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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시시각각] 1962년과 2018년

이훈범 논설위원

이훈범 논설위원

1962년은 한반도에서 역사적인 해였다. 남한에서 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시작됐고, 북한에선 4대 군사노선의 기치가 올랐다. 남북한의 목표가 극명하게 갈린 분기점이었던 것이다. 남한의 군사정권은 빈곤 해방으로 쿠데타의 합목적성을 증명하려 했고, 북한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정권은 중국·러시아의 도움 없는 무력통일에 전력을 기울였다. 다른 듯 같은 도전이었다. 성장을 견인할 재원이 없던 남한은 재벌에 몰아주는 불균형 성장을 선택했고, 북한 역시 ‘전 인민의 무장화’ ‘전국의 요새화’ ‘전군의 간부화’ ‘전군의 현대화’를 위해 민생의 희생을 당연시했다.
 

방향 옳은 경제정책 속도조절만
북핵 이대로 가면 대만 꼴 된다

내년, 2018년 또한 한반도 역사상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게 분명하다. 1962년으로부터 이어지는 물줄기다. 재래식 군비 확장에 한계를 느끼고 비대칭전력 확보에 올인한 북한은 내년이면 명실상부한 핵보유국의 반열에 오를 터다. 핵탄두 몇 개를 가진 차원이 아니라 이를 실어 나를 탄도미사일을 사거리별로 갖춘 ‘핵제국(核帝國)’이다. 1인당 국민총생산(GNP) 87달러의 최빈국을 국내총생산(GDP) 1조4000억 달러의 세계 11위 경제대국으로 끌어올린 ‘박정희의 기적’은 이제 그 후유증이 성장을 가로막을 정도로 위태로운 지경이 돼 버렸다. 외환위기 뒤처리에 정신없던 김대중 정권과 이상은 높았지만 현실을 몰랐던 노무현 정권에 비해 세련되고 자신감 있는 3기 진보정권은 위태로운 집도(執刀)를 더욱 서두를 것이다.
 
박정희 패러다임에 메스를 대는 건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의 사후에 오히려 더 악성이 된 까닭이다. 세계화·신자유주의와 어설프게 결합한 탓이다. 위에서만 고일 뿐 밑으론 흐르지 않는 분수는 실질소득 감소와 불평등 양극화를 가속시켰고, 대기업 횡포와 비정규직 양산을 불러왔으며, 저출산과 노년빈곤 같은 사회문제를 낳았고, ‘헬조선’ ‘흙수저’ 같은 소모적 논란을 야기했다.
 
다만 메스를 쥔 손이 너무 덤벼 불안하다. 반세기 넘게 쌓이고 꼬인 문제를 단칼에 해결할 보도(寶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문제들이 ‘고르디우스의 매듭’도 아니다. 차근차근 풀어야 할 문제 앞에서 어쭙잖게 알렉산더 흉내를 냈다간 그 칼에 스스로 다치고 만다. 혁명 정부가 아니다. 기운 운동장 덕에 힘을 더 받았을 뿐 민주선거로 잡은 정권이다. 속도조절로 부작용과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게 자신을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단호해야 할 것은 북한을 향해서다. 외교장관이 “비핵화 외교 공간” 같은 한가한 소리를 할 때가 아니다. 미사일에 핵탄두 넣고 뚜껑만 닫으면 되는데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나. 내가 김정은이라도 천만의 말씀이다. 이렇게 대화 운운하면서 대통령이 국방부 깬다고(물론 백 번 깨져 마땅하지만) 될 일이 아니다. 돈 안 드는 사드 배치 하나 제대로 못하면서 할 말은 더더욱 아니다.
 
중요한 건 시간이 별로 없다는 거다. 내년이 될 때까지 미국엔 두 가지 선택밖에 남지 않는다. ‘예방적 타격’이냐, ‘평화협정’이냐다. 두 가지 모두 우리에겐 재앙에 가깝다. 북핵 시설을 타격할 경우 보복공격을 각오해야 한다. 전면전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극심한 피해가 불가피하다. 자칫 우리의 성취가 한순간에 날아갈 수도 있다. 핵보유국 자격의 평화협정에 우리 자리는 없다. 대만의 처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이 원폭 실험에 성공한 게 1964년이었다.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성공은 71년, 실사거리 실험 성공은 80년이다. 미국은 79년 대만과 단교하고 미군을 완전 철수했다. 엊그제 북한이 일본 열도 너머로 실사거리 실험을 했다. 미·중 수교의 산파였던 키신저가 요즘 주한미군 철수를 얘기하는 게 우연만은 아니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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