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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아래 여순사건 위령비 울먹이며 서 있느니 …

한창훈 작가는 거문도 관광의 백미인 백도로 가는 배에서 “고향이 있는 문학을 하자”고 말했다.

한창훈 작가는 거문도 관광의 백미인 백도로 가는 배에서 “고향이 있는 문학을 하자”고 말했다.

한창훈(54) 작가는 문단에서 뱃사람으로 통한다. 여수시 삼산면 거문도에서 태어나 일곱 살에 낚시를 시작하고 아홉 살에 잠수를 배운 이래 세상에 바다가 있는 이유를 찾아 소설을 써왔다. ‘대양 항해 프로젝트’로 컨테이너선을 타는가 하면, 동료 작가들을 고향 바닷가로 불러들여 짠물의 숭고함을 체험시킨다.
 

작가들 여수·거문도 문화역사 탐방
거문도 출신 한창훈 등 20여 명 참가
“죽을 때 바다 닮은 얼굴 되었으면”

“어린 시절엔 세상이 몇 이랑의 밭과 배 몇 척과 끝없는 바다로만 되어있는 줄 알았죠. 반백년 바라보다 보니 내가 죽을 때 바다를 닮은 얼굴이 되어 있다면 좋겠네요.”
 
정희성 시인, 이경자 소설가 등 작가 20여 명이 여수 일원으로 떠난 것도 그의 이런 속내 덕이었다. 여수시 관광과와 전남대 이순신 해양문화연구소가 기획한 문학인 초청 ‘역사문화탐방’은 여수와 거문도 일대를 돌아본 작가들이 쓸 작품에 바다의 추억과 인상이 배어들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마련됐다. 한 작가와 뜻을 맞춘 장경호 관광과 팀장은 “노래 ‘여수 밤바다’가 400억원 관광산업 효과를 낳는 걸 보면서 문화에 스며든 지역 자원의 활용 방안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첫날, 여수에 내리자마자 이경자 작가는 “아, 바다 냄새, 바람” 감탄사를 토하며 발걸음을 빨리했다. 점심을 먹은 음식점 벽에 붙은 표어는 역시 미식의 고장다웠다. ‘오늘 먹고 치워버리자!’
 
답사는 이순신 장군의 발자취를 좇아 전라좌수영과 진남관(鎭南館)에서 시작했다. 시내 곳곳에 선 대형 거북선 조형물과 이순신 동상은 이 땅이 임진·정유재란을 승리로 이끈 수군의 중심 기지였음을 요란하게 선전하고 있었다.
 
김진수 시인이 안내를 맡은 ‘여순사건 위령비’는 끝나지 않은 시대의 비극을 묵묵히 증언해 참가자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 주둔 국방경비대 소속 일부 군인은 제주 4·3 사건의 진압출동을 거부하며 무장봉기했는데 이들의 학살 현장은 최근까지 ‘희생’이란 단어로 얼버무려지며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다. 부친을 따라 여수에서 살았던 정희성 시인은 근처 여수중앙국민학교를 다니면서도 이 사실을 몰랐는데 “김진수 시인의 시 ‘좌광우도’를 읽고 나도 ‘백비(白碑)’란 시로 억울한 영혼들의 넋을 달랬다”며 시를 읊었다. “암울한 현대사 굴속 같은 마래터널/ 왼편으로 왼편으로 몰아세운 절벽 아래/ 여순사건 위령비 하나 울먹이며 서 있느니(…).”
 
반질반질 장판 바닥 같다 해서 ‘장판 바다’다. 이튿날, 답사단을 태우고 여수를 떠난 ‘조국호’는 쾌청한 날씨 덕에 미끄러지듯 2시간여를 달려 거문도에 닿았다. 바닷가에 얻은 월세 10만원 집에서 홀로 바다를 명상하며 외로웠던 한창훈 작가는 신이 나서 맛집으로 일행을 이끌며 소주 한 잔을 권했다. “술은 바닷물과 더불어 가장 가깝게 지낸 액체이며 무언가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지요.”
 
거문도 관광의 백미는 신이 내린 최고의 선물이라는 ‘백도(白島)다. 상백도와 하백도를 찾아 전설이 굽이굽이 서린 바위섬을 눈으로 영접한다. 거문도 동쪽으로 한 시간 남짓 배를 달리니 서방 바위, 석불 바위 등 기암괴석이 저마다 우뚝하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바람과 물에 부대꼈을까, 그 인고의 시간이 선사한 미감이 눈을 시리게 한다. 뱃머리에 서 찬찬히 바다를 바라보던 한 작가는 “고향이 있는 문학을 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여수=글·사진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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