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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오월 광주'를 잊은 적이 없다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최초의 기록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에 수록된 1980년 5월 광주의 사진. 헬기가 옛 전남도청 앞 상공을 날고 있다. [사진 나경택, 창비]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최초의 기록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에 수록된 1980년 5월 광주의 사진. 헬기가 옛 전남도청 앞 상공을 날고 있다. [사진 나경택, 창비]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이하 5ㆍ18)은 오랫동안 잊힌 역사였는가. 영화 한 편이 쓰린 기억을 불러올 때까지 우리는 침묵하고 있었는가. 억눌리고 짓밟혀 활발하지는 못했지만 우리도 어떻게든 5ㆍ18을 증언하고 있었다. 그 고단하고 치열했던 증언의 역사를 문학평론가 김형중(조선대 국문과 교수)이 기록했다. 김형중은 광주에서 나고 자라 지금도 사는 광주 토박이다. 에세이집 『평론가 K는 광주에서만 살았다』(2016)를 낼 정도로 광주를 사랑하고 5ㆍ18을 아파한다.  
 

김형중 조선대 교수의 ‘책으로 돌아본 광주민주화운동’
억눌린 현대사 속에서도 오월 광주 증언 시도 이어져
황석영 최윤 임철우 한강 등 문학부터 사회과학까지

 # 증언에의 욕구
 『이것이 인간인가』(1947) 서문에서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프리모 레비는 다음과 같이 쓴다. “우리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다른 사람들을 거기에 참여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우리를 사로잡았다.” 수용소에서 그가 느꼈던 그 욕구를 ‘증언에의 욕구’라 불러도 좋겠다. 생리적인 욕구를 웃돌 정도로 강렬했었다고 말하는 이 욕구에 따라 레비는 생환 후 기록하는 자, 즉 작가가 된다.  
 
 최근의 사례로는 2015년 노벨상을 수상한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를 들 수 있겠다. 알렉시예비치는 역사적 사건을 가급적 정밀하게 재구성하려는 의도로 방대한 인터뷰에 바탕을 둔 이른바 ‘목소리 소설’을 쓴다. 가령 『체르노빌의 목소리』(2005)에서 우리가 듣는 것은 작가의 목소리가 아니라 재앙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와 유족 수십 명의 목소리다. 이 작품의 감동은 따라서 서사나 기교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감동은 압도적인 사실 자체에서 온다. 어쩌면 2015년의 노벨문학상은 문학 작품에 주어졌다기보다는 문학적 가공 이전의 증언 행위에 주어졌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증언할 수 없을 만큼 참담한 사건을 어떻게 증언할 것인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다시 부상한 이 질문은, 한국의 경우 5.18 직후 이미 던져진 것이었다. 최근 영화 ‘택시 운전사’의 흥행, 문재인 정부의 진상 재조사 의지, 그리고 헬기 기총소사 탄흔 발견 같은 일련의 상황 덕분에 5.18이 재조명되고 있다고 하지만, 1980년 5월의 열흘에 대한 증언의 기록은 이미 적지 않은 양이 누적되어 있었다. 다만 어떤 불편함이나 두려움이, 혹은 왜곡이나 무지가 증언의 기록을 애써 외면하거나 주변화했을 뿐이다.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진실을 반드시 누설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증언에의 욕구가 우리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 증언의 두 가지 방식
 5.18에 관한 초기 증언은 주로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취했다. 진상을 알려야 한다는 절실한 욕구 때문이었을 것이다. 5.18의 전모를 비교적 소상히 다룬 최초의 기록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1985)가 논픽션이었던 것도 그런 이유다.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최초의 기록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에 수록된 1980년 5월 광주의 사진. 끝도 없이 이어지는 탱크 행렬. [사지 나경택, 창비]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최초의 기록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에 수록된 1980년 5월 광주의 사진. 끝도 없이 이어지는 탱크 행렬. [사지 나경택, 창비]

 문학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80년대 중ㆍ후반에 쓰인 5.18 소재 문학작품은 대체로 고발과 폭로, 그리고 진상 규명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 계열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홍희담의 ‘깃발’(1988), 송기숙의 『오월의 미소』(2000), 문순태의 『그들의 새벽』(2000), 그리고 ‘오월시’ 동인들과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만큼 많은 시인의 시편을 들 수 있다. 오월 문학 최고의 성과로 꼽히는 임철우의 대하소설 『봄날』(1997) 역시 이 계열에 속한다. 『봄날』은 오월 문학의 역사에서 예외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전 5권의 방대한 분량도 그렇지만 작가의 윤리라는 측면에서 더욱 그렇다. 전남대 4학년 학생으로 5ㆍ18을 겪은 임철우는 5.18의 숭고한 정체성을 평생 탐구한 작가다.  
 
 증언의 다른 형식에 주목한 작가들 또한 없지 않았다. 최윤의 중편소설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1988)는 5.18을 겪은 후 기억상실증에 빠진 소녀를 주인공 삼아 고통의 참담함을 전달하고 지속시키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같은 해 출간된 홍희담의 리얼리즘 소설 ‘깃발’과 대칭적인 위치에서 오월 문학의 모더니즘적이고 여성적인 흐름을 형성한다. 장선우 감독의 영화 ‘꽃잎’(1995)의 원작이기도 하다.
 
 시의 경우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3)에 실린 ‘묵념, 5분 27초’나 ‘흔적’ 연작이 이 계열에 속하는 초기 사례다. ‘나는 말할 수 없으므로 양식을 파괴한다’라고 선언했던 황지우답게, 그의 시편은 사건의 재현보다 강요된 침묵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럼으로써 참담한 고통의 ‘말할 수 없음’을 독자에게 제시한다. 최윤과 황지우의 작품에서 5.18은 재현 불가능한 고통 그 자체가 된다.
 
 최윤과 황지우가 마련한 흐름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일반화된다. 1997년 5.18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사정과 무관하지 않아 보이는 변화다. 이때부터 증언의 과제는 이미 일정 정도 밝혀진 사실의 재현보다는 5.18의 현재화를 향한다. 손홍규의 ‘테러리스트’ 연작(2007∼8), 공선옥의 『그 노래는 어디에서 왔을까』(2013), 김경욱의 『야구란 무엇인가』(2013), 한강의 『소년이 온다』(2014) 등이 일종의 후일담 형식을 취한 것도 그런 이유다. 이들 작품은 30년도 더 지난 시점에 5.18을 어떻게 현재진행형 사건으로 재현할 것인가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각별한 관심을 요한다. 이 작품은 돌림노래 형식을 차용함으로써 5.18을 현재화하는 일이 문학적으로 가능한 일임을 보여준 수작이다. 한강은 이 작품으로 인해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5.18을 재현한 문학 작품을 총서로 발간하려는 노력도 있었음을 이 자리에서 밝혀야겠다. 5.18 기념재단의 노력으로 발간된 『5월 문학총서 1∼4』(2012∼2013)는 시ㆍ소설ㆍ희곡ㆍ평론 등 5ㆍ18과 관련된 중요한 문학적 성과를 선별한 자료로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 담론구성체로서의 5.18
 5.18과 관련해 누적된 인문·사회과학적 성과도 상당하다. 최근 재출간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와 최영태ㆍ김상봉 등의 『5ㆍ18 그리고 역사』(2008), 나간채의 『광주항쟁 부활의 역사 만들기』(2013)가 거론할 만하다. 이 책들은 5.18의 범주를 당시에 국한하지 않고 이후의 오랜 기억 투쟁까지를 포함해 다룬 의의가 인정된다.
 
 그러나 더 생산적인 사례는 5.18을 충실히 기록한 저작보다는 5ㆍ18로부터 비롯된 다양한 현재적 문제들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시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김상봉의 『철학의 헌정』(2015)과 박준상의 『빈 중심』(2008)이 우선 흥미롭다. 이 두 철학자는 5.18을 통해 우리 시대의 새로운 공동체 모델과 윤리를 모색하는 학문적 모험을 감행한다. 조정환의 『공통도시-광주민중항쟁과 제헌권력』(2010), 조희연ㆍ정호기가 엮은 『5.18 민중항쟁에 대한 새로운 성찰적 시선』(2009)에서는 5.18에 관한 다양한 진보적 시각을 망라해서 살펴볼 수 있다.
 
 대중적 주목을 받지는 못하다가 얼마 전 다시 빛을 본 최정운의 『오월의 사회과학』(1999, 2012)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5.18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 가장 매력적인 용어가 된 ‘절대공동체’란 말이 바로 이 책에서 유래했다. 이 책은 정통 사회학의 범주와 방법을 훌쩍 넘어서 5.18의 핵심을 규명하려고 시도한 가장 감동적인 저작에 해당한다. 5.18 연구자 사이에서는 거의 경전의 지위를 누리는 저작이기도 하다.
 
 아마도 필자가 과문한 탓에 그리고 지면의 제약 탓에, 여기 거론하지 못한 많은 작품과 저작이 더 있을 것이다. 그것들을 다 합한다면 우리는 5.18이 이미 오래전부터 일종의 담론구성체로서 기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택시 운전사’가 촉발한 5.18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다소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우리 시대에 문자는 영상보다 인기가 없다. 또 애써 찾아다니며 불편한 진실에 직면하려고 노력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요즘 유행하는 말로 ‘윤리적’인 시민이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저 많은 증언은 분명 짊어져야 할 부채가 맞다.
 
 김형중이 꼽은 ‘5·18 필독서 5’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황지우 지음, 문학과지성사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최윤 지음, 문학과지성사
『봄날 1∼5』 임철우 지음, 문학과지성사  
『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창비
『오월의 사회과학』 최정운 지음, 오월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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