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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교통사고 예상 형량, 컴퓨터에 물어보세요”

 전과가 없는 A씨가 승용차를 운전하다 횡단보도에서 무단횡단하는 보행자를 치어 전치 6주의 골절상을 입혔다면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 예전에는 답을 얻으려면 변호사를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집에서도 인터넷을 통해 교통사고의 여러 정황을 입력하면 예상 형량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컴퓨터 양형 시스템이 개발돼서다.
 
 피해자 상해 정도, 법규 위반 종류, 합의·음주·도주·전과 여부, 피해자 과실, 피의자 신상 등 88가지 양형 인자 중 자신에게 해당되는 내용을 입력하면 양형위원회 양형기준과 기존 판례 등을 참조해 예상 형량과 집행유예 여부 등을 제시하는 프로그램이다. 
 
 A씨의 경우 ‘피고인을 징역 7.6개월에 처할 것을 권장합니다…또는 피고인을 벌금 860만원에 처할 것을 권장합니다’는 답이 나왔다.  
 
컴퓨터 양형 시스템 초기 화면. 가운데 Coms를 클릭하면 교통사고 형량을 알아볼 수 있다.

컴퓨터 양형 시스템 초기 화면. 가운데 Coms를 클릭하면 교통사고 형량을 알아볼 수 있다.

보라색 카테고리를 누른다.

보라색 카테고리를 누른다.

'교통' 칸을 클릭한다.

'교통' 칸을 클릭한다.

피의자 신상, 정황, 전과, 사고종류, 피해자 과실 등 88개 양형인자가 있다.

피의자 신상, 정황, 전과, 사고종류, 피해자 과실 등 88개 양형인자가 있다.

피의자 신상, 정황, 전과, 사고종류, 피해자 과실 등에서자신에게 해당되는 내용을 클릭하면 된다.

피의자 신상, 정황, 전과, 사고종류, 피해자 과실 등에서자신에게 해당되는 내용을 클릭하면 된다.

일부 확대한 화면

일부 확대한 화면

입력을 마친 후 양쪽 윗부분에 있는 '형량결정'을 누르면 판결문 형식으로 나온다. 아래 주문을 보면 '피고인을 징역 7.6개월에 처할 것을 권장합니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입력을 마친 후 양쪽 윗부분에 있는 '형량결정'을 누르면 판결문 형식으로 나온다. 아래 주문을 보면 '피고인을 징역 7.6개월에 처할 것을 권장합니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을 개발한 주인공은 김성인(71) 고려대 산업경영공학부 명예교수다. 그는 지난달 말 교통사고 정황을 입력하면 피고인의 예상 형량을 제시하는 서비스를 웹(www.kimscatscoms.com)에 무료 공개했다. 순차적으로 살인, 횡령 등 다른 범죄에 대해서도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김성인 고려대 명예교수가 최근 공개한 컴퓨터 양형 시스템을 설명하며 웃고 있다. 전민희 기자

김성인 고려대 명예교수가 최근 공개한 컴퓨터 양형 시스템을 설명하며 웃고 있다. 전민희 기자

 김 교수는 “판결이라는 게 단순 계산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양형이 객관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성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김 교수가 45년 동안 ‘형량 정립’(비슷한 사안에 비슷한 형량) 연구에 매달렸던 결과다. 그는 컴퓨터란 단어조차 생소했던 1972년부터 아버지 김윤행 전 대법관(92년 작고)과 함께 컴퓨터를 활용한 범죄 양형 시스템 개발을 시작했다. 
 
 김 교수는 “형량 정립은 당시 법조계가 당면한 문제 중 하나였다. 법관에 따라 같은 사안이어도 판결이 심하게 들쭉날쭉할 때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응용수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그는 아버지에게 “컴퓨터를 이용하면 객관적이고 일관적인 형량을 결정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김 전 대법관은 법관으로서 경험이나 자유재량을 강조하는 다른 법관들과 달리 컴퓨터와 인공지능의 힘이 양형정립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고 아들의 연구를 적극 도왔다.  
 
 먼저 교통사고를 모델로 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형사사건의 30%를 차지하고 있었고, 형량결정요인이 비교적 단순했기 때문이다. 5개월 동안 의사와 판사 10여명의 설문답안과 200개의 공판기록을 재료로 프로그램을 완성했다. 
 
컴퓨터 양형 시스템 개발을 보도한 중앙일보 기사.

컴퓨터 양형 시스템 개발을 보도한 중앙일보 기사.

 1973년 김 전 대법관은 연구결과를 대법원장에 보고하기도 했다.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법관에 따라 다른 형량이 나올 가능성도 적어지고, 판·검사, 변호사들이 일일이 사건을 분석하고 판례를 찾는 수고를 덜 수 있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법조계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판사들의 자유재량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였다. 
 
 “법관들의 역할을 컴퓨터가 대체하거나 자유재량권을 침해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1991년에는 인공지능 기법(엑스퍼트 시스템)을 활용해 한 단계 더 발전한 프로그램도 선보였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달라지지 않았죠.” 
 
 형량정립과 관련한 사법연수원 강의가 당일 취소되기도 하고, 형사정책원에서 발주한 정책연구가 없던 일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연구를 계속 이어갔다. 아버지의 오랜 숙원을 이루기 위해서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프로그램도 계속 업그레이드를 해야 했다. 정년퇴임 이후에는 KAIST 인공지능 교수인 장남과 변호사인 차남을 연구에 참여시켰다. 
 
 3년 전에는 두 아들과 함께 형량을 결정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해 특허도 등록했다. 3대에 걸쳐 프로그램을 완성한 셈이다. 이 시스템은 사안에 대한 입력만 끝내면 법관이 작성하는 판결문을 작성해준다. 아울러 처단형의 범위, 양형위원회 권고형의 범위, 시스템의 형량을 도표로 비교하고, 형량이 결정된 전 과정을 제시한다. 
 
 최근에는 대중화를 위해 온라인 서비스로 개발했다. 현재 시스템의 반응을 보아 2~3개월 안에 살인·횡령·성범죄 등의 분야로도 확대할 계획이다. 
 
 김 교수는 “이런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판·검사, 변호사, 경찰 등이 일손을 덜고, 비전문가도 형량을 예상하는 참고자료로 쓸 수 있다”며 “법조계를 비롯한 많은 전문가들이 연구에 참여하고 발전시켜 잘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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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