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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 7000년 전 ‘바위 속 고래’의 SOS “물에서 나 좀 구해 주세요”

지난 6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들이 반구대 암각화를 찾아 주변 환경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울산시]

지난 6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들이 반구대 암각화를 찾아 주변 환경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울산시]

나는 누구일까요. 4년 전 울산 명촌초등학교 6학년생이던 이래규 군은 나를 ‘조상들의 숙제’라고 불렀답니다. 네, 나는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991번지에 있는 ‘바위 그림’ 암각화(岩刻畵)입니다. 내 발밑으로 흐르는 대곡천을 따라가다 보면 거북이가 엎드린 형상을 한 바위산 반구대(盤龜臺)가 나오는데 이 지명을 따 내 이름이 ‘반구대 암각화’가 됐습니다.
 
내가 태어난 것은 무려 6000~7000년 전인 신석기시대 후기입니다. 이 시대 고래를 잡고 사냥하던 선사시대 사람들이 오랜 기간 날카로운 도구로 선을 새기고 바위를 쪼거나 긁어 나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세상에 소개된 것은 한참 뒤인 1971년 12월 25일입니다.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팀이 1970년 불교 유적을 탐사하러 왔다가 바위에 추상적인 문양과 신라 시대 그림과 글자가 새겨진 천전리 각석(국보 147호)을 발견했죠. 그때 ‘바위에 호랑이 그림이 있다’는 마을 사람들의 말을 듣고 1년 뒤 나를 발굴하게 됐습니다. 문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암각화인 데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잡이 유적으로 세계적 수준을 자랑한다”고 나를 극찬했습니다.
물에 잠긴 반구대 암각화. 수십 년 동안 침수와 노출을 반복하면서 훼손됐다.[사진 울산시]

물에 잠긴 반구대 암각화. 수십 년 동안 침수와 노출을 반복하면서 훼손됐다.[사진 울산시]

 
바위산 절벽에서 가로 10m, 세로 4m 크기의 칠판처럼 평평한 곳에 내가 있습니다. 고래·거북 같은 바다 동물, 사슴·멧돼지·호랑이 같은 육지 동물뿐 아니라 사람·배·작살·그물과 고래 잡는 모습 등 300여 점의 그림을 볼 수 있어요. 지구촌 각지에 많은 암각화가 있지만 나처럼 동물 종을 구분할 만큼 상세하게 표현된 곳은 드물다고 합니다.
 
일반인들은 80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세워진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만 나를 볼 수 있어요. 처음 나를 보면 ‘저게 뭔가’ 싶을 겁니다. 하지만 이형진 문화관광해설사는 “보면 볼수록 새로운 의미를 깨닫는다”고 말합니다. 가령 고래잡이 그림을 보면 우리 조상이 협동심을 바탕으로 공동체사회를 이루고 살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고래잡이 도구를 만들 수 있는 지능과 고래잡이 배를 건조할 기술이 있었다는 것도요.
 
반구대 암각화 전망대는 하루 100~400명이 찾는 울산의 명소입니다. 부산·경기·강원 등 전국 각지는 물론 외국에서도 나를 보러 관광객이 온답니다. 9월에는 오후 3시 30분~4시에 나를 가장 잘 볼 수 있어요.
고래 무리. 바위에 새겨진그림 300여 점 중 58점이 고래다.[사진 암각화박물관]

고래 무리. 바위에 새겨진그림 300여 점 중 58점이 고래다.[사진 암각화박물관]

 
1995년 국보 285호로 지정되면서 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2010년에는 천전리 각석, 주변 공룡 발자국을 합쳐 ‘대곡천 암각화군’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에도 올랐습니다. 하지만 보존·관리에 문제가 있어 정식 등재 신청이 어렵다고 해요.
 
나는 수십년 전부터 비가 많이 오면 물에 잠기는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대곡천에 있는 사연댐에 물이 가득 차면 60m 높이인데 나는 해발 53m에 있기 때문에 저수량에 따라 1년 중 길게는 8개월 정도 물에 잠겨 있었어요. 2014년 임시 물막이 건설을 시도하면서 사연댐 수위를 48m로 낮춰 침수 횟수가 이전보다 줄었지만 여전히 폭우가 오면 속수무책입니다. 지난해에도 태풍 ‘차바’ 때문에 한 달 정도 물 속에 있어야 했어요. 침수와 노출이 반복되면 풍화작용이 빠르게 진행돼 내 모습이 점점 사라지게 됩니다.
 
호랑이와 표범등 다양한 육지 동물 그림도 있다.[사진 반구대포럼]

호랑이와 표범등 다양한 육지 동물 그림도 있다.[사진 반구대포럼]

나를 보존하기 위해 울산시와 문화재청 등 많은 기관이 머리를 맞대고 있지만 17년째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어요. 보존 대책은 크게 댐 수위를 낮춰 물에 안 잠기게 하거나 물이 못 들어오는 장치를 하는 방법으로 나뉩니다. 구체적으로 임시 물막이 건설, 사연댐 수문 설치, 소규모 댐 신설 등 여러 방안이 논의됐지만 모두 무산됐습니다.
 
올해 울산시가 내 앞에 길이 357m, 높이 15m의 생태제방을 건설해 물 유입을 막겠다는 새로운 안을 내놨어요. 하지만 지난 7월 20일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가 나와 주변 환경이 훼손된다는 이유로 이를 부결하면서 울산시도 손을 놓은 상태입니다.
 
멧돼지 새끼.[사진 반구대포럼]

멧돼지 새끼.[사진 반구대포럼]

내 주변 물 높이를 조절하는 것은 울산시민의 생활용수 공급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기 더 어렵습니다. 댐 수위를 내 키보다 낮은 52m로 유지하면 유효저수량이 34%에 불과해 댐 기능을 못한다고 합니다. 현재도 낙동강에서 부족한 물을 끌어오고 있어요.
 
문화재청은 사연댐에 수문을 설치해 수위를 낮추고 나를 가능한 한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울산시는 물 부족 문제를 다른 지자체와 함께 해결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호소합니다. 정부 차원에서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지난 달 30일 송철호 전 국민고충처리위원장은 울산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울산이 경북 운문댐, 경북 영천댐, 경남 밀양댐 등 인근 댐의 물을 쓸 수 있게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이렇듯 나를 지키는 문제는 물 문제와 맞물려 울산의 가장 중요한 현안 중 하나가 됐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더 이상 물에 잠기지 않고 오랫동안 이 땅의 많은 후손과 만나는 것입니다. 내 주변에는 집청정·반구서원·공룡발자국·암각화박물관 등 많은 문화유산이 있습니다. 세계 수준의 암각화라는 나, 어떻게 해야할까요?
 
울산=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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