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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에 덕혜옹주 다닌 유치원이 있다고?

덕수궁 덕흥전에 설치된 임수식 작가의 ‘책가도389’.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덕흥전에 설치된 임수식 작가의 ‘책가도389’.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과 현대미술, 아니 대한제국과 현대미술이 만났다. 국내 작가 9명이 대한제국(1897~1910)의 자취를 새롭게 해석하고 조명한 작품들이 덕수궁 곳곳에 설치됐다. 국립현대미술관과 문화재청 덕수궁관리소가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전시 ‘덕수궁 야외프로젝트:빛·소리·풍경’이다. 비운의 역사만 아니라 근대화의 여명으로 대한제국을 조명하는 시각이 두드러진다.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 기념전
한국 역사 사각지대 새롭게 조명
국내작가 9명 작품 덕수궁에 설치
고종·덕혜옹주 모습 변주한 사진
당시 서적·외교문서 모은 서재도

왼쪽부터 고종, 귀비 엄씨, 덕혜옹주. [중앙포토]

왼쪽부터 고종, 귀비 엄씨, 덕혜옹주. [중앙포토]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황제는 단연 이번 전시의 주인공감이다. 정연두 작가는 고종황제와 어린 딸 덕혜옹주를 다면적으로 조명하는 사진작품 ‘프리즘 효과’를 석조전 복도각에 선보인다.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덕수궁 석조전 테라스에 선 모습을 각기 다른 방향, 다른 시각에서 찍은 대형 사진 네 점이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내걸렸다. 같은 인물, 같은 차림에도 사진마다 분위기가 다른 것이 흥미롭다. 작가가 석조전 사방에 있던 건축과 그 상징성을 염두에 둔 결과다. 북쪽은 영국·미국·러시아 등 열강의 공관, 서쪽은 을사늑약이 체결된 중명전, 남쪽은 대한제국 최고재판소(평리원,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자리)가 있던 곳이다. 이를 바탕으로 각 사진은 두 사람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 침략자의 시선, 공적인 시선을 의도했다. 여느 아버지와 딸처럼 이들을 조명하는 사적인 시선도 있다. 준명당, 즉 고종이 덕혜옹주를 위해 궁궐 안에 만든 유치원이 있던 동쪽이다.
 
정연두 작가의 ‘프리즘 효과’.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정연두 작가의 ‘프리즘 효과’.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사진 중 한 점에선 부녀의 등 뒤로 현대의 관람객들이 등장한다. 사진 스스로 실제가 아닌 재연임을 드러내는 동시에 같은 자리에서 100여 년 전 과거를 현재와 나란히 불러내는 순간이다. 촬영과정에 대해 정연두 작가는 “고종과 덕혜옹주의 사진을 바탕으로 닮은 인물을 수소문했다”며 “의상은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 옷공방이 당시의 실제 사료를 연구해 복원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고종과 대한제국에 대해 한층 풍부하고 다양한 접근의 가능성을 제기했다. “대한제국은 한국 역사의 블라인드 스팟(사각지대)”이라며 “국권을 잃은 자랑스럽지 못한 역사인 동시에 일찌감치 전기, 전차 등을 놓으며 근대국가로 발전하기 위해 발돋움한 시기”라고 지적했다.
 
근대화에 대한 주목은 석어당에 설치된 권민호 작가의 드로잉 작품 ‘시작점의 풍경’에서 한층 뚜렷해진다. 석어당의 정면 윤곽을 그린 안쪽에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풍경까지 다채롭게 그려 넣었다. 1899년 노량진과 제물포를 연결한 국내 최초의 철도 위를 달린 증기기관차 모갈 1호와 지금의 KTX가 나란히 등장하는 식이다. 중화전 앞 행각에 설치된 ‘온돌야화’는 근대의 풍경을 더욱 다채롭게 보여준다. 100여 년 전 촬영된 수많은 원판 사진을 인물의 표정과 새로운 문물이 부각되도록 확대하거나 잘라 새로 만든 슬라이드 영상이다. 미술가 장민승과 음악가 양방언의 공동작품이다.
이진준 작가의 ‘어디에나 있는 하지만 어디에도 없는 시리즈-불면증 & 불꽃놀이’.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진준 작가의 ‘어디에나 있는 하지만 어디에도 없는 시리즈-불면증 & 불꽃놀이’.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고종이 알현실로 썼던 덕홍전은 가상의 서재로 꾸며졌다. 이곳에 강애란 작가는 고종이 즐겨 읽던 서적과 외교문서, 조선왕조에 대한 사료들을 빛을 발하는 책의 형태로 만들어 서가에 배치했다. 그 맞은편에는 임수식 작가의 ‘책가도389’가 자리했다. 근대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책꽂이를 찍은 실제 사진을 병풍처럼 연결한 작품이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고종의 침전이자 1907년 그가 승하한 곳인 함녕전에서는 영상과 함께 폭죽 소리가 흘러나온다. 실제 불꽂축제에서 채집한 사운드이지만 환희의 축포 같은 느낌과 전쟁의 포화 같은 느낌이 혼재하는 이진준 작가의 작품이다.
 
이번 전시는 2012년의 ‘덕수궁 프로젝트’에 이어 고궁의 역사성과 현대미술의 조형성이 만난 두 번째 시도다. 대한제국이라는 한층 예각화된 모티브가 돋보인다. 대한제국의 짧은 역사가 덕수궁의 오랜 역사에서 가장 강렬했던 시기란 점에서 무대를 제대로 찾은 셈이다. 함녕전 앞 행각, 석조전 복도각 등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 곳까지 작품을 설치해 관람객을 맞는다. 밤이면 조명과 함께 더욱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다. 덕수궁이 휴관하는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후 8시까지 입장, 9시까지 관람이 가능하다. 11월 26일까지.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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