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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 정석] "직접 모신 대통령만 4분" 나는 염장이 유재철입니다

"당신은 왜 일하십니까?"
뻔한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열에 여덟아홉은 "그야 물론 돈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는 밥벌이 때문에 일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곳곳에서 일하고 있는 이웃들을 찾아가 직접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구두닦이·사육사·버스기사…. 평범한 우리 이웃 14명의 입을 통해 우리가 진짜 일하는 이유를 들어봤습니다. '직업의 정석: 당신은 왜 일하는가' 여덟번 째 주인공은 대통령 염장이 유재철 씨입니다. / 특별취재팀

 

전 대통령 4명 장례를 맞았던 염장이 유재철 원장. 유 원장은 "새벽 4시면 일어나서 고인들을 위한 기도를 한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전 대통령 4명 장례를 맞았던 염장이 유재철 원장. 유 원장은 "새벽 4시면 일어나서 고인들을 위한 기도를 한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사람이 죽으면 장례(葬禮)를 지낸다. 장례 절차 중 시신을 씻겨 수의를 입히는 일을 염습(殮襲)이라고 한다. 염장이는 염습을 하는 직업이다. 사람에게 ‘세상 마지막 목욕’을 시키는 사람, 그렇게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사람이 염장이다.  
 
염장이는 산 사람과의 약속을 잘 잡지 않는다. 사람이 죽으면 언제든 달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과의 약속이 훨씬 더 중요한 직업, 염장이로 24년을 살아온 유재철(58ㆍ장례문화원 원장) 씨와 어렵게 약속을 잡아 만났다.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누하동에서다. 유 씨는 상복 차림이었다. 새하얀 와이셔츠에 검은색 넥타이를 맸다. 몸에선 옅은 향내가 났다.  
 
 
대통령 염장이
    
유재철 원장은 흔히 ‘대통령 염장이’로 불린다. 최규하(2006년)ㆍ노무현(2009년)ㆍ김영삼(2015년) 전 대통령을 직접 염습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2009년)도 염습은 세브란스병원에서 했지만, 국장 식 진행은 유 원장이 맡았다. 그는 “염장이가 아니었으면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 세분 손을 잡아보고 얼굴을 만져보고 했겠냐”며 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큰 분들 장례식이 의미가 있는 건 잘못된 예(禮)를 바로 세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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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모습.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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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국회의사장에 마련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은 이명박 전 대통령 내외가 고인의 명복을 빌고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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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김영삼 전 대통령 영결식을 찾은 정의화 전 국회의장 등이 고인의 영전에 꽃을 바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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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하 전 대통령의 국민장 모습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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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위엔 잘못 알려진 장례 예절이 꽤 많다. 가령 상주가 왼팔에 검은 완장을 차는 것은 일제시대의 흔적이다. 대통령 장례식 때 의장대가 흰색 마스크를 쓰는 것도 장례 기간 시신이 부패되는 걸 막기 어려웠던 시절 관행이다. 영정에 검은 띠를 두르는 것은 예법상 근거가 없다. 유원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 장례식 때 상주 완장, 의장대 마스크를 없앴다.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때 영정 띠가 사라진 것도 그의 조언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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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장은 대통령 뿐 아니라 법정 스님의 다비(불교식 장례), 이맹희 CJ 명예회장 그룹장 등도 주관하고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 장례에 참여했다. 유명인사가 사망하면 상조 회사들은 난리가 난다. 서로 장례를 맡겠다고 상주 측에 수억 원 장례를 무료로 해주겠다고 한다. 유명인의 장례를 주관했다는 사실 자체로 광고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원장은 대통령 염을 했다는 이유로 몇 년간 인터뷰에도 잘 응하지 않았다.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이나 유명한 사람이나 장례에는 차이가 없어요. 중요한 건 배경이 아니라 고인이니까. 고인을 생전 모습처럼 모시면 그걸로 충분해요. 정성껏 고인을 생각하며 염을 하는 게 내 일이예요.

 
법정스님 다비식을 진행하고 있는 유재철 장례문화원장. [사진 장례문화원]

법정스님 다비식을 진행하고 있는 유재철 장례문화원장. [사진 장례문화원]

 
밥벌이로 시작한 염

 
유원장은 1994년 처음 염습을 배웠다. 36살 때였다.  
 
이 전에는 아파트 새시ㆍ방화문 제작, 의류업 등 여러 사업을 했다. 부모님 돈까지 빌려 한 사업이었지만 손대는 족족 모두 망했다. 억단위의 돈을 까먹은 뒤 석달간 방에서 두문불출 폐인처럼 살았다. 어머니는 아들이 걱정돼 집 근처 절을 찾아 치성을 드렸다. 유원장도 마음을 다스리려고 어머니를 따라 절에 다니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절 청년모임에서 또래 친구들을 만났다. 그들은 광주에서 장례 사업을 했다. 상주에게 바가지를 씌우기 일쑤인 동네 장의사들의 악습을 깨서 사업 시작 3년만에 5억원을 모았다고 했다. 장례일이 ‘돈이 되는 사업’이란 생각이 들었다.  
 
무더웠던 그해 8월. 유원장은 광주로 찾아가 친구들에게 “장례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아내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무작정 찾아간 길이었다. 친구들은 곧바로 그를 장례식장으로 데려가 한 할머니 염을 시켰다. 유원장은 묵묵히 시키는대로 시신의 손ㆍ팔ㆍ다리를 닦았다. 그날부터 4박 5일 동안 매일 다른 장례식에 따라가 염을 했다. 지켜 보던 친구들은 그가 서울로 돌아가는 날이 되자 “대단하다”고 칭찬했다. “그동안 돈 보고 찾아온 사람이 많았지만, 모두 한 두번 하다가 도망을 갔다”고 했다.
 
유 원장은 “그때는 현실적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번 기술을 배우면 누구에게 뺏기지 않고 정년도 없지 않냐.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 밥벌이는 걱정없겠다 싶었다.” 업에 대한 거부감도 남들보다 적었다. 유원장네 집안은 경기도 광주 하남시에서 400년을 살았다. 집안 할머니, 친척들 장례를 다 가족장으로 치러, 어릴적부터 시신을 여러 번 봤기 때문이다.  
 
물론 반대가 없었던 건 아니다. 주변에서는 “장의사 해서 딸내미 시집이나 보내겠냐”며 말렸다. 하지만 유 원장은 고집이 있었다. 그는 광주에 다녀온 뒤 친인척은 물론 안면있는 사람들 장례식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찾아다녔다. 유족도 아닌데 염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발인에 매장까지 함께 했다.  
 
염장이의 일
장례는 속굉→수시→초혼→사자상→염습→반함→입관의 순서로 진행된다. 
 
'속굉'은 사람이 숨을 거두면 정말 숨이 끊어졌는지 확인하는 걸 말한다. 새 솜을 인중 사이에 얹어 숨을 확인한다. 이어 망자의 눈을 감기고 햇솜으로 입·코·귀 등을 막은 뒤 홑이불로 시신을 덮어 병풍 뒤에 모시는 걸 '수시'라 한다. 수시와 함께 '초혼(고복)' 의식이 행해지는데, 죽은 이를 못본 이가 죽은 이의 옷을 들고 집안 높은 곳으로 올라가 '복(復)'을 세번 외친다. 죽은 이를 불러 돌이키기 위한 의식이다.
 
네이버웹툰 '신과함께'에 등장하는 저승 삼차사. 왼쪽부터 일직차사, 강림차사(도령),월직차사. 저승삼차사 중 월직차사. 월직공행사자는 죽을 때가 된 사람을 데려오는 저승차사로 땅의 일을 맡고 있다. 지황차사이다.파란 말을 끄는 일직차사는 하늘의 심부름을 하는 천황차사로 불린다.[사진 네이버]

네이버웹툰 '신과함께'에 등장하는 저승 삼차사. 왼쪽부터 일직차사, 강림차사(도령),월직차사. 저승삼차사 중 월직차사. 월직공행사자는 죽을 때가 된 사람을 데려오는 저승차사로 땅의 일을 맡고 있다. 지황차사이다.파란 말을 끄는 일직차사는 하늘의 심부름을 하는 천황차사로 불린다.[사진 네이버]

 

이후 저승사자(강림차사·일직사자·월직사자)를 위한 '사자상'이 차려진다. 저승사자를 잘 대접해 고인의 저승길이 편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상에는 사잣밥과 술·짚신·돈을 놓고, 반찬은 간장이나 된장만 차린다. 전라도에서는 사잣밥에 소금을 뿌리기도 한다. 밥이 짜니 물을 마시며 천천히 가라는 의미다. 저승길을 재촉하지 말라고 짚신 뒤축을 잘라 놓기도 한다. 
 
시신을 모시고 나면 초상 준비가 시작된다. 관과 수의·상복을 준비하고 장례 일정을 잡은 후 부고를 낸다. 임종 이튿날에는 고인의 몸을 씻기고 수의를 입히는 '염습'을 한다. 염은 주검이 모셔진 병풍 뒤에서 한다. 몸을 씻는 물은 향나무를 쪼개어 삶은 물이나 쑥 삶은 물 혹은 쌀뜨물을 쓴다. 몸을 씻기고 나면 수의(습의)를 입힌다. 마지막 수의를 여미기 전에는 죽은 이의 입에 쌀이나 동전을 넣는 '반함'을 한다.  저승길 노잣돈으로 삼으라는 의미다. '반함' 후에는 멱목(얼굴을 싸매는 헝겊)을 씌워 죽은이를 위한 단장을 마친다.    
영덕사 보문스님 다비식에 쓰인 사자상. [사진 장례문화원]

영덕사 보문스님 다비식에 쓰인 사자상. [사진 장례문화원]

 
'염습'을 마치면 주검은 관에 들어간다. 관에는 고깔을 넣는데, 저승문 열두 개를 지날 때 저승사자들에게 줄 선물이다. 고인이 관에 들어갈 때 가족들은 곡을 한다. 죽음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표시이자 죽음을 받아들이는 의식이다.  
 
'입관' 방법은 관을 그대로 매장하는 관장과 관을 빼고 주검만 묻는 탈관이 있다. 입관에서 중요한 건 보공이다. 주검과 관 사이 틈에다 죽은이가 입던 옷가지나 짚을 채워 넣는 일로 관을 옮길 때 주검이 움직이는 것을 막기 위한 일이다. 염장이의 일은 입관에서 끝난다. 이후는 장례를 치르는 건 상주와 가족의 몫이다  
 
고수를 찾아서
 
유 원장은 전국의 내노라하는 고수들을 사사(師事)했다. 이재철 당시 한국장례협회 사무국장이 다리를 놓아줬다. 당시 서울역 뒤에 있던 한국장례협회로 찾아가 무턱대고 장례 배우고 싶다고 우겼더니, 처음에는 “젊은 사람이 왜 이런 고되고 힘든일을 하려고 하냐”며 말렸다. “꼭 배워야 한다”며 붙잡고 늘어지자, “이름(재철)이 같아서 가르쳐 준다”며 안동ㆍ경주ㆍ부산의 누구누구를 찾아가 배우라고 알려줬다. 지역별로 전통장례 방법을 지켜온 명장들을 알려 준 거다. 
 
“덕분에 전국을 돌며 장례업의 고수들을 스승으로 모실 수 있었어요. 장의 뿐 아니라 풍수나 유학(儒學)에도 일가견이 있는 분들이었죠.” 
 
유 원장은 그들에게 막걸리를 대접해가며 기술과 업의 참의미를 배웠다. 그는 “30대 젊은이가 60~70대 어르신들을 찾아와 묵묵히 배우겠다고 하니, 이쁘게 봐주시고 마음을 내주신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스승이 “이제 그만하자”고 할 때까지 반복해가며 3년을 공부했다.  
 
절에서도 염 공부를 했다. 1996년 일붕 서경보 큰 스님 장례를 시작으로 수천명 이상이 참석하는 대형 다비를 여러 번 치루면서다.  
 
“산업화를 거치며 우리나라 장례 전통이 단절됐는데, 산(절)에는 그게 남아 있더라고요. 여러 스님들이 전해주는 전통을 하나 하나 배웠죠. 스님들은 늘 타인의 죽음 앞에서 성불을 빌어주잖아요. 형형한 눈으로 염하는 걸 지켜보는데 저절로 몸에 예의가 배더군요. 야단도 많이 맞아가며 염을 했어요”
 
배우기 시작하니 목이 말랐다. 동국대에 장례 석사과정 개설을 요청해 더 많은 상례를 공부했다. 결국 동방대학원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2002년엔 미국 텍사스 샌안토니오 장의대학으로 연수를 가서 시신약품처리보존기법(embalming)도 배워왔다. 그 때 배운 것들이 대통령 국장을 맡는 데 도움이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 국장 모습. 뒤쪽에서 떠나는 유해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유재철 원장이다. [중앙포토]

노무현 전 대통령 국장 모습. 뒤쪽에서 떠나는 유해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유재철 원장이다. [중앙포토]

 

버티기 힘든 업(業)  
 
유 원장은 염장이가 “버티기 쉽지 않은 업”이라고 말한다. 보통 사람이 피범벅이거나 절단된 시신, 화재에 불탄 시신을 보고 평정심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를 찾아와 막무가내로 “일을 배우겠다”고 했던 남자가 있었다. 온 몸에 문신을 한 다부진 인상의 사내였다. 하지만 일을 배우기 시작한 지 며칠이 안 돼 그만뒀다. “5살짜리 아들이 있는데, 4살배기 염을 하고 나니 아들이 눈에 밟혀서 도저히 못하겠다”며 떠났다.  
 
유 원장은 어떨까. 소방관처럼 직업적 스트레스로 인한 트라우마는 없을까. 그는 “내가 좋아 하는 일인데 뭐가 스트레스가 있겠냐”며 몇년 전 이장(移葬) 때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장을 하느라 무덤을 열었는데 시신의 머리가 없었다. 무덤 속에 물이 고이며 나무 뿌리가 뻗어나와 머리를 끌고 가버린 거였다. 뿌리를 손으로 파헤쳐 시신 머리를 찾았을 때 유 원장이 너무나 기뻐하자, 주변 사람들은 “천상 염장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대통령 염장이’라는 소문이 난 후, 유 원장을 찾아온 사람 가운데 지금까지 같이 일하는 사람은 단 한 명 뿐이다. 세 아이의 엄마이자 30대 후반인 이진선 씨다. 중국에서 중의학을 배운 이 씨는 “마지막 효도는 부모님을 보낼때 직접 염을 해 드리는 것이라고 들었다. 기왕이면 최고에게서 배우고 싶다”며 유 원장을 찾아와 5년 째 일을 하고 있다. 
 
대통령 염장이 유재철 원장은 "고인이 주인공이 되는 장례가 최고의 장례"라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대통령 염장이 유재철 원장은 "고인이 주인공이 되는 장례가 최고의 장례"라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염장이의 장례식
 
우리나라 최고 염장이는 본인의 장례식은 어떻게 치르고 싶을까. 유 원장은 “소박한 장례를 하고 싶다”고 답했다.  
 

허례를 벗고 고인이 주인공이 되는 장례가 내가 꿈꾸는 장례예요. 일본만 해도 만화가의 장례식에는 만화책이 가득하고 야구선수 장례식에는 야구배트를 가져다 놓는데, 우리 장례는 너무 획일화 되어 있습니다.

 
갈수록 장례의 의미가 퇴색돼 가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도 밝혔다. “예전에는 장례가 동네 잔치였어요. 죽음을 멀리하지 않고 우리 곁에 친근하게 여겼죠. 지금은 중간고사 있다고 손자가 할아버지 장례식에도 안 오는 게 현실이지만요.”  
 
그래도 유명인사 장례를 도맡는 최고의 염장인데 벌이는 어떨까. 유 원장에게 지나가는 말로 “돈 많이 벌었겠다”라는 묻자, 옆에 있던 부인 이종림(57)씨가 손사래를 쳤다. 유 원장은 “영가(죽은 사람)가 돈으로 보이면 이 일은 못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최대 상조회사에서 “VIP 담당으로 모시고 싶다”고 찾아온 적도 있지만 거절했다고 했다. 덧붙여 “만약 돈을 좀 벌면, 무연고자 시신을 염습해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뷰 도중 급히 그를 찾는 전화가 왔다. 또 누군가가 마지막 길을 간 것이다. 유 원장은 양해를 구하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염을 본 사람들은 ‘침묵 속에서 춤을 추는 것 같다’고 칭찬한다. 유 원장은 오늘도 산사람과 약속을 뿌리치고 죽은 사람을 위해 한바탕 춤을 추러 갔다.  
 
특별취재팀=김현예·정선언·정원엽 기자, 사진 우상조 기자, 디자인 김은교, 영상 조수진,개발 전기환·원나연 hykim@joongang.co.kr
유재철 원장은 인터뷰를 하던 날에도 죽은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염을 하러 떠났다. 우상조 기자

유재철 원장은 인터뷰를 하던 날에도 죽은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염을 하러 떠났다. 우상조 기자

 
나는 왜 일하는가
"제가 무슨색 속옷을 입었는지 아세요?" 
유재철 원장은 인터뷰 도중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그는 빨간 팬티를 입는다고 했다. "매일 검은색과 흰색 옷만 입으니까, 사방색(四方色) 중 붉은색이나 푸른색을 보완해 줘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만큼 염장이 일에는 중용(中庸)이 중요하다는 거였다. 
 

장례식장에 가서 내가 상주도 아닌데 울상을 짓고 있으면 안되요. 상주가 절차나 과정을 못 물어보거든요. 너무 밝아도 예의가 아니고, 너무 어두워도 예의가 아니에요. 사실 저는 제 맘대로 자라서 성격이 좀 괴팍한 편이예요. 하지만 일을 할 때 만큼은 너무 즐거워요.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는 건 죽음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

 
유 원장은 스스로를 염장이라고 부른다. '-장이'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은 '그것과 관련된 기술을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보통 대장장이·미장이·도배장이 처럼 특수한 직업을 가진 사람을 다소 낮춰 부르는 의미로 사용돼 왔다. 하지만 유 원장의 해석은 달랐다.
 

옛날 왕의 장례는 정승이 주관했어요. 저도 정승 못지 않은 자부심으로 일합니다. 하루하루 매순간이 쌓여서 내 인생, 내 삶이 되는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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