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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南人流]사흘 밤낮 줄 서 물건 사는 이유 뭘까?

기다림은 갈망을 극대화한다. 기다려서라도 먹고야 말겠다는 의지, 사고야 말겠다는 집념은 누구에겐 시간낭비처럼 보일 수 있으나 정작 당사자들에게는 지루한 일상에 활력을 주는 행위다. 맛집 앞 긴 줄 행렬, 한정판 운동화를 사기 위한 밤샘 행렬은 사람들이 쉽고 값싸게 얻을 수 있는 행복 말고 다른 무언가를 원한다는 걸 말해준다. 그게 뭘까.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7월 7일 서울 청담동 루이비통X슈프림 협업 매장 앞에 모인 수 많은 인파. 이날 판매를 시작한 협업 컬렉션을 사기 위해 번호 순서대로 줄을 서 있다. 유지연 기자

7월 7일 서울 청담동 루이비통X슈프림 협업 매장 앞에 모인 수 많은 인파. 이날 판매를 시작한 협업 컬렉션을 사기 위해 번호 순서대로 줄을 서 있다. 유지연 기자

목요일마다 줄 서는 이유
2017년 8월 17일 목요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소호의 슈프림 매장 앞에 긴 줄이 늘어섰다. 모두 2017 가을 겨울 신제품의 1차 드롭(drop·신제품 출시를 의미) 날에 맞춰 물건을 사겠다고 모여든 사람들이다. 사실 이 날만 특별한 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이곳 뉴욕을 비롯해 로스엔젤레스, 일본 도쿄,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이렇게 딱 다섯 곳에만 있는 이 브랜드의 매장 앞에는 목요일마다 늘 긴 줄이 생긴다. 매주 목요일마다 새 물건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뉴욕 소호의 슈프림 매장 앞에는 신제품이 들어오는 매주 목요일마다 줄을 길게 늘어선 매니어들을 볼 수 있다. [사진 슈프림 인스타그램]

뉴욕 소호의 슈프림 매장 앞에는 신제품이 들어오는 매주 목요일마다 줄을 길게 늘어선 매니어들을 볼 수 있다. [사진 슈프림 인스타그램]

입소문난 맛집 앞의 끝없는 줄이 흔한 일이 된 것처럼 패션 매장 앞에 줄 서는 일 역시 비단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 됐다. H&M이나 유니클로 등 패스트 패션(SPA) 브랜드가 유명 디자이너와 협업한 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홍역을 겪듯 이미 몇 번이나 반복돼왔다. 그리고 점점 그 빈도가 늘고 있다.
 
자발적 줄서기
그룹 빅뱅 지드래곤이 신어 화제가된 나이키랩 마스 야드X톰 삭스 제품. [사진 js.from 인스타그램]

그룹 빅뱅 지드래곤이 신어 화제가된 나이키랩 마스 야드X톰 삭스 제품. [사진 js.from 인스타그램]

서울 한남동의 꼼데가르송 매장도 그런 행렬을 자주 만들어내는 장소다. 청담동 10꼬르소꼬모와 함께 나이키랩 제품을 오프라인에서 만나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으로, 운동화 매니어에겐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나이키랩은 보통의 나이키 제품이 아니라 희소한 디자인의 고가 제품을 선보이는 라인으로, 주로 유명 셀레브리티(셀럽)와의 협업 라인을 비정기적으로 발매한다. 그럴 때마다 홍역같은 줄서기가 목격된다. 지난 7월 7일에도 나이키랩 마스 야드X톰 삭스(※브랜드 이름X협업 아티스트) 제품을 구하기 위한 긴 행렬이 이어졌다. 꼼데가르송이나 나이키가 홍보를 한 것도 아니다. 아니, 심지어 이날 발매한다는 건 덕후(매니어)들 사이에 잘못 알려진 정보였다. 실제 발매 일정(7월 27일)은 이보다 뒤였고, 덕후들은 아무런 불만 없이 또 다시 줄을 섰다.
최근 가장 뜨거웠던 기다림의 행렬은 서울 청담동 루이비통 매장에서 있었던 루이비통X슈프림 팝업 컬렉션의 발매를 앞두고서였다. 6월 30일 1차 발매에 이어 7월 7일 2차 발매엔 무려 1000여 명이 매장 앞에서 3일 밤낮을 샜다. 자발적으로 '기다림의 미학'에 빠진 이들 덕분에 해 루이비통X슈프림 팝업 매장의 모든 물건이 빠르게 ‘완판’ 되었다.  
 
사면 성취감, 못사도 볼거리에 만족
“24시간 기다려 본 적도 있어요. ”  
우준식씨 컬렉션 중 하나인 나이키 에어포스 1미드 모델. 구입 후 개인 SNS에 인증샷을 올린다.[사진 우준식]

우준식씨 컬렉션 중 하나인 나이키 에어포스 1미드 모델. 구입 후 개인 SNS에 인증샷을 올린다.[사진 우준식]

한정판 운동화 매니어인 박대용(29·개인 사업자)씨는 담담하게 말했다. 원하는 운동화를 구하기 위해 고작 몇시간쯤 기다리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기억에 남을만큼 강렬한 구매 경험이 있다. 2015년 3월 뉴발란스 1300JP 한정판 모델 발매 때다. 일명 ‘뉴발란스의 롤스로이스’로 불리는 특별한 모델로, 5년에 한 번씩 출시된다. 발매 하루 전 저녁부터 200~300명의 캠퍼(밤 새가며 기다리는 사람들)가 서울 강남역 인근 뉴발란스 매장 앞에서 진을 쳤다.  
박씨는 줄의 가장 맨 앞, 즉 1번이었다. 발매 전날 매장 문이 닫을 즈음 도착해 꼬박 하루를 기다려서야 마침내 원하는 운동화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박씨는 “지금이 아니면 5년 후를 기약해야하기에 아무리 오래 기다린다하더라도 갖고 싶었다”고 밤을 샌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리세일(매장 구입 후 비싸게 되팔기)하는 제품을 구입하지 않는 것이 나만의 원칙”이라며 “못 구하면 그냥 내 물건이 아닌 것”이라고 말했다. 리셀러들에게 웃돈을 주고 싶지 않아 직접 발품을 팔고, 끝내 기다려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는 성취감은 긴 기다림을 견디게 하는 원동력이다.  
“기다리면서 다른 사람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어요.”
패션 블로그 롤리스트리트를 운영하는 민준식(28)씨는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에 관심이 많다. 스트리트 패션 웹진에 글을 기고하기도 하는 그 역시 한정판을 구하기 위한 매장 앞 기다림에 익숙하다. 큰 화제를 모았던 루이비통X슈프림은 물론 8월 4일 발매한 컨버스X골프왕(※브랜드 이름X협업 브랜드) 현장에도 나갔다. 그는 “각 브랜드가 한정판 제품을 소량만 판매하는 것이 고도의 마케팅, 다시 말해 상술이라는 걸 안다”면서도 “희소성 있는 제품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줄 서는 것뿐이기에 기꺼이 줄을 선다”고 했다.  
"기꺼이"라는 단어는, 원하는 물건을 얻기 위해 괴로워도 한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괴롭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줄 서는 행위 자체를 즐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트리트 패션에 심취한 이들이 모이는 곳이기에 볼거리도 많다. 민씨는 “줄 서있는 사람들 보면 다들 멋을 부리는 것은 물론 본인이 소유한 한정판 중 가장 희소하고 비싼 제품을 걸치고 온다”며 “한여름에 두꺼운 베트멍 후드티를 입고 오는 등 줄 서 있는 동안 자신의 컬렉션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루이비통X슈프림 매장 앞에는 한정판 운동화로멋을 부리고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유지연 기자

루이비통X슈프림 매장 앞에는 한정판 운동화로멋을 부리고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유지연 기자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게 아니라서 더 특별하다. 한마디로 줄 서있는 사람들끼리만 알 수 있는 ‘이쪽 세계’의 명품들이다. 민씨는 “아무래도 과시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 않을까 싶다”며 “제품 가치를 알아봐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튀고 싶다는 욕망 같은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한정판을 구하기 위한 긴 행렬이 마치 스트리트 패션을 신봉하는 무리들의 일종의 ‘회합의 장’이 아닐까 생각해 본적이 있다”고 말했다.
 
줄이 곧 사교의 현장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면 어디서 구했냐고 바로 댓글이 달려요.”
우준식(34·개인 사업자)씨는 운동화만 2000여 켤레 가지고 있는 열성 컬렉터다. 아식스 젤라이트3 모델을 구입하기 위해 서울 홍익대 인근 운동화 전문 매장에서 24시간 넘게 기다려본 적도 있다. 20~30족만 판매하는데 40여 명이 하룻밤 남짓을 기다렸다. 앞서 박대용씨가 언급한 뉴발란스 1300JP 현장에도 당연히 갔다. 박대용씨와는 그때 만나 친분을 쌓았다. 우씨는 “신발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있다 보니 관심사를 나눌 수 있다”며 “온라인에서 운동화 컬렉션을 공유하며 알게 된 사람을 현장에서 확인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신발을 구입하면 인스타그램 등 SNS에 인증샷을 올린다. 얼마 전까지 동호회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스트리트 패션 마니아들과 한정판 운동화 마니아들은 요즘 SNS를 통해 교류하는 경우가 많다. SNS에서 지인이 된 후 운동화 발매 현장에서 서로의 실물을 확인한다. 한마디로 이들에겐 줄 서는 행위가 꼭 물건을 사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 동질성을 확인하고 사교까지 하는 장으로 확대한 놀이이기도 한 셈이다.
우준식씨가 그동안 모은 운동화 컬렉션. SNS에 올린 사진이다. [사진 우준식]

우준식씨가 그동안 모은 운동화 컬렉션. SNS에 올린 사진이다. [사진 우준식]

 
누구에겐 중독
김은진(32·회사원)씨는 “나이키 조던 레전드 블루 제품을 끝으로 더 이상 줄서기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당시 강남역 나이키 매장에서 추첨까지 하며 어렵게 구한 제품이다. 현장에는 본인이 직접 신고 싶어 오는 사람이 절반, 리세일을 목적으로 한 업자가 나머지 절반이다. 한참 동안 줄을 서다보니 옆 사람들과 제품의 물량, 가격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운다.  
김씨는 “생판 처음 본 타인이지만 같은 것을 좋아한는 동질감이 있다”며 “한정판 운동화는 패션 아이템이지만 같은 취향을 인정하는 공감의 언어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동안 한정판 운동화를 구입하기 위해 기꺼이 줄을 섰던 그는 어렵게 구입해 놓고 잘 신지 않는 신발들이 계속 쌓여가면서 줄 서기를 그만뒀다. 그는 “필요하지 않은 걸 알면서도 소유욕 때문에 줄을 서서라도 손에 넣었다”며 “일종의 중독”이라고 말했다.
루이비통X슈프림 제품을 구입하기 위한 줄서기는 프랑스 파리도 예외가 아니었다. 캠퍼들이 매장앞에서 기다리며 카드를 즐기는 모습. [사진 lollyjin인스타그램]

루이비통X슈프림 제품을 구입하기 위한 줄서기는 프랑스 파리도 예외가 아니었다. 캠퍼들이 매장앞에서 기다리며 카드를 즐기는 모습. [사진 lollyjin인스타그램]

 
기다리면 더 귀하다
줄서기는 공급보다 수요가 많을 때 발생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언제라도 살 수 있거나, 언제라도 들어갈 수 있다면 줄을 설 이유가 없다. 쉽게 얻을 수 없는 희소가치를 위해 돈 뿐만 아니라 시간을 기꺼이 투자하는 셈이다.  
판매자 입장에서는 기다리게 하는 것이 득이 될 때가 많다. 시간을 들여 기다린 제품에는 무형의 가치가 더 얹어지기 때문이다. 같은 제품이라도 기다려서 얻은 것을 사람들은 더 귀하게 여긴다. 브랜드나 제품에 대한 갈망은 쉽게 전염되고 손에 넣으려는 열망이 커질수록 제품과 브랜드의 가치는 올라간다는 얘기다.  
서울대 민경선·이유리 교수팀(의류학과)이 발표한 논문 ‘패션 매장에서의 대기 중 시간 채움 효과’(2013)에도 비슷한 대목이 등장한다. 쇼핑 도중 기다리는 것은 고객의 제품 가치와 경쟁에 대한 인식을 강화시켜 결과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자극한다. 이교수팀은 “기다리는 동안 겪는 손님의 심리적, 감정적 반응은 상점에 들어간 후 구매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적절한 대기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결론 내린다.  
사실 이건 조금 오래된 시각이다. 트렌드 분석가인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은 줄서기에 대해 조금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SNS 시대엔 줄서기 자체가 문화 콘텐트”라며 “젊은 사람들의 보편적인 욕망이 투영되는 물건이나 장소에 줄을 서는 건 일종의 놀이이자 자랑거리”라고 해석했다.
패션 매장 앞에 줄을 서는 것과 맛집 앞에 줄을서는 것은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경기도 분당 쉐이크쉑 4호점을 찾은 방문객이 줄을 서 있는 모습. [중앙포토]

패션 매장 앞에 줄을 서는 것과 맛집 앞에 줄을서는 것은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경기도 분당 쉐이크쉑 4호점을 찾은 방문객이 줄을 서 있는 모습. [중앙포토]

2016년 7월 강남역에 처음 문을 연 미국 수제버거 쉐이크쉑에 수많은 인파가 몰렸던 것도 이런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햄버거를 먹어 배를 채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남보다 먼저 먹어보고 싶은 욕망, 먹고 나서 사진을 찍어 SNS에 인증샷을 올려 자랑하고 싶은 욕망,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 브랜드가 뭔지 알고 그걸 경험까지 할 정도로 앞선 사람이야 라는 자의식이 더 크다는 얘기다. 기다림은 그 자체가 자랑거리이자 하나의 콘텐트가 된다.
김홍기 패션 큐레이터는 줄서기를 일종의 신호(signal)로 해석했다. 같은 줄을 선 사람에게는 같은 취향을 가졌다는 신호를, 줄밖의 사람들에게는 나는 이런 선호와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는 신호를 준다는 것이다. 김 큐레이터는 “맛집 앞에 줄을 서는 것과 패션 매장 앞에서 줄을 서는 것은 큰 맥락에서는 비슷하다”고 말한다. 그는 “긴 행렬은 같은 스타일을 추종하는 일종의 현대적 ‘부족’”이라며 “같은 것에 움직이고 같은 물건 보며 가슴 뛰는 사람들 사이에서 동질감 느낀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평했다. 삼계탕 집 앞에서 줄을 서든, 루이비통 매장 앞에서 줄을 서든, 같은 줄에 선 사람들은 모두 타인이지만 같은 신호를 발한다. 당신의 취향이 곧 나의 취향임을 암묵적으로 공감한다. 줄은 때로 취향 공동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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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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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