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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시조백일장 장원, 이현정의 '단죄에 관하여'

<장원> 
 
단죄에 관하여   
 
이현정

 
끊어진 철길 위에 홀로 앉아 있었을
시멘트 맨바닥에 머리부터 부딪쳤을
온몸이 하수구 틈새로 남김없이 흘렀을
 
칼끝이 동공 앞을 겨누며 달려왔을
뿌리째 뽑힌 나무 한순간 내리눌렀을
자비도 채비도 없이 곤두박여 버렸을 
 
◆이현정 
1983년 경북 안동 출생. 대구교대 국어교육심화과정 졸업. 대구수성초 교사. 비단시조 회원  

 
 
 
 
 
 
 
 
 
 
 
 
 
<차상> 
 
조조영화를 보러 간다   
 
이성보
 
눈꺼풀에 퉁퉁 박힌 늦잠 결을 후벼 파며
모닝콜 요란한 일상, 재촉이 성가시다
메신저 훤한 하늘이 빠른 답신 기다린다
 
첫 장을 못 넘겨서 시큰둥한 일과표에게
이 아침 살짝 불러 귀띔해 주고 싶다
더러는 신의 한 수 같은 엇길도 있다는 걸
 
어둡고 빈 객석에 몰래 쌓은 철옹성
숨어 있던 내 자유가 더듬이를 곤두세워
현실과 무음설정하고 별 세계와 소통한다
 
가상의 공간에서 비를 맞듯 흠뻑 젖고
엔딩 크레딧이 자막에 뜨게 되면
부재중 전화 몇 통화가 내 방종을 달랜다
 
 

<차하>   
 
귀뚜라미-이명증   
 
김지욱    
 
세상과는 등진 채
달팽이집 끌어안고
 
귓속 깊은 꽃 속에서
울어대는 세입자
 
어머니
저린 몸 구석구석
갉아대는 울음소리
 
 
<이달의 심사평>
 오락가락 편치 못한 날씨 탓이었을까. 이번 달에도 눈에 띄는 작품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아쉬운 가운데 선자들은 ‘단죄에 관하여’를 장원으로 올리기로 했다. 무릎을 치게 하는 표현은 없지만 특별한 문제점을 내비치지도 않는 작품이다. 매 행마다 반복적으로 놓인 동일한 각운의 활용이 시의 내용을 유연하게 살리는 한편, 전체적인 운율을 강화하고 표현의 묘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수행한다. 보편적인 공감대를 마련하면서, 다양한 열린 해석을 유도하는 솜씨 또한 오랜 내공을 짐작하게 한다. 무엇보다 내면의 치열한 의식이 뜨겁게 읽혀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차상으로 선한 ‘조조영화를 보러 간다’는 휴대폰이나 첨단기재 관련 용어들인 ‘모닝콜’, ‘메신저’, ‘무음설정’, ‘엔딩 크레딧’ 같은 시어들이 전통장르인 시조 속에 맞춤하게 자리를 잡고 다른 표현들과 조화를 이루는 색다른 재미와 흥미를 안긴다. 일상과 맞닿은 소재들도 친근하고, 자연스럽게 전개되는 가락도 무리가 없다. 다만 마지막 수 종장의 둘째 음보가 탄력을 놓친 듯 작은 아쉬움을 남긴다.  
 차하로 뽑은 ‘귀뚜라미’는 애잔한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어머니의 이명증과 연결하여 간결하고 선명하게 이미지를 잡아챈 깔끔한 단수이다. ‘어머니/ 저린 몸 구석구석’을 ‘갉아대는’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독자의 감성을 파고드는 힘이 느껴진다. ‘세입자’란 시어가 해석의 걸림돌이 되기도 했으나, 나머지 응모작인 단수들의 역량이 미더운 편이었다. 조현국, 김영옥, 태경이씨의 작품들도 선자들의 손을 끝까지 떠나지 않았음을 밝히며 정진을 부탁드린다.
 심사위원:이종문·박명숙(대표집필 박명숙)
 
 
<초대시조>
 
물렁한 힘  

 
우은숙  
 
마른 바람 흔들리는 저물녘 강변에  

제비꽃 몇 송이  
여린 몸이 휘청한다  
 
흐름의  
습관을 잠시  
거꾸로 접는 물결  
 
순하게 몸 낮춘다 저음의 악기 되어  

저녁별이 눈 뜨기 전  
재빨리 뿌리에 닿아  
 
땅을  

꽉  
움켜잡게 하는  
물렁하고 둥근 힘!   
 
 
◆우은숙  
강원 정선 출생.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시조 등단.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수상. 시조집 『마른꽃』『물무늬를 읽다』 등. 
 

 
 
 
 
 
 
 
 
 
중서부지방의 호우에 비해 동남부의 갈증은 가시지 않았다. 사람들이 곁에서 말한다, 언제 한번 쏟아지면 넋을 놓고 바라보고 싶다고. 몸 가뭄을 타는 것이 여전하다. 이와는 달리 수재를 당한 입장에서는 속수무책이다. 해갈을 향한 몸부림과 익사를 벗어나려는 공포는 물의 상상력에 잠재된 양면성이다.  

 시조 '물렁한 힘'에서 ‘제비꽃 몇 송이’가 가뭄을 타고 있다. ‘마른 바람 흔들리는 저물녘 강변에’ 붙들린 채, 말라가는 꽃잎은 생의 경계지점을 보여준다. 존재의 입술을 바싹 태우는 갈증으로 인해 ‘여린 몸이 휘청’ 부대낀다. 이것을 보는 눈길을 거두지 못하는 것은 모성적인 물의 속성 때문이다. 이처럼 지상에서 양육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는 일단 물의 상상력에서 비롯된다. 흐름을 접고 ‘순하게 몸 낮춘’ 물줄기는 ‘저음의 악기’ 소리를 내며 사려 깊게 대상 속으로 스며든다. 이를 통해 자연이 간직한 수유(授乳)의 본성을 알려주는데, 그것은 내 몸으로 다른 몸을 채우는 헌신의 방식을 통해 드러난다. 마침내 ‘땅을/ 꽉/ 움켜잡게 하는/ 물렁하고 둥근 힘!’이라고 했을 때, 물의 ‘힘’이 가진 생육의 가치는 내밀하고도 근원적인 방식으로 실현된다.  
 한편, 물의 양성적인 속성은 이 시조에 다의성을 부여하는 장치이다. ‘물은 응시에 있어서 여성적이며 흐름에 있어서 남성적이다’라고 바슐라르는 말한다. 전자가 젖 같은 물의 이미지에 의탁한다면 후자는 폭우에 따른 난폭한 급류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시조 창작에서도 이미지를 환기함으로써만 대상을 드러내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염창권 시조시인
 
 
응모안내= 매달 20일 무렵까지 접수된 응모작을 심사해 그달 말 발표합니다. 장원·차상·차하 당선자에게 중앙시조백일장 연말 장원전 응모자격을 줍니다. 우편(서울시 중구 서소문로 100번지 중앙일보 문화부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 우편번호 100-814) 또는 e메일(choi.sohyeon@joongang.co.kr)로 접수할 수 있습니다. 02-751-5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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