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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강제입원 결정, 환자 의향 들어야"…정신장애인 복지 선진국 호주 들여다보니

 지금부터 11년 전인 2006년 1월. 제프 갤럽 서호주 총리가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밝히며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갤럽 총리는 “우울증은 치유할 수 있는 질병이다. 치료가 얼마나 걸릴지 확신할 수 없어 사임을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그의 결정은 “용기있는 행동”이라며 박수를 받았다. 정신장애를 숨기지 않고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자세를 사회지도층이 몸소 보여줬기 때문이다.
 
 우울증은 단번에 호주 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다. ‘정신장애는 누구나 앓을 수 있는 질병’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나'의 가족·이웃도 정신병원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은 정신장애인 인권 존중으로 이어졌다. 환자를 존중하고 사회통합의 대상으로 보는 사회문화가 퍼졌다. 
 
 중앙일보는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주에서 정신장애인 복지정책을 집행하는 전문가 세 명을 29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뉴사우스웨일스 주 정신장애인 강제입원 결정기구인 ‘정신건강심의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아니나 존슨 판사, 뉴사우스웨일스 민사행정법원 부원장 말콤 쉬벤 판사, 정신과 전문의 섀런 로이튼스다. 이들은 보건복지부가 지난 28~29일 서울 광진구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주최한 ‘정신장애인의 사회통합을 위한 국제포럼’ 참석차 방한했다. 
29일 '정신장애인의 사회통합을 위한 국제포럼'을 마치고 인터뷰에 응한 섀런 로이튼스 정신과 전문의, 말콤 쉬벤 판사, 아니나 존슨 판사가 밝게 인사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29일 '정신장애인의 사회통합을 위한 국제포럼'을 마치고 인터뷰에 응한 섀런 로이튼스 정신과 전문의, 말콤 쉬벤 판사, 아니나 존슨 판사가 밝게 인사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한국에서 강제입원을 되도록 줄이기 위해 요건을 보다 엄격하는 방향으로 정신건강복지법을 개정한 것에 대해 존슨 판사는 “한국과 뉴사우스웨일스 법은 강제입원 요건을 법으로 정했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유사하다”고 말했다. 다만 이들 전문가 설명에 따르면 이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의 핵심이다. 두 법의 가장 큰 차이는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의사를 반영하는가’에 있었다.
한국인 4명 중 1명은 평생에 걸쳐 정신질환에 해당하는 증상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정신병원을 찾는 비율은 13%에 그쳤다. 정신장애를 바라보는 낙인적인 시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정신장애인들의 사회통합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중앙포토]

한국인 4명 중 1명은 평생에 걸쳐 정신질환에 해당하는 증상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정신병원을 찾는 비율은 13%에 그쳤다. 정신장애를 바라보는 낙인적인 시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정신장애인들의 사회통합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중앙포토]

 한국의 경우 개정법에선 정신장애인을 강제입원 시키려면 보호자 2명의 동의, 그리고 정신과 전문의 2명의 일치된 진단이 있어야 한다. 1개월 안에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의 심사를 받는 절차가 내년 추가된다. 위원회는 의료기관에 설치되며 구성원은 전문의, 법조인, 환자단체 관계자 등이다. 심사는 서면으로 진행한다.
 
 반면 호주의 강제입원 심사는 사법기관 산하의 정신건강심의위원회(Mental Health Review Tribunal)에서 이뤄진다. 의사 진단 후 14일 이내에 심리를 거쳐야 한다. 위원회는 법률 전문가, 정신과 전문의, 정신과적 질환을 직접 겪었거나 주변에 겪은 사람이 있는 지역사회 대표로 구성된다. 세 명이 똑같은 권한을 가지고 결정에 임한다. 정신장애인 당사자도 심리에 참여해야 한다. 존슨 판사는 “절반 정도는 환자가 직접 출석하고 어려울 경우 영상통화나 전화통화를 통한다. 환자의 이해를 위해 법률·의학용어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제철웅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의 입원적합성심사에서는 의료인 면담 기록 외에 환자가 의사를 표현할 기회가 없다”며 “당사자를 납득시키기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호주에서 환자의 입장을 충분히 듣고 입원 필요성을 이해시키려는 노력은 중요하다고 한다. 추후 자의입원 전환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존슨 판사는 “명령 기간 중에도 자발적 입원이 가능할지 환자를 지속적으로 살펴본다”고 말했다. ‘환자 스스로 동의한’ 치료를 받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호주의 강제입원 비율은 30%를 밑돈다. 자의입원을 포함한 평균 입원기간은 2~3주 정도다.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전까지 한국은 정신장애인의 70%가 강제입원해 평균 197일간 병원에 머물렀다. 
이들은 호주 사회가 정신장애인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이들은 호주 사회가 정신장애인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세 사람은 “정신장애인의 의사결정능력 존중은 세계적인 추세”라고 입을 모았다. 호주는 2010년대에 들어 정신장애인의 의사결정을 타인이 ‘대체’하지 않고 ‘지원’하는 모델을 추구하고 있다. 2008년 비준한 UN장애인권리협약을 따른 것이다. 협약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법률행위능력을 인정받을 권리를 명시한다.
 
 호주에서 정신장애인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대표적 제도는 지난해 7월 시행된 국가장애인보험제도(NDIS·National Disabillity Insurance Scheme)다. 발달·신체·지적장애인뿐 아니라 정신장애인도 수혜자다. 쉬벤 판사는 “이전에는 정부 제공 프로그램 중에서 장애인이 선택하는 방식이었지만 NDIS는 금액 범위 안에서 수혜자가 원하는 것을 제안하면 정부가 지불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고도의 ‘맞춤형 복지’다.
 
 쉬벤 판사는 다운증후군으로 지적장애를 가진 남동생(38)의 이야기를 꺼냈다. 늘 ‘요트를 타고 싶다’고 말하던 남동생은 NDIS 덕분에 주 1회 바다에 나가서 배를 탄다. 부모님과 함께 살며 직업훈련도 받고 연극·승마·봉사 등 여러 활동에 참여한다. 쉬벤 판사는 ”NDIS를 통해 정신장애인도 주도적이고 온전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NDIS의 재정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도입 당시 40~50억 달러(3조6000억~4조5000억원)가 필요해 세금을 0.5% 인상했다. 증세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0% 이상이 찬성했다. 호주 사회가 이 제도에 특별히 자부심을 갖는 이유다.
 
 NDIS 외에도 호주에서 정신장애인을 위한 모든 제도와 시설은 중앙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다. 지역사회 내 정신건강 전담팀이 정기적으로 환자를 방문한다. 공공주택을 제공하고 정신장애인을 채용하는 고용주에 보조금을 주는 등 자립 지원도 탄탄하다. 한국은 지역사회 인프라 운영비용을 지자체가 전적으로 부담한다. 이 때문에 정신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주거 시설 등이 턱없이 부족하다. 자연스럽게 입원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한국도 세계적인 흐름에 맞춰 정신장애인의 강제입원을 줄이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일각에선 자칫 정신장애인이 퇴원해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까 불안하게 보고 있다. 로이튼스 박사는 “정신장애인은 범죄의 가해자이기보다 피해자인 경우가 훨씬 더 많다”며 “병원이 아닌 사회에 머물며 회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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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슨 판사는 “영국·미국·호주 모두 지역사회 지원체계가 미흡한 과도기에는 노숙자 증가, 범죄 등 시행착오를 겪었다. 한국은 우리가 먼저 저지른 실수들을 피해갈 수 있는 유리한 입장”이라고 조언했다. 쉬벤 판사는 “혁신성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며 “시간이 걸리겠지만 계속 배워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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