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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 정석]'하늘 높이 훨훨~' 나는 하늘을 나는 보더 박진민입니다

 
"당신은 왜 일하십니까?"
뻔한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열에 여덟아홉은 "그야 물론 돈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는 밥벌이 때문에 일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곳곳에서 일하고 있는 이웃들을 찾아가 직접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구두닦이·사육사·버스기사…. 평범한 우리 이웃 14명의 입을 통해 우리가 진짜 일하는 이유를 들어봤습니다. '직업의 정석: 당신은 왜 일하는가' 일곱 번째 주인공은 박진민씨입니다. / 특별취재팀
 

 
 온몸에 피멍이 든다. 올라가고 다시 떨어지기를 반복하다 보니 생긴 ‘상흔’이다. 시퍼렇게 변한 허벅지 사진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주는 이 여자. ‘처음엔 무서워서 죽을 것 같았다’고 털어놓는다. 좋아하는 것을 업(業)으로 하려면 얼마만큼의 용기가 필요한 것일까. 158cm의 키, 다부진 입술과 또렷한 눈매. 앳된 얼굴의 박진민(28)씨를 만났다. 폭염이 한창이던 지난달 29일. 경기도 용인 캐리비안베이에서였다.
 
박진민씨는 그림, 스키, 플라이보드를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꼽는다. 스키가 좋아 선생님을 그만뒀고, 스키를 타다 플라이보드 선수가 됐다. 지난 6월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대회에 한국대표로 참가해 여자부문 1위에 올랐다. [사진 에버랜드]

박진민씨는 그림, 스키, 플라이보드를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꼽는다. 스키가 좋아 선생님을 그만뒀고, 스키를 타다 플라이보드 선수가 됐다. 지난 6월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대회에 한국대표로 참가해 여자부문 1위에 올랐다. [사진 에버랜드]

 
 10분간 공연을 마친 박진민씨의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그의 직업은 플라이보더. 제트스키 엔진이 뿜어내는 추진력으로 말 그대로 ‘보드를 타고 물 위를 나는 일’을 한다. 두 발로 수압을 견디고 흡사 아이언맨처럼 하늘을 날아 포물선을 그리며 공중제비돌기를 하는 플라이보드는 국내에 알려진 지 몇 년 안 된 신종 스포츠. 2011년 프랑스의 발명가 프랭키 자파타가 고안했다. 
 박씨는 지난 6월 프랑스 카발레르 쉬르 메르에서 열린 월드챔피언십에서 여자 부문 1위에 오른 세계 최정상 선수다. 주말에 하루 3번 캐리비안베이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한 번 타고나면 힘이 빠져서 아무 것도 못해요. 따로 운동도 안하는데 많이 먹어도 살이 안쪄요. 그래서 극한직업이라고 하더라고요.”  
 
 
나의 극한직업 도전기
 
“누가 들으면 ‘어른이(어른+아이의 합성어)’라고 할 것 같아요. 지겹도록 부모님과 싸워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으니까요.” 부모님 말 잘 듣던 모범생 아이의 ‘반란’은 대학 입학과 함께 시작됐다. 덕원예고를 졸업하고 경희대 한국화과에 진학한 그는 덜컥 스키 동아리에 가입했다. ‘학과 내에 있는 동아리가 싫다’는 이유에서였는데, 그 길로 스키에 푹 빠졌다. 여름엔 수상 스키, 겨울엔 스노우 스키를 탔다. 그렇다고 학교 공부를 등한시하지는 않았다. 교직 이수도 했다.  
 
박진민씨가 에버랜드 캐리비안베이에서 플라이보드 공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 에버랜드]

박진민씨가 에버랜드 캐리비안베이에서 플라이보드 공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 에버랜드]

 
 2012년 학교를 졸업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미술 선생님이 됐다. 방학이 되면 스키장에서 살다시피했다. 2014년 여름. 스키 선수들이 우리와 계절이 정반대인 뉴질랜드로 전지훈련을 떠난다는 소리에 마음이 동했다. 프로 선수는 아니었지만 훈련을 받아보고 싶었다. 
 덜컥 학교에 사표를 냈다. 2년간 모은 돈을 들고 3개월짜리 훈련을 따라갔다.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다. “방학 때마다 타고 싶은 스키 실컷 하면 되지 않냐. 안정적인 선생님을 왜 그만두냐”는 것이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던가. ‘싸워 이긴’ 그는 훈련을 떠났다. “부모님이 그때 가슴을 치시더라고요. 차라리 체대를 보낼 걸 그랬다고요.”
 
공중제비돌기를 선보이고 있는 박진민씨.제트스키(오른쪽)의 엔진에서 공급받은 에너지를 조절해 수면 위 최고 20m 높이까지 날아오를 수 있다. [사진 에버랜드]

공중제비돌기를 선보이고 있는 박진민씨.제트스키(오른쪽)의 엔진에서 공급받은 에너지를 조절해 수면 위 최고 20m 높이까지 날아오를 수 있다. [사진 에버랜드]

 
 훈련을 마치고 돌아와 스키 코치가 됐다. 2015년 어느 날 수상 스키를 타는 그에게 운명처럼 플라잉보드가 다가왔다. 베테랑부문 챔피언 양동원 감독이 그에게 플라이보드를 한 번 타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물 위로 최고 20m를 날아오르는 플라이보드는 신세계였다. 그는 그해 11월 일본 오키나와로 플라이보드를 타러 갔다. 전지 훈련 삼아 본격적으로 한 번 타보자는 생각에서였다. 만만치 않았다. 신종 스포츠다보니 선생님이 거의 없었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영상을 보며 따라했다. 
 
 선수가 되기 위해선 뒤로 공중제비를 도는 백플립(back flip) 기술을 습득해야 하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머릿속으로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수면 위에서 공중돌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죽도록 무서웠다. 엉엉 울었다. 실패할 때마다 온몸에 멍이 들었다. 물 위로 떨어지면서 생긴 타박상이었다. ‘나는 왜 안 될까’ 주저앉고 싶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보드에 올랐다. 시퍼런 멍이 전신에 퍼질 때 쯤, 백플립이 몸에 익었다. 엄마는 온몸에 멍이 든 딸의 사진을 보고 울었다.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한 플라이보드. 완강하던 부모님은 이제 "행복하면 됐다"고 말해준다.체력소모가 많아 10분간 공연을 하고 내려오면 기진맥진하게 되는데, 지난 15일에서야 처음으로 어머니를 초청해 공연을 보여드렸다.[사진 에버랜드]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한 플라이보드. 완강하던 부모님은 이제 "행복하면 됐다"고 말해준다.체력소모가 많아 10분간 공연을 하고 내려오면 기진맥진하게 되는데, 지난 15일에서야 처음으로 어머니를 초청해 공연을 보여드렸다.[사진 에버랜드]

 
황소고집 딸
 안정적인 직장도 버릴 정도의 뚝심과 고집은 어디서 왔을까.
 “미술은 끊임없이 나를 ‘고찰(考察)’하는 학문이에요. 작품을 할 때마다 교수님이 묻죠. ‘이 작품 왜 했어?’라고요. 작품에 대한 나의 생각을 묻는 것인데,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 하는지 끊임없이, 끝까지 생각해야 답을 할 수 있거든요.” 
 만약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그 다음엔 무엇을 할 것인지 물고 늘어져야 진짜 자기 생각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고, 물었다.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결심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선생님은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어요. 플라이보드는 체력이 있는 지금 해야만 가능한 스포츠잖아요. 사실 부모님께 감사하죠. 집에 빚이 있거나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 없었으니까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특별취재팀=김현예·정선언·정원엽 기자, 사진 우상조 기자, 디자인 김은교, 영상 조수진,개발 전기환·원나연 hykim@joongang.co.kr
 
한때 부모님의 권유대로 취직해볼까도 싶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나는 정말 돈을 벌고 싶은가?돈을 번 다음엔 무엇을 할 것인가? 스스로에게 자꾸 묻다보니 플라이보드를 타고 싶다는 답을 찾았다. [사진 에버랜드]

한때 부모님의 권유대로 취직해볼까도 싶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나는 정말 돈을 벌고 싶은가?돈을 번 다음엔 무엇을 할 것인가? 스스로에게 자꾸 묻다보니 플라이보드를 타고 싶다는 답을 찾았다. [사진 에버랜드]

 
나는 왜 일하는가
 일을 안해 보면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안다
  대학 졸업 후 두어달을 그야말로 백수로 지낸 시절이 있었다. 친구들이 한창 구직활동에 나설 때였다. 뭘 할지 모르겠어서 집에 머물기 시작해 낮밤을 바꿔 살았다.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 일어났다. 그러고는 하루종일 밥먹고 TV만 봤다. 놀면 속 편하고 좋을 것 같았는데 자꾸만 기분이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울증이었던 것 같아요. 계속 밑으로 내려가는 기분, 나는 왜 이렇게 한심할까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때 알았어요. 아, 나는 일을 해야 하나보다라고요.” 
 그래서 집을 나섰다. 동대문 새벽시장에서도 일을 하고, 인터넷 쇼핑몰이라도 차려보려 학원도 다녔다. 기업에서 인턴으로 일도 했다. 몸은 피곤해도 일하는 것이 훨씬 행복했다. 그러다 2012년 9월 선생님이 됐다. 

저는 노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일을 안하면 행복해야 하는데, 저는 반대더라고요. 일을 안해보니까 왜 일을 해야 하는지 알겠더라고요. 저는 일을 안하면 슬퍼지는 사람이었어요.”

 
플라잉보더 공연을 하고 있는 박진민씨. [사진 에버랜드]

플라잉보더 공연을 하고 있는 박진민씨. [사진 에버랜드]

 
 박진민씨는 요즘 새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다. “아주 먼 미래의 일인데, 사람들이 와서 재미있게 놀다갈 수 있는 섬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디즈니랜드처럼 섬 안에 테마파크를 만드는 거에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곳을 만들면 행복할 것 같아요. 지금은 상상 불가능한 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해보지도 않고 걱정부터 하진 않으려고요. 어떻게든 길은 열리기 마련이라고 생각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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