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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년 전 명량대첩, 그 실체를 찾아라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 420주년을 맞아 진도 벽파항 주변 해저 유물을 발굴하고 있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조사팀. 동양 최초 수중발굴 전용선인 누리안호가 투입됐다. [사진 문화재청]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 420주년을 맞아 진도 벽파항 주변 해저 유물을 발굴하고 있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조사팀. 동양 최초 수중발굴 전용선인 누리안호가 투입됐다. [사진 문화재청]

그날은 운명의 날이었다. 1597년 9월 16일 이순신(1545∼98) 장군은 전남 진도와 해남 사이의 울돌목에서 역사에 남을 승리를 거뒀다. 배 13척(혹은 12척)으로 왜선 133척을 격파했다. 조선을 재침공한 일본(정유재란)의 기세를 꺾는 대사건이었다. 3년 전 전국 관객 1780만 명이란 대기록을 남긴 영화 ‘명량’에서 다룬 바로 그 명량대첩이다. 파죽지세로 조선을 점령했던 왜군은 이날 패전 이후 서서히 세력을 잃어갔다.
전남 진도와 해남 사이 명랑대첩 유적 발굴 현장 지도. [사진 문화재청]

전남 진도와 해남 사이 명랑대첩 유적 발굴 현장 지도. [사진 문화재청]

 

전남 진도 벽파진 일대 수역 발굴 조사
임진왜란 때 쓴 개인용화기 등 찾아내
동양 첫 수중발굴전용선 누리안호 투입

 하루 전날인 15일, 충무공은 진도 벽파진에 있던 조선 수군을 해남 우수영(右水營)으로 옮겼다. 조선의 적은 함대로는 대규모 왜군에 대적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울돌목의 강한 물살을 원군으로 삼았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나이다’라는 비장한 마음에서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를 독려했다.  
 
명량대첩 유적 발굴 현장에 투입된 누리안호(오른쪽)과 수중 유물 발굴 바지선. [사진 문화재청]

명량대첩 유적 발굴 현장에 투입된 누리안호(오른쪽)과 수중 유물 발굴 바지선. [사진 문화재청]

 지난 28일 벽파항을 찾았다. 목포에서 자동차로 채 1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인적 드문 여객선 매표소에 ‘추자 제주도’ 간판이 보인다. 현재 항로는 폐쇄됐지만 예전 해상교통의 중심지였던 벽파진의 이름값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선착장에서 모터보트로 갈아탔다. 북서쪽으로 약 500m 떨어진 거리에 배 한 척이 떠 있었다. 2013년 투입된 동양 최초의 수중발굴선 누리안호다. 그 옆에 발굴용 목제 바지선도 눈에 띄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이 사용한 개인 화기인 소소승자총통. 2012년 명량대첩 수역에서 건져 올렸다. [사진 문화재청]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이 사용한 개인 화기인 소소승자총통. 2012년 명량대첩 수역에서 건져 올렸다. [사진 문화재청]

 올해는 명량해전 420주년(7주갑, 1주갑은 60년)을 맞은 해. 5년 전부터 벽파진 인근 해저를 훑고 있는 발굴단 20여 명의 기대도 남달랐다. 현장책임자 노경정 팀장(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사)은 “현재 집중조사 구역(200×180m)의 15% 정도를 탐사했다. 조선 총통(銃筒·화포)이나 왜군 조총 등 결정적인 전쟁 유물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앞으로 이를 찾아낼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올해 명량대첩 수역에서 발굴한 고려시대 각종 청자 유물들. [사진 문화재청]

올해 명량대첩 수역에서 발굴한 고려시대 각종 청자 유물들. [사진 문화재청]

 
임진왜란 당시 배에 거치한 활에 들어간 노기. 화살을 발사하는 방아쇠 역할을 했다. [사진 문화재청]

임진왜란 당시 배에 거치한 활에 들어간 노기. 화살을 발사하는 방아쇠 역할을 했다. [사진 문화재청]

 이번 발굴 지역은 울돌목에서 남동쪽으로 4.3㎞ 지점에 있다. 바다에서 육지 방향으로 완만하게 들어간 만(灣) 형태다. 최대 시속 7노트(약 13㎞)에 이르는 울돌목과 달리 이곳 바다는 비교적 잔잔했지만 수중 가시거리가 30㎝ 안팎에 그쳐 발굴 작업은 매우 힘겨운 편이다. 명량대첩 유적 발굴은 2011년 청자베개를 비롯한 문화재 9점을 도굴하려던 범인들이 검거되면서 본격화됐다. 이곳 수역은 고려시대 수도 개경으로 올라가는 청자 등 남해 일대 주요 물품의 교역로였다. 정유재란 당시 왜군도 이곳을 거쳐 서해로 진입할 계획이었다.
 
 지난 5월 시작된 올해 발굴은 오는 10월 말 끝날 예정이다. 누리안호는 첨단시설을 완비했다. 해저 발굴에 최적화된 모양새다. 잠수부들에게 산소를 공급하는 고압공기저장탱크, 수중 발굴을 지휘하는 조사통제실, 바다 밑 진흙을 끌어 올리는 진공 제토(除土) 장치, 발견한 유물을 배로 들어 올리는 유압 인양 크레인 등을 갖췄다. 잠수부들은 초음파 카메라를 들고 해저 개펄에 숨어 있는 유물을 찾아낸다. 가깝게는 1m, 멀게는 20m까지 물체를 식별할 수 있다.
지난 28일 발굴한 닻돌(나무로 만든 닻을 물속에 가라앚기 위해 매다는 돌)을 누리안호 크레인으로 끌어 올리고 있다. [사진 문화재청]

지난 28일 발굴한 닻돌(나무로 만든 닻을 물속에 가라앚기 위해 매다는 돌)을 누리안호 크레인으로 끌어 올리고 있다. [사진 문화재청]

 
 바다 밑은 격자형으로 탐색한다. 사방 10 m 정사각형 모양으로 줄을 치고, 그 안을 1m 간격으로 좁혀 나간다. 장비는 첨단이지만 실제 작업은 사람의 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문환석 해양문화재연구소 수중발굴과장은 “수심이 평균 15m다. 유물들은 2m 깊이의 해저 개펄 아래에 있고, 또 눈에 거의 띄지 않기 때문에 일일이 더듬으며 찾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발견된 유물은 총 860여 점에 이른다. 접시·향로·대접 등 고려청자가 600여 점으로 가장 많다. 기린 모양 향로뚜껑 등 최상품도 포함됐다. 주로 12~13세기 강진에서 왕실·귀족들을 위해 만든 것이다. 임진왜란·정유재란 등 전쟁 관련 문화재로는 ‘소소승자총통(小小勝字銃筒) 석 점에 도드라진다. 길이 58㎝, 지름 3㎝의 개인용 화기로 기록에도 전하지 않는 최초의 유물이다. 포탄 대용으로 사용한 석환(石丸·돌포탄) 여섯 점과 전함에 고정된 활을 쏘는 데 쓴 노기(弩機·방아쇠) 두 점도 찾아냈다. 28일 오전에도 청자 조각 세 개와 1m 길이의 닻돌(목제 닻을 물속에 가라앉히기 위해 매단 돌)을 수습했다.  
 
 박정원 잠수부장은 “임진왜란 관련 유물이 출토된 만큼 작은 흔적이라도 당시 전함의 실체를 찾고 싶다. 해저 개펄이 일종의 밀봉 상태인 만큼 전망이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고경수 잠수안전주무관은 “충무공의 남해 일대 전승지를 탐색하는 ‘이순신 프로젝트’가 내년부터 5개년 계획으로 시작된다. 충무공 유물을 꼭 찾고 싶다”고 거들었다.
 
 당시 해전에 동원된 왜군의 배가 발견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의견도 나왔다. 문환석 과장은 “일본 전함은 한양까지 갈 요량으로 조선의 배보다 더 많은 장비를 실었기에 그대로 침몰할 수도 있었다”며 “조총 등 왜군 병기가 발견되면 명량해전의 실상이 보다 명확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진도=박정호 문화전문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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