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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다발성경화증' 근로자 산재 인정

 
근로 환경 때문에 희귀병인 '다발성 경화증'을 얻었다고 주장한 근로자에 대해 대법원이 1·2심의 판단을 뒤집고 산업재해를 인정했다. 상고심에서 다발성경화증에 대한 산재 인정 여부가 논의되고 인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은 의학적으로 원인이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희귀성 질환이이라 하더라도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쉽게 부정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는 29일 삼성전자 LCD 사업부 천안사업장에서 일했던 이모(33)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다발성경화증에 대한 산재를 인정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1·2심을 깨고 서울고법으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다발성경화증은 신경세포를 둘러싸는 수초가 벗겨져 신경신호에 이상이 생기는 병으로 발병률이 10만 명당 2명 이하인 희귀질환이다. 아직 정확한 발병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유기용제(다른 물질을 녹이는 액체) 노출, 자외선 노출 부족 등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반도체·LCD 생산 공정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에게서 종종 발병했다. 
 
이씨는 18세였던 2002년 11월 삼성전자에 입사해 LCD 패널 화질을 검사하는 일을 했다. 패널을 전원에 연결한 뒤 육안으로 관찰해 색상과 패턴에 불량이 없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이씨는 한 시간당 패널 70~80개를 검사했다.
 
당시 사업장은 하나의 개방된 공간이었다. 한 공정에서 유해화학물질이 발생해도 따로 여과·배출되지 않았다. 이씨의 업무는 패널을 고온에서 가열해 열분해부산물이 생길 수 있는 ‘에이징 공정’ 다음에 이뤄졌다. 
 
2007년 2월에 퇴사한 뒤 이듬해 다발성경화증을 진단 받았다. 이씨는 2010년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업무상 재해를 주장하며 요양승인을 신청했지만 거부당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재판부는 “다발성 경화증의 발병 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아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전자파와 이소프로필알코올 등 이씨가 주장하는 사유들이 병을 유발·악화시킬 정도의 수준이라고 볼 자료가 없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LCD 공장에서 일하다 다발성경화증을 앓게된 근로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전자 LCD 공장에서 일하다 다발성경화증을 앓게된 근로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현재 의학 수준에서 인과관계 입증이 어렵더라도 가능성을 배제해선 안 된다고 봤다. 대법원은 “이씨는 입사 전 건강 이상이나 가족력 등이 없었다. 사업장 내 유기용제 노출과 교대 근무 등이 중첩돼 이씨 발병에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삼성과 관련 행정청이 유해화학물질 정보를 영업비밀이라며 공개 거부한 것 역시 이씨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판결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반올림)’에 접수된 삼성전자 LCD·반도체 다발성경화증 발병자 4명 중 3명이 산재를 인정받았다. 나머지 두 사건도 비슷한 취지로 지난 5월과 7월 서울고법에서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아 항소심에서 확정됐다.
 
지난 5월 서울고법 행정2부(부장 김용석)는 기흥반도체 공장 근로자 이모(33)씨의 사건에서 “발병원인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어도 의학적으로 발병 원인으로 꼽히는 요소들이 존재한다면 업무상 질병으로 봐야 한다”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서울고법 행정1부(부장 최상열)도 지난 7월 김모(37)씨의 사건에서 “질환의 원인 규명에 어려움이 있으나 유기용제 노출 등이 발병에 대한 직업적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어느정도 인정된 견해다”는 1심 선고를 받아들였다.
 
나머지 1명은 근로복지공단에서 심사를 받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LCD 공장 근로자 중 백혈병과 각종 암 등에 대해 산재를 인정받은 경우는 20여 건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유해화학물질에 상시적으로 노출 되는 근로자에게 현대 의학으로 발병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는 경우에도 폭 넓게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해야한다고 판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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