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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경기 회복 더디고 수출 둔화 … 한은, 기준금리 인상 멈칫

칼을 뽑기에는 아직 이른 것일까. 31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둔 한국은행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저금리 기조 속에 가계 부채는 이미 1400조원을 돌파했다. 가계 빚을 잡으려고 ‘무딘 칼’인 금리 정책을 섣불리 썼다가는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나아지는 듯하던 실물 경제의 불확실성도 여전하다. 통화정책 정상화를 천명했던 미국과 유럽 중앙은행도 속도 조절에 나서고 있다. 8월은 물론이고 연내에 기준금리 인상이 물 건너가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은이 금리를 서둘러 올리지 않을 것이란 안도감이 채권 시장에 번지자 시장은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28일 국고채 3년물 금리(수익률)는 전 거래일보다 0.003%포인트 소폭 오른 1.758%로 거래를 마쳤다. 지난 25일 1.755%로 내려앉았던 금리는 1.7%대를 벗어나지 않았다. 북한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위협성 발언과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의 언론 인터뷰 이후 빚어진 ‘청와대발 금리 인상’ 논란으로 국고채 3년물 금리가 1.8%대로 치솟았던 이달 초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기준금리는 지난해 6월 이후 1.25%에 멈춰 있다. 14개월째 제자리걸음이다. 가계 부채의 급증에도 긴축으로 차선을 바꿀 만큼 시장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한은이 긴축으로 방향을 트는 전제 조건은 경기 회복세다. 애초에는 회복세가 뚜렷해지고 있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전 분기 대비)이 1.1%를 기록하고 2분기에도 0.6%로 성장세를 이어갔다.
 
부진했던 민간 소비도 2분기에는 0.9% 늘어나며 6개 분기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수출도 반도체를 중심으로 순항했다. 2분기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전년동기대비 1.9%를 기록했다. 7월에는 2.2% 올랐다. 한은의 물가안정목표치(2±0.5%)에 근접하는 모습이다.
 
이주열 총재가 지난 6월 “경기 회복세가 지속하는 등 경제 상황이 뚜렷이 개선될 경우 통화정책 완화 정도의 조정이 필요할 수 있다”고 밝힌 이유다. 7월 금통위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연 2.8%로 올려잡았다. 통화 정책의 방향이 바뀔 수 있다는 깜빡이가 켜지며 연내 금리 인상 전망도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7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록에서 한 금통위원이 “장기간 지속한 완화적 기조로 인해 과도하게 급증한 부채가 소비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통화정책의 완화적 기조를 재조명하는 것이 필요한 시기”라고 금리 인상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연내 금리 인상에 대한 기대감을 부추겼다.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대차대조표 축소를 천명하고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양적완화 축소를 시사한 것도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시각에 무게를 실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한 순간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달 초 불거진 북핵 리스크가 도화선이됐다.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7개월 만에 꺾였다. 수출물량지수도 9개월 연속 상승했지만 상승폭은 둔화하는 모습이다. 한은은 2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현안보고서에서 “국내 경제가 글로벌 경기회복, 추경 집행 등에 힙입어 2%대 후반의 성장세를 이어가겠지만 성장경로의 불확실성은 높은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31일 열리는 금통위에선 기준금리가 동결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수출과 투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실제 소비지표는 기대심리만큼 뚜렷하게 개선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며 “국내 경기 회복에 대한 뚜렷한 확신이 없는데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을 서둘러야 할 필요성은 적다”고 말했다.
 
기준금리 인상의 남은 변수는 부동산 시장과 가계 부채다. 금리가 오르면 가계 빚 증가와 집값 상승세를 제어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서다. 이미 가계 빚은 임계치에 이르렀다. 한은에 따르면 2분기 가계빚은 1388조3000억원을 기록했다. 2분기에만 29조2000억원이 늘었다. 7~8월 가계대출 증가분을 감안하면 이미 1400조원이 넘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안재균 신한금융투자 책임연구원은 “8·2 부동산 대책이 나온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고 추가 가계부채 종합대책도 예정된 만큼 집값과 부동산 시장의 흐름을 보며 시간을 두고 대처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과의 전쟁을 선포한 각종 정부 대책이 시장에서 먹히지 않으면 결국 금리 카드를 쓸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문홍철 동부증권 연구원은 “시중의 유동성이 많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만큼 이를 줄이는 방법은 금리 인상”이라며 “가계부채 종합대책으로도 주택 가격이 잡히지 않으면 금통위 내부에서도 금리 인상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금리 발언, 금통위 신뢰 떨어뜨린 것은 사실”=이주열 한은 총재는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현재 기준금리 수준이 낮다”가 낮다고 언급한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 총재는 28일 기재위에서 “시장에 영향을 미칠만한 발언은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유한국당 박명재 의원의 질의에 대해서도 “(김 보좌관의 발언이) 금통위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 것은 사실”이라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재차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 총재는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잭슨홀 미팅’에서 통화 정책을 언급하지 않은 것을 두고는 “옐런 의장이 이번에 금리나 자산 축소 관련 언급을 했다면 (금리 인상) 의지가 상당히 강하게 보일 수 있는데 그럴만한 확신이 들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하현옥·조현숙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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