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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20주기 전날 다이애나 드레스 본뜬 '하얀 정원' 찾은 왕자들

 다이애나 전 영국 왕세자비의 사망 20주기를 하루 앞두고 아들인 윌리엄과 해리 왕자가 30일(현지시간) 런던에 조성된 추모 공원을 방문한다. 다이애나의 거처였던 켄싱턴 궁에는 그를 기억하는 시민들도 찾아와 꽃다발을 놓는 등 추모 물결이 일고 있다.
고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기리기 위해 거처였던 런던 켄싱턴궁 안에 조성된 하얀 정원.

고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기리기 위해 거처였던 런던 켄싱턴궁 안에 조성된 하얀 정원.

 윌리엄 왕세손과 미들턴 왕세손빈, 해리 왕자는 이날 켄싱턴 궁에 있는 ‘하얀 정원’(The White Garden)을 방문해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다이애나를 추모한다. 하얀 정원은 생전 다이애나의 우아함을 상징하기 위해 흰 장미와 물망초 등을 심어 여름철이면 온통 흰 꽃이 만발하도록 조성한 공원이다. BBC는 “다이애나가 생전에 즐겨 입던 디자이너 캐서린 워커의 흰 엘비스 드레스처럼 하얀 정원은 다이애나의 생애와 스타일,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소개했다.

다이애나 거처였던 런던 켄싱턴궁에 흰장미와 물망초로 조성
윌리엄, 미들턴 왕세손 내외와 해리 왕자 30일 추모 방문
켄싱턴궁 앞에 꽃다발, 사진, 케익까지 시민들도 추모 물결
사고 현장에 있던 의사와 소방관의 육성 증언도 잇따라 조명
"다이애나 숨 쉬고 눈 떠 살 줄 알았는데 병원서 숨져 경악"

다이애나가 생전 즐겨 입었던 캐서린 워커의 '엘비스' 흰색 드레스.

다이애나가 생전 즐겨 입었던 캐서린 워커의 '엘비스' 흰색 드레스.

 하얀 정원은 런던에서 네 번째로 조성된 다이애나 기념 장소다. 다른 기념 장소로는 켄싱턴공원의 다이애나 놀이터, 하이드파크의 다이애나 추모 분수, 세인트 제임스 궁의 다이애나 기념 길 등이 있다.
 윌리엄 왕세손 등은 그레이드오먼드스트리트 병원 등 다이애나가 후원했던 단체의 대표들과도 만난다. 
 다이애나가 1997년 8월 31일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숨질 당시 윌리엄 왕자는 15살, 해리 왕자는 12살이었다.
 31일 사망 20주기를 앞두고 켄싱턴 궁 앞에는 일반 시민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다이애나가 사망했을 당시 켄싱턴 궁 앞에는 추모 꽃다발이 물결을 이뤘다. 이번에도 시민들은 꽃다발이나 카드, 사진 등을 정문 앞에 놓거나 걸면서 그를 기리고 있다.
뉴캐슬에서 온 마리아 스콧은 사다리를 이용해 켄싱턴 궁 정문에 ‘다이애나는 영원히 우리 가슴 속에 있을 것'이라는 문구가 담긴 커다란 플래카드를 내걸기도 했다. 켄싱턴 궁을 매년 찾고 있다는 그는 “다이애나를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사고가 난 날 밤새 울었다"며 “마치 매우 가까운 사람을 잃은 것 같았고 다이애나는 우리에게 매우 특별한 존재였다"고 NBC에 말했다.
고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의 거처였던 런던 켄싱턴궁 앞에서 시민들이 추모의 뜻을 밝히고 있다. [AP]

고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의 거처였던 런던 켄싱턴궁 앞에서 시민들이 추모의 뜻을 밝히고 있다. [AP]

 영국 국기 복장을 한 존 로프리는 다이애나의 얼굴이 그려진 케익을 문 앞에 가져다 놓기도 했다. 그는 사망 20주기 전야에 추모 촛불을 밤새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방송과 신문, 매거진 등은 최근 수주동안 다이애나의 삶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영국 외에도 프랑스, 불가리아 등 동유럽 국가들에서도 관련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다이애나 관련 특별판을 발간한 프랑스 잡지 갈라의 편집장은 “다이애나는 뻣뻣하고 각박한 세상의 규칙을 깨는 사람의 이미지"라고 말했다.
1997년 다이애나가 사망했을 당시 켄신텅궁 앞은 추모 꽃다발로 물결을 이뤘다.

1997년 다이애나가 사망했을 당시 켄신텅궁 앞은 추모 꽃다발로 물결을 이뤘다.

 다이애나의 사고 현장에 있던 이들의 육성 증언도 다시 조명받고 있다.
 다이애나가 파리에서 교통사고를 당했을 당시 그에게 심폐소생술을 했던 소방관인 세이비어 그루메롱(50)은 “일그러진 승용차에서 다이애나를 끌어냈을 당시 의식이 있었고 눈을 뜨고 있었다"며 “심폐소생술을 하자 다시 숨을 쉬었기 때문에 다이애나가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고 더선이 보도했다. 그루메롱은 “하지만 병원으로 옮겨진 이후 의료진의 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소름이 끼쳤다"고 덧붙였다.
 응급의료 의사인 멜리에는 센강을 따라 운전하다가 다이애나가 탄 사고 차량을 발견했다. 그는 “차량 안에 있던 네 사람 중 두 명은 살아있었는데, 구급 차량을 부른 뒤 응급처지 도구 없이 맨 손만으로 구조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AP통신에 말했다. 그는 당시 심각한 부상을 당한 이가 다이애나인지 몰랐고, 추후 보도를 보고 알게 됐다고 한다.
멜리에는 “막 새 인생을 시작하려던 다이애나였기 때문에 비극적이고 불공평한 죽음이었다"며 “다이애나 사망 이후 주변 의사와 교수 등 전문가들에게 내가 당시 더 잘 처치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닌지 계속 물었다"고 되뇌었다. 그는 “운명을 믿지 않지만 영어를 하는 응급의사로서 내가 한 말이 아마 다이애나가 생애 마지막으로 들은 언어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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