태국 등이 대표적인 예다. 조셉 스티글리치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IMF의 준수조건은 경제 체력 자체를 고갈시키는 처방”이라고 비판했지만 IMF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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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든 과하면 끝이 있기 마련일까. 저승사자 IMF가 변신을 꾀하는 모습이다. 세계금융위기와 유로존 재정 위기를 거치며 서구 중심의 IMF 체제에 대한 개혁 요구가 거세졌다. 중국 등 신흥국의 지분이 늘어나며 IMF의 기존 정책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며 IMF의 등을 떠밀기 시작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내부의 자기 반성도 시작됐다. 지난해 6월 내놓은 자체 보고서가 그 출발점이다. ‘신자유주의는 과대평가됐나’라는 이 보고서에서 IMF는 “신자유주의 몇몇 정책이 경제 성장을 이끈 것이 아니라 불평등을 증가시켰고 이는 지속적인 성장을 가로막는다”고 지적했다.
 
신자유주의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던 재정 건전성과 금융시장 개방이 나라별 사정에 따라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자기 반성이 담겼다.  
 
 반성문을 쓴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2015년 그리스 디폴트 사태 때 독일에 맞서 가혹한 긴축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독일을 향해 “그리스의 채무를 삭감해주지 않으면 구제금융에 더 이상 돈을 대지 않겠다”고 나선 것이다.
 
2015년 6월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 협상이 난항에 빠지며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와 디폴트 위험이 커지자 프랑스 파리에서 한 남성이 ‘그리스를 지지한다. 긴축 중단’이라고 쓴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 그리스 구제금융은 국제통화기금(IMF)이 가혹한 긴축에 대한 접근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중앙포토]

2015년 6월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 협상이 난항에 빠지며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와 디폴트 위험이 커지자 프랑스 파리에서 한 남성이 ‘그리스를 지지한다. 긴축 중단’이라고 쓴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 그리스 구제금융은 국제통화기금(IMF)이 가혹한 긴축에 대한 접근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중앙포토]

 
IMF의 변심은 새로운 모습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위기를 진화하는 소방수가 아닌 위기를 사전 차단할 예방주사를 놓는 의사로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양극화가 심해지고 그로 인한 불평등이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진단이 변화를 이끌었다.
 
 IMF가 생각하는 예방주사는 성장을 위한 공공투자(재정지출 확대)다. 긴축 재정을 금과옥조로 여겼던 이전의 IMF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지난 7월 IMF가 세계은행 등과 함께 내놓은 ‘포용적 성장’을 위한 보고서는 IMF의 노선 전환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11일 기자회견에서 라가르드 총재도 포용적 성장을 위한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 경제는 재정 여력이 충분한 만큼 육아와 노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며 “이러한 정책은 성장에 도움을 주고 사회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에 대해서도 한마디했다. "소득주도 성장은 긍정적이긴 하지만 프랑스 재무장관으로 재직한 경험에 비춰보면 균형을 잡고 신중하게 해야 하는 측면도 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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