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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서울시, 골목길 주민 55년 옥죈 ‘4m 법’ 폐지 나선다

서울 성북구 장수마을 골목길. 노후화된 집이 즐비하다.[신인섭 기자]

서울 성북구 장수마을 골목길. 노후화된 집이 즐비하다.[신인섭 기자]

김모(58)씨는 폭 2m 남짓한 서울 성북구의 한 골목길 옆 집에서 30년째 살고 있다. 지어진 지 50년도 더 된 그의 99㎡(30평) 주택은 비가 새고, 군데군데 금이 가 있다. 그는 “부분적인 개·보수를 해도 얼마 안 가 다른 곳이 탈이 난다. 아예 집을 헐고 새로 지으려고 알아봤지만 포기했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도로폭 4m 안 되는 골목길 집들
비 새고, 금 가도 신축 제한
시, 국토부에 법 개정 건의 검토
“재개발 원하는 주민은 꺼릴 것”
소방차 진입도로 필요 지적도

그가 집 짓기를 포기한 것은 건축물은 폭 4m 이상의 도로에 맞닿아 있어야 신축할 수 있게 돼 있는 건축법 때문이다. 폭 4m 미만의 골목길 주민이 집을 신축하려면 향후 길을 4m로 늘린다는 가정하에 그만큼의 공간을 비워 둔 상태로 집을 지어야 한다. 작은 골목길 주변 집들의 면적이 대체로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신축이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박모(45)씨는 13년 전 종로구의 골목길에 사는 부모님의 집 바로 옆 주택을 구매했다. 부모님의 집과 자신의 집을 합쳐 새집을 짓기 위해서였다. 주택 구매 후에야 그는 골목길에선 신축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나와 부모님 집 모두 겨울이 되면 보일러를 켜도 입김이 날 정도로 춥다. 올겨울이 두렵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실을 고려해 서울시가 폭 4m 미만의 골목길에서도 집을 새로 지을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 서울시는 이를 위해 ‘골목길 재생 기본계획 용역’에 착수했다고 6일 밝혔다. 강희은 서울시 재생정책과장은 “골목길 집들의 현실을 파악 중이다. 소방 등 골목길 주민 안전에 대한 대안까지 마련해 올해 말께 국토교통부에 건축법 개정을 건의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장수마을의 주택 벽에 균열이 있다(오른쪽 벽). [신인섭 기자]

장수마을의 주택 벽에 균열이 있다(오른쪽 벽). [신인섭 기자]

 
1962년에 시행된 건축법은 도로를 ‘폭 4m 이상’이라고 정의했다. 75년 개정된 법은 여기에 ‘차량이 다닐 수 있는’이란 문구를 추가했다(제2조). 이에 따라 원칙적으로 차량이 다닐 수 있는 도로에만 건축물을 신축할 수 있다.
 
골목길에서 새로 집을 지을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건축선을 후퇴해 집의 대지 일부를 도로로 내주면 된다. 두 집이 마주보고 있다면 4m에서 모자란 폭은 양쪽 집이 2분의 1씩 부담한다(제46조).
 
서울 동대문구 골목길. 폭이 4m 미만이라 주변 집의 신축이 제한돼 있다. [신인섭 기자]

서울 동대문구 골목길. 폭이 4m 미만이라 주변 집의 신축이 제한돼 있다. [신인섭 기자]

이런 건축법이 골목길의 주거환경을 낙후시킨다는 게 서울시의 판단이다. 또 집을 짓기 위해 억지로 도로를 내기 때문에 고유의 골목길이 사라진다고 본다. 강희은 과장은 “현행 건축법은 골목길 신축을 규제하는 측면이 있다. 주민이 주거환경을 자유롭게 개선할 수 있도록 해줘야 골목길이 유지·발전되고, 아파트로의 쏠림 현상도 억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폭 4m 미만 골목길에 접해 있는 집은 전국에 수만 채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문가들은 ‘4m 법’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배병길 한국건축가협회장은 “건축법상의 길의 개념은 차량 위주에 머물러 있다. 과거 도시계획은 기능성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맞게 사람이 중심이 되는 길의 개념을 정립하고, 그 길에 사는 주민들의 편의를 고려해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도 “사람이 다니면서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어진 골목길은 소중한 문화·자연 유산이다. 유럽의 골목길에서는 우리처럼 신축이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4m 법’이 지켜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조충기 대한건축사협회장은 “소방 차량 진입이 가능한 도로를 늘리는 건 공익적인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개발·재건축을 원하는 주민들에게는 서울시의 규제 완화 움직임이 반갑지 않을 수 있다. 종로구청의 한 관계자는 “골목길에서 신축이 쉽도록 제도가 개선되면 재개발의 명분이 사라진다. 주민들이 마냥 반기지만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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